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 이야기] 가족 향한 그리움, 호랑이도 돼지도 다르지 않다
[박승온의 민화 이야기] 가족 향한 그리움, 호랑이도 돼지도 다르지 않다
  • 윤덕우
  • 승인 2022.04.2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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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소중함과 그리움
누구나 그렇듯이 휴일에 TV를 보면서 가족들과 특별한 음식도 해 먹고, 이리저리 뒹굴다 하루를 보내는 것은 많은 이들이 꿈꾸는 행복일 것이다.

며칠 전 신문에 시대가 달라지면서 가족의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일상적인 불안감이 큰 요즘 시대에는 ‘가족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만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큰 것과는 다르게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해체되고, 가족 관계 안에서 개인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없는 것 같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세~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가족관’ 및 ‘가족관계’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가족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 편안하고(66.9%, 중복응답), 고맙고(65.8%), 힘이 되는(62.9%) 존재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또한 가족은 든든하고(61.6%), 없어서는 안 될(60.1%) 존재이며, 따뜻하고(55.6%), 행복하다(54.8%)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는 인식도 강했으며, 기대고 싶고(43.9%), 애틋하며(39.5%), 외롭지 않게 한다(38.9%)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현대인들에게 가족의 의미에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결과이다.

오늘은 이러한 가족의 의미를 잘 표현한 민화를 소개하고 싶다.
 

동자모란도-가회민화박물관
<그림1> 작가미상 <동자모란도> 지본채색 20세기 초반 78 X 39cm 가회박물관 소장.

 

6·25 직후 화랑서 ‘돼지그림’ 대량 제작
가화만사성 표제어 아래 이발소에 전시
10마리 가축 통해 ‘행복한 가족’ 표현

보통 민화에서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은 옛날 고사성어나 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그림은 딱히 확실한 배경설화를 알 수가 없다. 필자가 처음 이 그림을 본 순간 너무나 따뜻하고 예쁜 그림이라 한눈에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림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이 그림을 모사한 적이 있는데 제목을 “안녕 엄마!” 라고 지었다.

세 줄기 피어오르는 듯한 모란꽃 아래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와 까까머리의 어린동자는 어머니로 보이는 인물과 그 뒤에 서있는 두 소년과 이별하는 상황이다. 인물들의 묘사가 간략한 필선으로만 그려졌지만 슬픈 듯 일그러진 눈의 표정과 울음을 참는 듯 꽉 닫은 입 꼬리에서 지금 막 이별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배경으로 보이는 물결 모양의 산들을 보면서 ‘어디 멀리 떠나는 가 보다.’ 라는 짠한 마음과 왜 헤어져야 하는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동화책 ‘잭의 콩나물’처럼 춤추듯 위로 뻗어 올라가는 모란과 그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는 경쾌하면서도 평온함 마저 들어 원래 평온하고 행복한 가족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해서 그 이별이 못내 안타까웠다.

자 그러면 동물의 세계에도 가족의 의미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있다.

돼지가족화
<그림2> 돼지가족화. 월간민화 제공

 

중앙박물관 ‘…솔숲사이 호랑이들’ 공개
새끼 돌보거나 달 감상…관념적 분위기
조선 호랑이 그림 중 최고 완성도 자랑

아마 연세가 좀 있는 독자라면 이런 그림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실 듯하다. 이런 그림을 우리는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고 부른다.

이발소 그림은 한국 전쟁 직후 서울 용산 삼각지 부근에 자리 잡은 화랑들이 대량 제작한 조악한 상업화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런 그림의 주 고객은 미군들이었으며 이들은 이런 그림들을 구입해 그리운 캔터기 옛집으로 보내면서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그런데 웬 이발소? 그 시절 이 화랑들은 전국의 이발소에 이런 그림들을 대량으로 보급해 전국의 이발소를 작은 갤러리로 만드는데 한 몫을 담당했었다. 그 시절 이발소야 말로 동내 유일한 문화시설이었기에 연세가 좀 있는 어르신들은 이런 그림들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한다. 어째든... 이런 이발소 그림 중에 하나인 돼지 가족화에 문구도 기억나실 것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표제어에 엄마돼지 1마리와 새끼돼지 9마리 총 10마리로 그려져 있어 10이라는 완성수(또는 무한대수)를 통해 형상적으로도 다복과 다산으로 행복하고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2022년 1월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임인년 맞이 호랑이그림I>이 전시되고 있다.

월하송림호족도1-국립중앙박물관
<그림3> 작가미상 달빛 아래 솔숲 사이 호랑이들 (月下松林虎族圖) 지본채색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시된 호랑이 그림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8폭 짜리 병풍그림 <달빛아래 솔숲사이 호랑이들 (月下松林虎族圖)이다.

달빛 아래 솔숲 사이로 11마리의 호랑이가 등장한다. 3마리는 표범의 무늬를, 5마리는 호랑이 무늬를 하고 있다. 이중 표범 한 마리는 세 마리의 새끼 표범과 어우러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거대한 호랑이 가족인 것이다. 옛날에는 호랑이든 표범이들 모두 호랑이도 불렸다. 새끼를 돌보는 어미 호랑이와 솔숲사이 떠오른 달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호랑이의 철학적인 표정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호랑이는 벽사(闢邪)를, 달과 소나무는 장수(長壽)를 의미한다. 이 그림은 현재 전하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 중에서 필력과 구도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폭 마다 호랑이 한 마리씩 그려 넣은 이 작품은 국내에서 전하는 호랑이 그림 중 가장 큰 축에 속한다. 주최 측은 이 작품에 ‘달빛 아래 솔 숲 사이 호랑이들’이란 제목을 붙였다. 출림호도(出林虎圖)형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11마리의 호랑이는 더 좋은 세상을 이민(?)가는 가족의 비장한이 보여 진다. 이 작품은 화가 권옥연(1923~2011)의 구장품으로 알려진 작품이었는데 권옥연 작가의 사후 이건희 컬렉션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이제 곧 그림이 종료된다고 하니 서둘러 구경을 가시라.

자 이제 현대 민화로 재해석한 호랑이 가족을 만나보자.
 

가족-오영희
<그림4> 오영희 작 2018년 작 ‘가족’ 순지에 분채. 작가소장.

금슬 좋은 호랑이 부부와 여덟 형제들의 사랑 가득한 모습을 호랑이와 모란으로 빗대어 표현했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들려올 듯 정감 어린 분위기에 마음이 절로 평온해지는 작품이다. 월하송림호족도의 호랑이 가족이 다소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라면 오늘날의 호랑이가족을 즐겨 그린 오영희 작가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을 배경으로 우리모두 잘 살아보세! 라는 현실적인 희망을 담은 가족의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다시 처음 그림 동자모란도로 가보자.

시대가 변해도 가족의 의미는 늘 그렇게 애틋하고 그리운 존재일 것이다. 필자가 동자모란도를 보며 남다른 감동을 받았던 것은 필자의 동생이 외국으로 유학을 갈 때 공항에 나가 배웅하고 돌아오며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고, 멀리 떠나 사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잔하고 그리운 마음을 아는 까닭에 이 그림은 늘 짠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제목도 ‘안녕 엄마!’라고 지었던 것 같다.

가정의 달 5월이 다가온다. 지금부터 어린이날, 어버이날 선물준비에 가족 간에 모임도 잦아질 듯하다. 지금이야 기술이 좋아져서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버튼만 눌리면 얼굴이 나오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래도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오순도순 맛난 것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날은 요원해 보인다.

필자의 버킷리스트 중에 가족사진 찍는 날이 들어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이다. 5월 가정의 달이 다가오며 흩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글을 마친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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