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동물의 질병 인간에 전염되어 수명 단축·체중 감소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동물의 질병 인간에 전염되어 수명 단축·체중 감소
  • 김종현
  • 승인 2022.05.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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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구석기시대와 문자
신가유구신석기
신석기시대 인간의 신장은 구석기시대 보다 더 줄어들었다. 그림 이대영

◇구석기시대의 약육강식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가 말하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弱肉强食).”는 당시 양육강식(弱肉强食, the law of the jungle)의 사고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이에 터전을 두고 삶도, 종교도, 문화까지도 혼합되었다. 그래서 ‘거대한 대자연(Titanic Nature)’이란 절대자의 위력(absolute force)에는 두려움을 가졌으며, 위대함과 신비감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수렵채취란 정글법칙시대(the age of the jungle)에 유일한 생존방식(Hunting and gathering was the only way to survive)이었다. 좀 험악하게 표현하면 약탈경제(plunder economy)이고 해적경제(pirate economy)다. 가장 완곡하게 한 경제학적인 표현은 ‘자유방임경제(laissez-faire)’다. 단적인 사례로 신분이 높은 죽은 자를 위해서 낮은 신분의 사람을 희생시키는 순장(殉葬)은 대략 10만 년 전(중기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ce sapience) 이전까지 횡행되었다.

이런 시대에 문화(culture)란 i) 동양에선 자구적(字句的)인 해석으로는 문자로 표기(文字化)하는 시기를 기준으로, ii) 또 다른 하나는 서양의 경작(culture)이라는 해석에 따른다. 오늘날에도 일본(日本)은 국내경제 혹은 국제외교 등에서도 과거 한반도를 3,600회 이상이나 해적질과 약탈침입을 했던 문화적·정신적 우월성이란 문화적 유전자(cultural memme)를 여전히 갖고 있다. 수시로 이런 유전자를 ‘전가의 보도(傳家之寶刀)’처럼 사용하곤 한다. 특히 약육강식 혹은 황국신민의 작태(皇國臣民の作態)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민화(臣民化)에 길들어 있는 약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독일 켐퍼 저술 라틴어 ‘회국기관’
박물지형 여행기서 쐐기문자 언급
이후 설형문자에 대한 연구 시작돼
BC 3000년경부터 점토판에 표기

대영박물관 ‘히에로글리프’ 상형문자
BC 3200년부터 AD 394년까지 사용
1899년, 청나라의 갑골문자 발견돼

동서양이 공동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문자사용을 기준으로 하면, 독일 식물학자 의사인 엥겔베르트 켐퍼(Engelbert Kaempfer,1651~1716)가 1712년 저술한 라틴어 ‘회국기관(廻國奇觀, Amoenitates Exoticae)’이란 박물지형 여행기에서 고대 수메르인의 쐐기문자(litteraecunetae)를 언급했다. 이후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어 BC 3000 년경부터 점토판(粘土板)에다가 신전에게 바치는 곡물, 소, 양, 물고기 및 노예 등에 대해 갈대로 쐐기모양을 표기했던 게 기원이 되었다. 1천500년 동안 메소포타미아 중심으로 오리엔트문명에 설형문자가 기여했다. 문자를 사용했던 시대는 신석기시대의 토기제작에서 시작해 청동기시대의 금석문을 걸쳐서 세계적으로 그림글자(象形文字), 쐐기글자(楔形文字) 혹은 매듭글자(結繩文字) 등이 발명되어 사용되었다.

1799년 나일강(The Nile River)) 삼각주 마을에서 하자르 라시드(Rashid) 즉 현무암에 새겨진 로제타석(Rosetta Stone)을 나폴레옹이 발견했다. 그 내용은 BC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Ptolemy V)세의 즉위식을 기념하고자 이집트 상형문자와 그리스어가 같이 돌에다가 새겨져 있었다. 한편 쐐기문자로 된 출토유물로는 1928년 이라크 이난나(Inanna, 고대 수메르 사랑과 전쟁의 여신) 신전 터에서 발굴된 점토판이 있다.

