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조선시대, 양반은 人 노비는 名으로 세는 단위 달라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조선시대, 양반은 人 노비는 名으로 세는 단위 달라
  • 김종현
  • 승인 2022.04.1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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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삼한갑족
대대로 높은 관직 거친 문벌 높은 가문
고려시대- 권문세가·조선시대- 사대부
일제강점기엔 조선인- 名·일본인- 人
1992년 중국서 아사달문양 토기 출토
아사달은 ‘아침의 나라’ 한민족 상징
아직도 일본엔 ‘아사다’ 지명 수십 곳
김유신 묘비에 ‘헌원 후예, 소호 자손’
아사달의상징
아사달의 상징, 해와 달 그리고 산. 그림 이대영

◇삼한갑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박종화(朴鍾和, 1901~1981)의 장편역사소설인 ‘다정불심(多情佛心)’을 보자. 고려 공민왕(恭愍王)과 노국공주(魯國公主)와의 애화(哀話)를 그린 내용 가운데 “밑도 없고 뿌리도 없고 가지도 없는 고단한 사노(私奴)의 자식 편조(遍照)가 임금도 마음대로 못하는 삼한갑족 지체 좋은 자기네들을 기탄없이 휘두를 줄은 생각도 먹지 않았던 일이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이란 삼한시대부터 대대로 높은 관직을 두루 거친 문벌이 높은 가문이라는 뜻이다. 같은 뜻으로는 대족(大族), 무족(茂族), 세가(世家), 의관갑족(衣冠甲族)이라고 했다가 고려시대엔 권문세가(權門勢家), 조선시대 땐 사대부(士大夫)라고 했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선 양반은 인(人)으로 노비는 명(名)으로 사람을 세는 단위까지 달랐다. 현재 대부분 명(名)으로 부르는데 그건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皇國臣民)인 조선인에게 명(名)을, 일본인은 인(人)으로 칭했기 때문인데 지금도 일본은 인으로 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꼰데 이야기를 하면, 실제 삼한갑족으로 손꼽고 있는 문벌은 누가 있을까.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수(文科榜目)로 환산하면 1순위 전주 이씨(873인), 2순위 안동 권씨(359인), 3순위 남양 홍씨(당홍계, 340인), 4순위 파평 윤씨(339인), 5순위 청주 한씨(287인), 6순위 광산 김씨(265인), 7순위 밀양 박씨(261인), 8순위 연안 이씨(250인), 9순위 여흥 민씨(244인) 그리고 10순위 진주 강씨(221인) 등이다. 이들 문벌에 대해서 조선시대 태종도 “삼한갑족의 자제로 갑사(甲士)가 되기 때문에 일찍 갑사로서 감찰을 삼았다...사직이나 부사직 가운데 감찰을 겸할 사람을 어찌 쉽게 얻겠는가?”라고 언급하기도 할 정도 세력가들이었다.

가장 신랄하게 삼한갑족을 언급한 사람은 아마도 춘향의 어머니였다. 비천한 관기 몸에다가 외동딸 춘향이가 수령의 수청을 들지 않는다고 대신 어머니를 동헌에 끌어다 놓고 곤장을 쳤다. 10대까지 하소연을 노래한 ‘십장가(十杖歌)’에서 세 대를 맞고 “삼한갑족(三韓甲族) 우리 낭군. 삼강(三綱)에도 제일이요. 삼촌화류 승화시(三春花柳勝花時)에 춘향이가 이도령 만나 삼배주(三杯酒) 나눈 후에 삼생연분(三生緣分) 맺었기로 사또 거행(擧行)은 못하겠소.”라고 노래했다.

◇하늘이 틀어준 둥지, 아사달(阿斯達)

아사달(阿斯達, asadal)이란 한민족(동이족)을 상징하는 ‘해, 달 그리고 산’을 그린 고조선시대 유물인 팽이형토기에 그려진 문양이다. 아사달문양 토기는 1992년 6월 12일 중국 산동성 거현 능양하(陵陽河)에서 출토되었다. 여기서 아사달이란 오늘날 말로는 ‘아침의 나라, 해 뜨는 곳, 아침의 땅, 혹은 해·달·산’즉 한민족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삼국유사에선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할 때 도읍지를 아사달이라고 했고, 그 위치는 평양부분 백악산 혹은 황해도 구월산(일명 아사달산)으로 보고 있다. 고려사에선 아사달 혹은 아질달(阿叱達)로도 표기했다. 고려시대 향찰 혹은 이두로 보면 ‘질(叱)’은 사이시옷(ㅅ)으로 ‘아ㅅ달(asdal)’로 발음했다. 일부학자들 사이에는 오늘날 요서(遼西)의 ‘차오양(朝陽)’이 아사달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사달은 한자로 조선(朝鮮), 조양(朝陽), 조일(朝日), 조광(朝光) 등으로 표기한다. 특이하게도 오늘날 카자흐스탄(Kazakhstan)의 수도가 원주민의 말로는 ‘사과(Apple)’, 오늘날 영어로는 ‘전지전능(Almighty)’을 뜻하는 ‘알마티(Almati)’인데 1997년 12월 ‘아스타나(Astina)’로 천도했다. 이어 2019년 3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 1940년생)’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Nur-Sultan)으로 개명했다. 2016년 10월 31일에 ‘아사달(asadal)’이란 의미의 ‘아스티나(Astina)’ 수도를 기념해서 단군기념주화(한글과 자국어)까지 발행했다.

