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의 미래칼럼] 이더리움이 중립적이면, 크립토는 무국적 산업인가?
[박한우의 미래칼럼] 이더리움이 중립적이면, 크립토는 무국적 산업인가?
  • 승인 2022.04.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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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 영남대 교수, 빅로컬빅펄스Lab 디렉터
이더리움(ETH)의 개발자 비탈린 부테릭은 러시아 출신의 캐나다 기술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이더리움은 중립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분명히 할게요. 러시아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페이팔의 창업자인 피터 틸은 인공지능이 공산주의 속성을 지닌 반면에, 크립토(crypto)는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와 훨씬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이 생소하겠지만, 실리콘밸리의 신현규 특파원이 보내오는 ‘미라클 레터’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서 빅테크 기업들이 러시아 내부에서의 접속을 차단하거나 친러 성향의 광고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블록체인 진영에서도 무언가를 해야 했다. 마침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도 암호화폐 기부를 요청하면서, 수신 계좌를 트위터에 공개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테릭은 기술로서 이더리움은 가치중립적일지라도 이더리움 보내기 운동은 인도적 차원으로 진행된 것을 강조했다.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알고리즘은 빅데이터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는 작업이다. 빅데이터는 데이터의 분산화가 아닌 집중화를 요구한다. 알고리즘은 빅데이터의 영양분으로 성장하고, 알고리즘은 인공지능의 근본 엔진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시스템은 중앙집권적인 공산주의 이념과 유사하다. 블록체인에도 알고리즘이 있다.

그런데, 블록체인의 빅데이터는 개별화와 분산화될 경우에 성능이 더 우수하다. 미라클 레터에 따르면, 피터 틸의 주장에 숨겨진 이와 같은 맥락을 알면 그의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앞의 내용을 거두절미하고 요약하면 이렇다. 블록체인은 특정 국가 혹은 집단이 독점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그야말로 탈중앙화 및 탈집중화 시스템이다. 우크라이나가 암호화폐로 보내달라고 호소한 것도 전통적 금융망의 검열과 제재로부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암호화폐와 가상자산을 무(無)국적 산업으로 당연한 듯 인식하고 수수방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발간한 ‘산업기술 동향워치’ 자료를 보자. 마켓 리서치 회사인 ‘CB 인사이트’가 선정한 2022년 글로벌 50대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기업들은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선정 기업들은 총 15개국에 위치해 있었다. 절반이 되는 28개 기업이 미국에 소재하고 있다. 그 외 국가들을 보면, 영국 5개, 캐나다, 프랑스, 싱가포르, 스위스가 2개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암호화폐와 가상자산 산업의 중심축이 미국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블록체인 산업은 채굴, 거래, 지갑, 결제의 4개 분야로 구성된다. 암호화폐 태동기에 채굴이 중요한 분야였다. 채굴업자의 매도 시점에 따라 가격 변동도 심했다. 채굴장이 많이 소재한 중국의 블록체인 정책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도 많았다. 그렇지만 거래 활성화와 활용사례 즉 ‘use case’ 발굴이 더 중요하게 부상하였다. 이번에 선정된 글로벌 기업의 사업 범주를 보더라도, 인프라 및 개발이 16%(8개), 거래소 14%(7개), 수탁 및 지갑 서비스와 NFT 및 게임이 각각 12%(6개)로 나타났다.

투자 자본을 보면, 글로벌 기업의 미국 등 서구 쏠림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코인베이스 벤처스는 50개 기업 중 16개 사에 투자했다. 이 회사는 코인베이스의 투자사이다. 코인베이스는 2021년 4월 미국 나스닥에 최초 상장된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미국 슈퍼볼 중계방송 기간에 움직이는 QR 광고를 내보내며 대중적으로 더 알려졌다. 그리고 미국의 또 다른 벤쳐 캐피탈인 ‘안데르센 호로위츠’ 즉 a16z가 14개사를 투자했다. a16z는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을 키워낸 마이다스 손으로 알려져 있다.

코인 시장에서도 개미 투자자들이 중국계로 분류된 자산보다 미국 토큰을 선호하는 현상이 최근에 더 강하다. 퀀텀(QTUM), 트론(TRX), 네오(NEO), 비체인(VET) 등 중국 관련 암호화폐의 인기와 수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크립토는 모험적 기술이자 기존 금융과 비교하면 파괴적(disruptive) 자산이다. 크립토는 소위 3T가 두루 완비된 국가에서 본래의 가치를 발휘한다. 3T는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의 창조이론으로 젊은 인재(talent), 첨단 기술(technology), 관용성(tolerance)을 뜻한다. 3T 관점에서 서양이 동양보다 확실히 앞서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분위기는 3T와 아직 거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과거 주역들인 장·노년층의 시각과 입장이 비교적 강한 분위기이다. 크립토 산업은 혁신의 혁신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의 명백하고 현존하는 사회적 위험이 아니라면, 혁신을 수용하고 나아가 적극 권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크립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더리움 중립성이 담보되어도 모든 나라가 크립토 산업의 달콤한 열매를 동일하게 먹을 수는 없다. 3T의 정착을 가로막는 완고한 법 제도와 거부적 분위기를 하루빨리 개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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