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어린이날에 읽어보는 영국의 호러스토리
[대구논단] 어린이날에 읽어보는 영국의 호러스토리
  • 승인 2022.05.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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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번 주 목요일은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한국사회에서 어린이들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가끔씩 신문에 나오는 어린이 관련 기사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오늘은 영국의 호러스토리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과 연결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영국의 ‘루시 클리포드’가 쓴 단편소설 ‘새엄마, The New Mother, 1882’는 어두운 밤에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눈이 동그래질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스토리를 간단히 옮겨 보겠다.

깊은 숲 속에 착한 두 어린 자매와 엄마가 살고 있었다. 아빠는 멀리 바다로 일하러 나갔다. 어느 날 두 자매는 숲에서 낯선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자기가 아주 작은 사람들을 상자 속에 갖고 있는데 나쁜 아이들에게만 보여 줄 수 있다고 했다.

호기심이 생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최대한 나쁘게 했다. 당황한 엄마는 너희들이 이러면 엄마는 멀리 떠나고 새엄마가 올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매는 숲 속의 낯선 여자의 꼬임에 빠져 점점 더 엄마에게 나쁘게 했다. 어느 날, 숲 속의 여자는 자매에게 너희들의 나쁜 짓은 충분치 못하다며 상자 속 작은 사람들도 보여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엄마는 사라지고 대신 유리 눈을 가진 새 엄마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자매가 급히 집에 와보니 엄마가 없었다. 자매는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유리 눈과 나무꼬리를 가진 새엄마가 나타나 집에 들어오려 했다. 자매는 무서워서 숲으로 도망쳤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대신 새엄마가 집에서 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몰래 통나무 사이로 집을 엿보면, 어둠 속에서 새엄마의 유리 눈이 번쩍였으며 큰 나무꼬리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882년에 나왔고 그 해 루시 클리포드의 첫째 딸이 대략 7살쯤으로 추정되니 아마도 자신의 딸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이런 호러스토리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집 밖의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하고, 유혹에 빠져도 안 되며, 더구나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엄마에게 나쁘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듯하다. 나쁜 짓을 한 아이들에게는 포근한 엄마가 떠나고 공포의 괴물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참혹한 결과가 주어진다.

이 스토리는 무엇보다도 고립된 아이들의 처지에 눈길이 가게 한다. 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엄마를 제외하고는 도움을 요청할만한 주변 친척이나 이웃이 전혀 없다. 아이들은 괴물이 나타나자 숲으로 도망을 치지만 자신을 도와 줄 이웃 주민이 전혀 없고 심지어는 의지할 만한 친척도 없다. 그래서 숲에서 야생열매를 먹고, 나뭇잎을 덮고 추위에 떨며 자야하는 삭막한 현실에 몰리게 된다.

1882년 영국의 사회현실이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커뮤니티 없이 고립되어 사는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2022년 한국의 상황도 이와 비슷한 면이 일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부모한테 버림받거나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 한국의 아이들 중에는 지역사회의 도움을 못 받고 고립되고 방치된 채 고통 받는 안타까운 경우를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이 ‘The New Mother’스토리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미국 영화 ‘나 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The New Mother’ 스토리의 아이들은 꼬임에 쉽게 빠지고, 숲으로 도망쳐 집에 가지 못하며 집주변만 맴돌며 괴물을 엿보는 등 무척 수동적 아이들이다. 반면 ‘나 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8살짜리 아이는 도둑들과 맞서 대항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2009년에 나온 ‘코렐라인’이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도 주인공 여자아이인 코렐라인은 단추 눈을 가진 새엄마 괴물과 맞서 싸우며 부모까지 괴물로부터 구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의 스토리 속에서 아이들은 능동적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독립된 주체로 그려지는 반면, ‘The New Mother’의 아이들은 한국의 신문기사에 나오는 현실 속의 아이들처럼 어리고 연약하기만 존재다. 아이들은 이처럼 교육과 환경에 따라 독립적이고 능동적일수도 있는 반면, 한없이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The New Mother’스토리가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공동체 사회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적절한 교육과 삶의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도움을 주거나 연락할 사람이 없으며,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의 스토리가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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