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B갤러리, 수운 김정숙 개인전 ‘書, 詩와 만나다’
DGB갤러리, 수운 김정숙 개인전 ‘書, 詩와 만나다’
  • 황인옥
  • 승인 2022.04.2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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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전통서예, 詩心 만나 생기를 얻다
활동 중인 시인과 콜라보 시도
김동원의 서정성·담백함 매료
좋은 글 찾아 감정 전달 극대화
2인의 예술혼 결합 ‘큰 시너지’
시각 유희 즐기는 트렌드 주목
전통 벗고 현대적 조형성 수용
자유분방 ‘수운표 민체’ 개발
흘림·농담 기교로 율동성 가미
서예가 수운 김정숙이 김동원의 시를 서예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 작은 사진은 김정숙 작 ‘산’

김정숙작-밥
김정숙 작 ‘밥’

서예(書藝)가 시(詩)를 품었다. 김동원 시인의 시를 서예가 수운 김정숙이 서(書) 예술로 표현한 30여점을 전시장에 걸었다. 시인 김동원의 시심(詩心)이 묵향(墨香)으로 재탄생한 작품에서 서예를 향한 수운의 철학이 묻어난다. “감동 없는 예술은 존재이유가 없다”는 것이 수운 붓글씨의 출발이다. 수운은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서예의 속성에 기반하여 첫째 의미전달, 둘째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서(書) 예술의 핵심 가치로 두고 있다. 그 두 가치가 향하는 최종 목적지에 ‘감동’이 자리한다.

‘감동’은 예술이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다. 수운이 25일 개막하는 개인전을 김동원 시인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이유도 ‘더 큰 감동’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문자를 소재로 하는 서예의 속성상 ‘문자’는 첫 번째 탐구 대상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인격수양의 수단으로 서예를 바라본 지점도 문자를 기반으로 한다는 특수성에 있었다.

문자로부터 출발하는 서예의 속성에 비춰보면 서예는 두 가지 요소에 충실해야 한다. 전체적인 글자의 짜임새는 물론이고 의미전달 또한 놓칠 수 없는 요소다. 이 두 요소가 균형을 이를 때 감동백배가 된다. 김 작가는 좋은 글귀를 선택하는 것이 감동을 향한 첫 번째 관문이라고 판단하고, 최적화된 방법을 찾아갔다.

조선시대에는 자작시를 서예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대의 서예가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시인의 시구(詩句)나 현자의 말씀을 소재로 채택해왔다. 김 작가는 이 방법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만의 글귀를 쓰려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의미전달에 더 가까기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시도는 자작시였다. 서예가가 직접 시를 지어 붓글씨로 쓰는 것만큼 확실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도 없겠다 싶어 시 짓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곧 한계에 봉착했다. 자작시를 소재로 했을 때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 시 짓기에 집중하느라 정작 본업인 서예에 소홀해 진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고, 직접 할 수 없다는 현존하는 시인의 시를 소재로 하는 것도 대안이 되겠다 싶었다. 현존하는 시인과의 콜라보레이션의 시작이었다.

“현존하는 시인과의 콜라보레인션은 자작시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오늘날 현존하는 시인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개성이 강한 두 예술가가 하나의 작품 속에서 융합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수성에 부합하는 시인을 찾았다. 그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인이 김동원 시인이었다. 그의 시가 현대시의 난해함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서정적이고 담백하다는 점에 끌렸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시인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점이었다. “시 세계를 시인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시인으로부터 시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시의 감성에 가장 부합하는 붓글씨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두 예술혼의 결합은 양적(量的)인 팽창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질적(質的) 향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잘못하면 “아니 간만 못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두 예술혼이 지극하게 교감할 때만이 원하는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수운은 쉽지 않은 시도였지만 기꺼이 감행했다.

“예술적인 형식이 다양화되는 오늘날 서예도 현대인의 다양화된 요구에 맞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이죠.”