한편 ‘아사달’의 뜻을 살펴보면, 고대 한반도에서 ‘아사(asa)’는 ‘아침(日/早)’이고 ‘창시(始)’, ‘달(dal)’은 ‘땅(地)’이라서 ‘아사달(asadal)’는‘해가 뜨는 땅(朝鮮, 朝陽)’이라고 역사학자 이병도(李丙燾, 1896~1989)님이 풀이했다. 산스크리트어(梵語)론 ‘아사달(Asaddhar)’이 ‘난공불락의 성(難攻不落城, invincible castle)’ 혹은 ‘신이 축복을 내린 땅(天惠要塞地, a holy city)’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즈베크어엔 ‘들판(平野)’혹은 ‘벌(野)’이란 뜻의 ‘달라(dala)’라는 단어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고대 투르크어론 ‘보라(bora)’라고 했으나, 고구려어로는 ‘다라(dara)’라고 했다. 따라서 아사달(asadal)이란 고구려말로도 볼 수 있다. 신라와도 무관하지 않으니, 불국사 3층 석가탑을 만들 때 백제석공 아사달(朝陽)이 고국에 두고 온 아사녀(朝女) 모습이 경주영지(影池)에 투영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일본도 최초 나라이름을 ‘야마도(大和)’라고 했는데 삼한에서 ‘해 뜨는 삶터(아사달)’라는 용어를 먼저 사용했기에 ‘해가 뜨는 터(日の本)’를 썼다. 백제가 멸망했던 660년 이전까지 중국 등 동양열방에서는‘일본(日本)’이라고 칭했던 백제가 멸망한 뒤 AD 720년부터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한반도의 옛말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일본에선 아직도 아사히신문(朝日新聞)과 아시히야마동물원(朝日山動物園) 등을 비롯해 해 뜨는 곳(日出之處)이란 ‘아사다(あさた, 朝田)’를 지명으로 하는 곳만 수십 곳이 넘는다. 아사다(asada)를 음역한 한자표기로는 천곡, 조곡(朝谷), 조계(朝溪), 마곡(麻谷), 조다(朝多), 조전(朝田), 조다(調多), 조전(調田), 조타(調朶), 마다(麻多), 마전(麻田), 천전(淺田) 등의 지명이 있다.

◇아사달 가운데 달구벌은 신고복지(神皐福地)

BC 2,500년 이전, 중국 하북성 탁록현(河北省啄鹿縣)에서 고조선 치우천왕(蚩尤天王)과 중국 화하족(華河族) 황제(黃帝) 헌원(軒轅)과의 일대결전이 벌어졌다. 사마천(司馬遷, BC145~BC 86)의 사기(史記)에선 신화로 취급하고 있으나, 탁록결전(啄鹿決戰)으로 중원의 패권은 넘어갔다. 싸움은 치우천왕(蚩尤天王)이 구름을 구사해 첩첩산중을 오리무중(五里霧中)으로 만들자 헌원(軒轅)은 미리 준비한 지남침(指南針, 오늘날 나침반)을 사용해 남쪽방향으로 빠져나갔다가, 야음을 틈타 재차기습작전으로 대승을 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 “치우라는 놈이 난을 일으켜 황제의 명까지도 듣지 않자, 이에 황제는 제후들의 군사를 모아 탁록산야에서 놈들과 한판 붙어 치우 놈을 쫓아 잡아 죽였다.”라고 기록했다.

한편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서는 “신라 사람들은 소호 금천씨의 후예이므로 김씨라고 한다.”로 적고 있고, 김유신의 묘비에도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다(軒轅之裔, 少昊之胤)”라고 적고 있다. 헌원이 탁록대전에서 고조선 치우천왕을 사살한 화하족 황제였다는 사실을 안 김부식(金富軾, 1075~1151)도 “모든 사람들이 들었던 바와는 상식으로는 알지 못했다(公聞之, 知非常人).”고 의아함을 그대로 기록했다. 즉 헌원의 아들이 소호(少昊)이고, 후계자 금덕(金德)이 나라를 다스렸다고 해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라고 했다.

또한 신라 일통삼한(新羅一通三韓)의 주인공이었던 문무왕 김법민(金法敏, 재위 661~681)의 묘비에는 ‘15대조 성한왕(聖漢王)은 투후국제천지윤’이라고 새겨져있어, 다시 말하면 성한왕은 7대 후손 김일제란 인물을 지칭한다. 한서(漢書)에 의하여 김일제는 흉노의 휴저왕(休屠王)의 태자였으나 한나라에 투항해서 한무제를 섬겨 투후제라는 관직에 임명되었다. 이렇게 망국의 유민들이 새로운 땅 한반도의 끝 신라까지 유입됐다.

글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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