한편, 대영박물관에 현재 소장 중인 파피루스 기록에도 있는 그리스어 ‘성스러운 새김(sacred carvings)’이란 의미인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라는 상형문자(象形文字)는 BC 3200년부터 AD 394년까지 대략 3천600년 동안 사용되었다. 동양에도 1899년 청나라의 관원 금석학자 왕의영(金石學家 王懿榮)에 의해 허난성 안양현 소둔촌(河南省安陽縣小屯村)의 갑골문자가 용골(龍骨)로 세상에 나왔다. 은허궁전종묘유지의 갑골문자가 발견됨으로써 상나라(상, BC 1,600~BC 1046) 이전에도 여하한 상형문자를 사용했다. 갑골문자로는 제사, 농업, 전쟁, 수렵, 국왕일기, 질병 혹은 재앙 등을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 달구벌에 첫발 내딛었던 선인
고기잡이 등으로 먹을 것 쉽게 얻어
풍부한 자원에 하루 2~3시간이면 충분
신석기시대로 넘어오며 노동시간 증가
빈부격차도 심해지는 퇴행현상 보여

◇구석기(paleolithic age) 때 달구벌의 생활문화

3만~4만 년 전부터 몇 차례 한반도 달구벌에 첫발을 내딛었던 선인들은 아마도 초기구석기 시대로 짐작되며, 그들은 무엇보다도 기온이 따뜻하고 고기잡이 등으로 먹을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에 정착을 시작했다. 당시는 대체로 풍부한 자원물산으로 먹거리 마련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초기엔 평균 하루에 2~3시간만으로도 먹고사는데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인구도 늘어나고 자연환경도 고갈되어 갔다. 열악해짐에 따라 하루에 평균 6시간 정도 수렵채취경제활동(hunting-gathering economic actions)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neolithic age)로 넘어오면서 노동시간은 9시간까지 늘었다.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동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근로시간은 1천967시간으로 OECD 가운데 멕시코 2천137시간 다음으로 일을 많이 했다. 한 마디로 삶은 다소 풍요하고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먹고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연구한 건, 미국 시카고대학교 인류학 교수인 마셜 데이비드 살린스(Marshall Sahlins, 1930~2021)가 쓴 2014년 출간 ‘석기시대 경제학(Stone Age Economics)’에서 구석기인들은 하루 2천 kcal 이상 충분한 먹을거리를 얻고자 하루 평균 2~3시간정도 노동밖에는 하지 않았다. 신석기농업혁명과 근대산업혁명은 오히려 인간의 삶의 질을 낙후시켰다. 인간의 빈곤문제도 문명이 낳은 부산물이다. 즉 먹거리 마련에 더 많은 노동시간을 투입하고, 빈부격차가 심각해지는 퇴행현상을 보이고 있다고도 주장했다(better, healthier and more fulfilled than the millions enjoying the affluence and luxury afforded by the economics of modern industrialisation and agriculture).

다른 한편, 스펜서 웰스(Spencer Wells, 1969년생)가 2010년 저술한 ‘판도라의 씨앗 : 문명에 예기치 못한 대가(Pandora’s seed : the unforseen cost of civilization)’에서 구석기시대 수렵채집인(nomadic hunter-gatherer nature)들의 수명에 있어선 남자는 평균수명 35.4세, 여성은 30세였는데 신석기시대 말기에는 남자는 33.1세, 여자는 29.2세로 줄어들었다.

신장에 있어서도 구석기시대(paleolithic age) 남자의 신장은 177㎝이었음에 비해 신석기시대 말기 남자는 161㎝이었다. 식량이 증가하여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수명과 체구는 더욱 나빠졌다. 신석기시대의 농경목축사회로 전환됨에 따라 동물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염되어 수명단축과 체중감소를 가져왔다(More food but also disease, craziness, and anomie resulted from the agricultural revolution). 그러나 농경, 목축 및 질병퇴치 등에 따른 직업은 수십 종에서 수백 종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4차 산업시대에는 수십만 종의 다양화된 직업분류가 생겨났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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