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 세종의 사주 (2)
[류동학의 세상읽기]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 세종의 사주 (2)
  • 승인 2022.04.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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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세종이 태어난 절기는 여름을 알리는 입하가 지나고 경금이 그달을 지배하는 경금 편인사령격이자 편재격이다. 천간이 목화의 기세가 강하고 지지가 축토와 진토의 관살이 강하여 기세가 약한 사주가 되었다.

②임수(壬水)일간은 여름절기인 사오미월에 태어나면 임수의 뿌리가 없어서 매우 약하다. 그러므로 임수를 도우는 같은 오행인 임수와 해수를 필요하고 물의 원천수인 신금이나 경금을 사주에서 확보해야 액체인 임수가 기체화되지 않는다, 이 사주는 그런 점에서 생시의 신금과 해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②임수(壬水)일간으로 태어나면 아이디어가 탁월하고, 두뇌회전이 빠르고 총명하며, 기획력이 뛰어나다. 예지력과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세종대왕의 배우자는 년간(年干)의 정화 정재가 배우자이며 ①사화(巳火) 편재가 후궁이라 해석할 수 있다. 조선왕조 왕비 중에서'내조의 여왕'은 소헌왕후 청송 심씨이다. 청송 심씨 집안은 소헌왕후(1395~1446),명종의 왕비 인순왕후 청송 심씨(심온의 6대손), 조선 20대 왕 경종의 왕비 단의왕후 청송 심씨(심온의 12대손)등 3명을 배출했다. 소헌왕후 심씨의 할아버지 심덕부, 아버지 심온, 남동생 심회는 모두 조선왕조에서 정승을 지낸 명문집안이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부마(경선공주의 남편)가 큰 숙부 심종이다.

태종 이방원은 신생 국가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외척을 제거해 나간다. 먼저 태종의 부인(왕비) 여흥 민씨 일족(민무구 4형제)을 처단하고, 다음으로 세종의 처족 청송 심씨 일족을 제거한다. 심온과 심정이 죽었다. 심온의 아들과 민무휼의 딸이 혼인하여 두 사람은 사돈지간이었다.

조선의 창업공신이며 고려 때부터 명문집안이었던 청송 심씨 소헌왕후의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몰락하였다. 그러나 역적의 딸인 소헌왕후가 페비되지 않은 것은 내조의 공이 크고, 왕자를 2명이나 출산하였으며 당시에 안평대군을 임신중이었기에 폐비가 되지 않았다.

1426년(세종 8)에 와서야 소헌왕후의 친정어머니와 형제들이 천안(賤案, 관노비)에서 복원된다. 소헌왕후 청송 심씨는 슬픔과 고독을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며 현명하게 대처해 나간다. 큰아들 문종의 두 아내를 폐출시킨 것도 내명부 수장 소헌왕후 청송 심씨였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세종대왕의 왕비로 내조를 다하였고, 조선의 국모로서 역할을 충실해 해 나갔다.

이 사주에서 ②임수(壬水)일간 세종과 년간의 정화(丁火)정재의 소헌왕후는 정임합(丁壬合)으로 금슬이 좋아서 8남 2녀를 두었다.

그들은 장녀 정소공주,장남 문종,차녀 정의공주,차남 세조, 3남 안평대군, 4남 임영대군, 5남 광평대군,6남 금성대군,7남 평원대군, 8남 영응대군등이다, 4남 임영대군의 2남이 20대에 영의정에 오른 구성군 이준이다.

세종대왕의 후궁들은 사주에서 ①사화(巳火) 편재로 볼 수 있다. 후궁은 정1품(3정승급) 빈, 종1품 귀인, 정2품 소의(판서급), 종2품(참판급)숙의, 정3품(참의급)소용, 종3품 숙용, 정4품 소원, 종4품 숙원까지 내명부의 품계가 있었다.

영빈 강씨는 서장남 화의군(자녀는 7남)이다. 공노비에서 정1품의 빈이 된'조선의 신데렐라'인 신빈 김씨는 계양군(자녀4남4녀), 의창군(자녀1남2녀), 밀성군(자녀는 4남), 익현군(자녀는 1남1녀), 영해군(2남1녀), 담양군(12세에 사망)과 2녀를 두었으나 2녀는 요절하였고 세종의 많은 후궁들 중 후손이 가장 번창하였다. 특히 밀성군파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많은 정승과 대제학이 나온 집안이다. 영의정 백강 이경여를 비롯하여 이이명, 이관명, 이건명의 좌의정과 우의정을 배출하였고 이민서(1633년 ~ 1688년)-이관명(1661년 ~1733년)-이휘지(1715년 ~ 1785년)는 3대 대제학에 올랐다.

혜빈 양씨 소생은 한남군(1남1녀), 수춘군, 영풍군을 두었다. 숙원 이씨 소생은 정안옹주, 상침 송씨 소생은 정현옹주를 두었다. 기타 후궁으로는 귀인 박씨, 귀인 최씨, 숙의 조씨, 숙용 홍씨, 사기 치씨 등이 있었다. 세종대왕의 사주에서 축토(丑土)의 정관과 ③진토(辰土)편관이 자녀들이다, 세종대왕은 총 18남 7녀를 두었으나 3명은 조졸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란과 단종복위운동으로 인하여 극명하게 갈렸다.

임영대군과 신빈 김씨의 후손인 계양군,밀성군,익현군 등은 세조의 편에 서고 안평대군, 금성대군, 의창군, 혜빈 양씨의 소생인 한남군, 영풍군과 영빈 강씨의 소생안 화의군, 신빈 김씨의 소생인 의창군은 세조의 반대편에 서게 되어 형제들의 골육상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남군의 장인이 사육신 박팽년이다.

세종은 통치 능력과. 총명한 두뇌. 성실성. 추진력. 포용력의 리더십을 갖춘 탁월한 군주였으나 인간 세종은 살아 생전 외가와 처가의 불행과 며느리의 문제 및 사후에도 자녀들의 골육상쟁으로 불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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