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새 가릉빈가, 불교 인면조와 고구려 인면조는 같을까 다를까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새 가릉빈가, 불교 인면조와 고구려 인면조는 같을까 다를까
  • 윤덕우
  • 승인 2022.05.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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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개회식서 본 ‘그것’
사람 얼굴에 날개 달린 형상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역할
극락에 사는 동물
불단이나 불화에 자주 등장
사찰서 찾아보는 재미 쏠쏠
‘부처의 화현’으로 묘사되기도
인면조신 형태의 기원
5월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많은 날이고 기념해야 하는 날도 많다.

5월 8일이 어버이날이자 석가탄신일이라 필자도 봉축 법요식에 사회를 보러 가야 하니 마음이 분주해 진다.

이맘 때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관련된 그림에 대한 설명은 많았으니 오늘은 불교와 관련된 그림을 소개해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해 보고자 한다.

흔히들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하면 연꽃을 떠올리고, 큰 사찰에 걸려있는 목어(木魚), 혹은 무거운 비석을 이고 있는 거북, 혹은 부처님 전을 수호하는 용을 상상하시겠지만 오늘은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불교의 상상의 동물 가릉빈가(迦陵頻伽)를 소개한다. 가릉빈가는 이름도 낯설지만 이름도 다양하게 불린다.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인 칼라빈카(kalavinka)를 음역한 것으로 한자음으로는 가비가(迦毘伽), 가미라(迦尾羅), 가릉(迦陵), 가릉가(迦陵伽), 가릉빈(迦陵頻), 가릉가의(迦陵伽衣), 가릉비가(迦陵毘伽), 갈수가라(鞨隨伽羅) 등으로 부르며 줄여서 빈가(頻伽)라고도 한다. 가릉빈가의 모습은 봉형(鳳形)에서 발전한 형상으로 소리가 아름답다 하여 미음조(美音鳥), 호음조(好音鳥), 극락조(極樂鳥), 묘음조(妙音鳥)라 불리기도 한다.

불교를 상징하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이기에 불교 사찰 속에 숨은 그림 찾기로 꼼꼼하게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그 존재감을 국제적으로 드러낸 적도 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는 극락세계에 깃들어 산다는 가릉빈가를 형상화한 인면조(人面鳥)로 등장시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인면조
<그림1>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인면조. 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 제공

사람 얼굴에 긴 목과 날개를 가진 인면조(人面鳥)는 올림픽 개회식에서 크고 흰 날개를 퍼덕이며 등장했고, 이 장면이 SNS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인면조(혹은 가릉빈가)에 대한 관심이 커졌었다.

이 인면조는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벽화에 묘사되어 있으며, 사람 얼굴을 한 새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덕흥리고분가릉빈가
<그림2>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등장한 인면조.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출토보고서 제공

일각에서는 이 고구려 벽화의 인면조와 가릉빈가는 다르다고 하고, 어쩌면 인면조의 형상이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가릉빈가의 형상의 기원이 되었다는 등의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해 보이지만 필자는 그 형상이 가지는 일맥상통함과 잊힌 우리의 고대 문화를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면조와 가릉빈가를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은해사가릉빈가
<그림3>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의 가릉빈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영천은해사의 백홍암에 가면 대웅전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을 잘 살펴보시라.

가릉빈가가 부처님께 열매를 공양하는 모습이 부도로 새겨져 있다. 이처럼 가릉빈가는 극락을 상징하여 제작한 불단이나 불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기원정사의 가릉빈가 이야기는 태평성대의 상징인 요순시대(堯舜時代)에 봉황이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 앞뜰에 나타나 춤을 추었다는 중국 고대 설화 내용과 유사하다.

가릉빈가에 대하여 <능엄경(楞嚴經)>에서는 “그 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미친다”고 하였으며, <능엄경(楞嚴經)>의 <정법엄경(正法念經)>에서는 “그 소리가 극히 신묘하여 하늘과 사람과 긴나라(緊那羅)(음악신音樂神)도 흉내 낼 수 없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대지도론(大智度論)> 권28에 “가릉빈가는 알에서 깨어나기 전에도 울음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여타 새들의 울음소리 보다 미묘하고 뛰어나며, 보살마하살의 소리와 같다”고 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범음이란 대범천왕이 내는 음성으로 그 음이 정직하고 화아(和雅)하며 청철(淸徹)하고 심만(深滿)하며, 그 음심만 편주(遍周)하여 멀리 들리는 음성이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소리는 부처만이 낼 수 있는 소리이다. 따라서 범음을 내는 가릉빈가는 다름 아닌 부처의 또 다른 화현(化現)이라 할 수 있다.” 라고 인용하고 있다.

이제 가릉빈가를 그림 속에서 찾아보자.
 

민화잡화병10폭-가릉빈가
<그림4> 화조도 10폭 병풍 중 10폭 일부. 작가미상 지본채색 20세기 초 27 X 75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신가회민화박물관소장
<그림5> 신(信) 작가미상, 20세기 초반 제작 지본채색, 34x90, 30x59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가릉빈가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도상(圖像)이었는데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민화 문자도와 잡화병(雜畵屛)에서 등장한다.

잡화병이란 화훼, 괴석, 초충, 산수 등등의 다양한 화목을 각기 다른 화목에 담아 하나의 병풍으로 꾸민 것을 말하며, 수요자의 신분과 취향에 따라 그 화풍이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근대기 유행 화목 중 가장 다양한 소비자층의 사랑을 받았던 화목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잡화병에 그려진 가릉빈가 도상은 단순히 이 작품에만 나타난 우연한 포함된 도상이라기보다는, 당시 다른 회화 작품에도 그려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잡화병이 장식성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릉빈가는 단순히 도상의 차용만이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가릉빈가는 머리는 사람 형태이고 하반신은 날개, 발, 꼬리를 가진 물상으로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졌을까?

가릉빈가가 갖추고 있는 인면조신(人面鳥身) 형태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인도 기원설, 그리스 기원설, 그리고 한대(漢代) 화상석에 보이는 우인(羽人. 날개가 있는 신선의 일종)기원설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릉빈가의 형태에 관한 한 다원발생적인 측면보다는 ‘동서 문화의 교류와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서기 전 4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東征) 길을 따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파급된 그리스 문명은 현지 문명과 융합하여 제3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다라 미술’이고 ‘간다라 불상’이다. ‘동서 문화의 교류와 융합’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가릉빈가도 고대 인도신화 전설의 기초 위에,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천사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제3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가릉빈가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오늘날 사찰 곳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가릉빈가에 대해 자료를 찾고 논문을 읽어보니 평창올림픽의 인면조와 그 의미가 다르지 않는 듯하다. 극락세계의 새로서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로서 부처님의 말씀을 대중들에게 전파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세상은 하루도 조용하고 편한 날이 없는데 부처님 오신날 만이라고 가릉빈가의 날개 짓에 평화로운 하루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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