[문화칼럼] 문화 공간 ‘설아’
[문화칼럼] 문화 공간 ‘설아’
  • 승인 2022.03.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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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향촌동 뒷골목의 오래된 적산가옥을 손보아 작가 작업실과 서점 그리고 카페로 사용하던 '골목'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며칠 전 복합문화공간 '설아'로 재탄생하였다. 한동안 적막감이 감돌던 이곳에 휴일을 맞아 서점을 찾은 젊은이들과 '설아'를 방문하는 상춘객들로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특히 이날은 공간의 재탄생기념으로 작은 공연이 열렸다. 전자 피아노 반주이긴 하나 마이크 없이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는 실내와 때맞춰 활짝 핀 능수벚꽃이 흐드러진 작은 마당에 울려 퍼졌다.

이날 공연을 한 연주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다. 주변에서 줄여서 '닐루' 라고 부르는 '닐루파르 무히디노바'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작은 음악회의 주인공이었다. 뮤지컬과 드라마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는 배우 황건의 아내다.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을 통하여 두 사람의 인연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는데, 배우 황건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다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되면서 한국살이가 시작되었다. 이름만 다르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의 닐루는 일찍이 고국 우즈벡에서 음악을 시작하였다. 한국으로 시집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음악의 깊이를 다졌으며 현재 동 대학에서 전문사과정을 밟고 있다.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의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모스크바 국립 오케스트라, 우즈벡 국립 오케스트라 등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을 한 실력파다. 현재 마에스트로 구자범이 이끄는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 콘서트하우스 솔라시안 유스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는 등 대구와도 인연이 깊다. 아무튼 작은 문화공간에 울려 퍼진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모두에게 행복한 봄날의 음악회였다.

문화공간 설아는 아름다운 눈(雪) 또는 눈처럼 아름다운 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고 싶은 이집 주인장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는 목공예가로 불리는 눌목(訥木) 차정보라고 한다. 눌목은 어눌한 나무라는 뜻인데 나무를 사랑하는 그는 나무의 반듯한 모양도 좋지만 휘어지고 구부러진 대로 자연스러운 쓰임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투박하고 거칠고 어눌함을 좋아해 그의 호로 삼았다. 누구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만 눌목의 이력 또한 예사롭지 않다. 작가 차정보는 이십대 중반부터 약 10여년에 걸쳐 전국을 떠돌았다. 나름 목숨을 건 기행이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시간이었다. 다가오는 삶의 회의를 외면하지 않고 인간의 실존에 정면으로 부닥친 긴 시간 끝에 정직하면서도 즐거운 인생을 살아보자는 마음이 영글어 오늘날 그의 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를 목공예가로 부르지만 하나의 장르로 묶을 수는 없다. 그는 나무를 주로 만지지만 쇠붙이도 다룬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해마다 한정판으로 만드는 눌목의 글과 그림이 들어간 달력은 연말의 인기 상품이다. SNS상에 올리는 '눌목헌 편지'는 꽃소식, 시절 이야기 그리고 그의 내밀한 속마음도 다루는데 촌철살인의 언어에 무릎을 치기 일쑤다. 또한 그가 빚어내는 시의 세계 역시 보통이 아니다. 차정보의 재능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지만 결국은 재미나고 즐거운 세상으로 모여든다. 향촌동 적산가옥을 문화재 복원 전문가다운 솜씨를 발휘해 직접 새롭게 다듬어 세운지 7년여가 흘렀다. 2층 작업실 눌목헌에서 새 소식 물고 오는 수많은 벗들에게 귀한 보이차를 대접하며 함께 마음을 나누던 그는 아래층 '설아'를 통하여 더 재미난 시간을 꿈꾼다.

몇 해 전 그는 '놀자전'을 기획하여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시를 하였다. 늘 사람들과 재미난 시간을 꾸미는 작가는 작품세계에도 그것을 투영한다. 그렇다고 작업을 설렁설렁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것을 넓은 마음의 세계로 이해한다. 눌목은 나무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그의 사람품은 엄청나게 넓다. 그가 움직이면 경향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런 넓직한 품새로 인해 '설아'에 사람이 모이고 함께 즐겁게 노는 시간을 통해서 또 하나의 문예부흥의 터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문화 공간 '설아'의 또 다른 가치에 기대를 건다. 바로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인하여 북성로 다운 모습이 점차로 퇴색할 가능성이 높은 마당에 북성로 길을 두고 위치상 대척점에 있는 이 공간은 인근의 가치를 지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장 마음을 닮은 이 문화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또 하나의 멋진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 보기 드문 풍류와 유유자적이 구현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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