서예가 위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대학에서 서예학과가 사라지고 있고, 서예에 새롭게 진입하려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서예의 침체와 서(書) 예술의 소멸은 별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 또한 강하다. 서예 재 점화의 근거 속에 서예가 한국 시각예술의 뿌리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수운은 서예의 호시절을 마냥 기다리는 편에 서려하지 않았다. 일찍 전통서예의 위기감을 간파하고 서예와 현대인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해결책을 찾았다. 서예가 외면 받는 현실에 적극 개입하여 능동적으로 대안을 찾자는 쪽이었다. 핵심은 현대인의 미의식을 충족시키며 전통서예의 정신도 계승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접점 찾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수운은 ‘시각 이미지의 노예’로까지 불리며 시각적인 유희를 즐기는 현대인의 특성에 주목했다. 시각에 민감한 현대인의 특성을 서예가 적극적으로 수용할 경우 서예의 부흥을 이끌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전통서예의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조형성과 다양성에 부합할 때 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서예가 다시금 굳건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현대인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부족했기 때문에 서예가 외면 받는다는 현실을 직시했어요. 그 부분을 타계하기 위한 대안으로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서예에 초점을 맞추게 됐어요.”

수운은 의미전달은 자작시나 현존하는 시인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문제는 조형미인데, 조형미에 민감한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수운표 민체였다. 그의 민체는 전통서예의 경직된 서체와 달리 자유분방함을 골자로 한다. 동적(動的)인 소재를 정적(靜的)인 궁체나 정자로 쓰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그의 민체가 탄생했다.

그는 “계절의 분위기나 표현하려는 글귀의 내용에 맞는 글자체를 선택해야 하는데 전통서예는 소재나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고체나 궁체를 일률적으로 사용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수운표 민체는 흘림이나 두드러진 먹의 농담 차이를 적극 활용하여, 전통서예가 간과했던 율동미나 감정 상태에 충실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수운 서예의 정수는 문자와 조형이 서로 시너지 관계로 엮이며 더 큰 감동으로 이끈다는데 있다. 서예와 함께 수묵화에도 능통한 이력이 문자와 조형의 균형을 이끈 원동력이다. 그는 이번 작품들에서 시인으로부터 시에 내재된 의미를 충분히 전달받으려 했고, 시인의 시가 가슴에 와 닿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읽어 자신의 감정으로 승화하는 것으로 의미와 조형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는 결국 서예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작점이 됐다.

“수운표 민체는 일반 서민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서민서체라고 할 수 있어요. 전통마당놀이처럼 다양한 상황들을 자유롭게 수용하며 소통하고 있죠.”

서예가는 창작과 전통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서예의 전통이 워낙 견고하여 쉬 버릴 수도 없고, 전통만 고집하다가는 외면받기 십상이다. 수운은 서예가와 창작자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좋은 글귀를 일정한 틀로 표현하는 서예의 형식에 충실하면서 창작의 기쁨도 충분히 누리고 싶어한다. 자신만의 서체인(수운표) 민체를 개발하고, 서예에 현대적인 물성과 조형성을 한껏 끌어들이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서예도 결국 창작의 영역이라는 믿음으로 창작에 대한 노력에 집중하고자 했어요. 그 결과 수운의 서예가 차별지점을 찾은 것 같아요.”

서예가 밀려나는 추세지만 서예만큼 그를 매혹시킨 것도 없었다. 30여년째 서예에 몸담으며 느낀 서예의 매력은 만 가지 색을 품고 있는 먹의 포용성과 그렇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무한확장성이었다. 서예의 포용력과 확장성은 늘 그를 설레게 했고, 도전으로 이끌었다.

서예가 가장 한국적이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할 경우 가장 세계적인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그의 서(書) 예술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작업실에서 흰 화선지를 펼쳐놓으면 “우주도 담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충천하는 배경에도 서예가 가진 위대성이 있다. 그는 서예가 다시 환호 받을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화선지를 펼친다.

“서예는 우리 예술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안정과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좋은 예술장르입니다. 전통의 가치에 저만의 창작요소를 접목한 수운표 서예를 계속 하며 현대인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수운 김정숙 개인전 ‘(서)書, (시)詩와 만나다’전은 29일까지 DGB 갤러리(대구 수성구 수성동2가)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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