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J를 추억하며
[문화칼럼] J를 추억하며
  • 승인 2022.04.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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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며칠 전 우연히 SNS에 올라온 한 권의 책 제목을 보고 사뭇 놀랐다. 저자는 내가 아는 이름인데 유고집이라 적혀 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보니 그는 작년 이맘 때 세상을 떠났다 한다. 책을 구하기 위해 교보문고, yes24 등을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책을 가지고 있음직한 지인에게 문의해서 구했다. 지난 휴일에는' 낯선 길'이라는 J의 유고집을 읽으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해 보았다.

그와 나의 인연은 그리 오래지 않다. 언젠가 J가 먼저 나에게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돌이켜 보면 그 몇 해 전, 모 기관의 행사대행업체 선정 심의에 같은 심사위원으로 딱 한 번 본 기억 밖에 없는 데 그가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먼저 내어 준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 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는 수성문화재단의 문화정책 팀장으로 나는 수성아트피아 관장으로 일하며 자주 만나게 되었다. 역할은 달랐지만 늘 호의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지켜봤다고 생각한다.

그는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사제의 길을 가지 않았다. 두 곳의 언론사와 해인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수성문화재단에서 정년퇴직을 하였다. 이런 일들 사이에 꽤 긴 세월 동안 속세와 떨어져 홀로 지낸 적도 있었다. 그것도 나이 오십에 집을 떠나 산사 암자와 외딴 시골집에서 책읽기와 산책으로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신문사 선배의 권유로 축제 기획을 하게 되면서 글쟁이에서 문화정책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의 기억을 '낯선 길'이라는 제목의 꽤 긴 글로 남겨 놓았다. J는 "조직생활은 타인의 의견을 듣고, 논의하고 수렴·조정해야 하며 거기에는 상당한 인내와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멘탈리티가 없고 노력도 않는다. 혼자 생각하고 실행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이런 생활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낯선 길'에서 그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것이 그의 발병 원인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퇴직 후 반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몸의 이상을 느낀 그는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수술 후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청도 성모솔숲마을로 들어가 쑥뜸과 침 등 자연치료요법으로 암을 이기고자 했으나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말처럼 "이제 해보고 싶은 거 좀 해보려 하는데" 그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하다. J가 오래 알고 지냈던 벽안의 수도승 오도 아빠스의 죽음이 임박한 모습에 "왜 팔십 평생 어질게 살았던 이 수도승이란 말인가? 왜 하필 지금인가? 왜 이런 방식인가?"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던 그 물음은 자신을 향하고야 말았다. 오도 아빠스의 선종에 눈물을 흘렸던 J. 그런 J의 죽음을 뒤늦게 들은 나 역시 그를 위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대로 그는 조직생활의 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아니었다. 주위의 시선을 별로 의식치 않는 사람이어서 개성이 강하게 보인다. 자기 의견을 말할 때는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투에 투박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로 J는 독특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을 대충 한 적이 없었다.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부정적인 말을 뱉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직장 생활하는 가운데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형이상학적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이제야 분명히 알겠다. 그는 나에게 파두의 세계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몇몇 책을 추천 해 주었건만 제 때 챙기지도 못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동안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봐주지 못했다. 그와 마음을 많이 나누지 못한 나의 무심함이 너무나 미안하고 그렇게 흘러가버린 세월이 안타깝다.

J는 취재 목적 외에도 수많은 미술관·박물관을 찾았으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오디오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또한 틈나는 대로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성찰하던 사람이었다. 이런 행위들의 밑바탕에는 엄청난 책읽기가 깔려있다. 음악·미술·여행·영화 등 다방면에 걸친 인문학적 넓이와 깊이를 갖춘 드문 사람이 J였다. 또한 기자출신답게 그의 글쓰기는 내공이 대단하다. 어쩌면 그가 은퇴 후에 하고 싶었던 것은 일평생 축적해놓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인문학적 생각들을 글로써 풀어내려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우리는 좋은 자산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고 이제는 영원히 가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나마 여동생의 노력으로 그가 남긴 글의 일부를 책을 통하여 만날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전종건이다. 일간 그가 생전에 좋아하던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그레고리안 찬트를 들으러 가야겠다. 삼가 전 형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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