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작가 “흑백-칼라 등 서로 다른 세계가 발란스 이루는 게 완성”
김은아 작가 “흑백-칼라 등 서로 다른 세계가 발란스 이루는 게 완성”
  • 황인옥
  • 승인 2022.05.11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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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토마, 김은아 작가 초대전
첫 애 4살때 서양학과 대학원
초기작부터 최근까지 30여점
기억놀이-미미인형 연작 전시
노후 주택을 예술적 취향으로
미미인형은 미술 개념적 기반
“인형 놀이는 행복에 이르는 길”
김은아작-미미의기억
김은아 작 ‘미미의 기억’
김은아작-dailylook
김은아 작 ‘dailylook’

화려한 드레스와 액세서리, 값비싼 구두와 가방이 장식된 방에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드레스를 고르고 있는 미미인형의 얼굴에서 불행의 그림자를 찾을 수는 없다. 세상에 없는 풍요와 아름다움으로 장식된 미미의 방에서 완벽한 행복감이 피어오른다. 미미 작가로 불리는 김은아의 미미인형 시리즈 중 하나다.

또 다른 작품 ‘기억놀이’ 연작은 반전이다. 토끼를 닮은 캐릭터가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블록으로 벽을 두른 오래된 주택 앞에서 놀고 있다. 재개발 직전의 노후된 주택가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어서 화려함의 극치인 핑크소녀 미미의 방과는 분위기가 사뭇 대조적이다.

김 작가는 “토끼 캐릭터와 미미 인형은 저의 ‘페르소나(가면)’”라며 대조적인 두 분위기를 동질감으로 묶었다. “제게는 화려한 미미의 집이나 오래된 주택가 모두 예쁘고 따뜻한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그 속에서 어린시절의 제가 사랑했던 캐릭터들이 걱정없이 놀고 있으니까요.”

김은아 작가 초대전이 갤러리토마에서 15일까지 열린다. 전시에는 그의 작업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 30여점이 걸렸다. 3층에는 초기작을, 2층에는 최근작이 전시됐다. 이번 전시는 대구와의 이별을 고하는 의미가 더해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 이후 삶의 터전을 제주로 옮긴다. 자녀들이 서울 소재의 대학에 진학하고 어머니로서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남편의 사업처가 있는 제주에 정착하여 작업에만 매진할 계획이다.

그의 그림 여정은 부침이 많았다. 일찍부터 그림에 매료됐지만 평범하게 살기를 희망했던 부모의 반대로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도자기과에 진학하면서 첫 번째 좌절을 겪었다. 그나마 미술의 주변부라도 붙들고 싶어 도자기를 택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결혼과 육아에 지쳐가면서 미술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 첫째 아이가 4살될 무렵, “불현 듯 그림에 대한 갈망”을 불태우면서 영남대 대학원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작업의 출발은 어린시절 기억이다. 3층 전시장에 걸린 작가의 첫 번째 연작 ‘기억놀이’부터가 시작이었다. 주부로 살아가던 어느 날, 부엌으로 난 창으로 들어온 아파트 풍경을 보고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터졌고, 자연스럽게 수면아래 잠자고 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파트 풍경에서 같은 구조와 같은 위치에 TV와 소파를 놓고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종류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현대인의 삶을 직시하면서 주택가에서 놀고 있는 꿈 많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가 “어릴 때 살았던 집들을 아파트와 비교하면 허술하고 불편했지만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정형화된 아파트에 비해 더 예쁘고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때 살았던 주택이 엄마의 자궁처럼 다가왔다”고 강조했다.

‘기억놀이’ 연작은 소박한 주택의 외부와 플라스틱 용기 등의 소품을 놀잇감 삼아 놀고 있는 천진난만한 ‘미구’ 캐릭터로 구성됐다. 주택은 흑백, 미구는 화려한 채색으로 처리했다. “미구는 스스로는 완벽한 똑똑이였지만 세상 허당인 캐릭터에요. 어린시절의 제 자신에 해당되죠. 선생님들이 저를 ‘미구야 미구야’라고 부르셨거든요.”

미미는 작가의 페르소나로, 자유분방하고 제기발랄했던 어린시절의 자신이다. 호기심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의 부모에게는 버거운 아이였다. 그는 미미인형을 통해 어린시절 억눌렸던 열망을 발산하려 한다. “어린 시절의 제게로 찾아가서 한 낱 인간인 이상 실수도 할 수 있고 넘어지고 깨지기도 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미구를 통해 너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보렴’하며 격려하는 것이죠.”

흑백과 칼라의 혼용은 음양의 균형을 추구하는 태도로부터 나왔다. 혹자는 흑백 풍경에 난데없이 칼라 캐릭터를 넣은 것에 의구심을 표하지만 작가는 흑백에 강렬한 색채가 더해질 때라야 비로소 완성이라고 믿는다. 여기에는 ‘균형을 통한 미의 완성’을 추구하는 그의 미학이 스며있다. 그가 반문한다. “음과 양, 좌와 우, 흑백과 칼라 등 서로 다른 세계가 발란스를 이루는 것이 완성 아니겠어요?”

이제는 어린시절 기억 속 주택가 풍경이 흔하지 않아 애써 찾아다녀야 만날 수 있다. 그는 오래된 주택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것을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적인 취향으로 되살려낸다. 작업이 계속되는 시간에 비례하여 개념과 형상도 확장되고 있다. 미구 인형 대신 어린시절 꿈 많았던 소녀의 꿈이 풍선이 되어 주택가를 날아오르기도 하고, 미구인형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미미인형 연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미국에 바비인형이 있다면, 한국에는 미미인형이 있다. 작가는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미미인형을 미술의 개념적 기반으로 끌어들였다. 미미인형은 그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으로 이르는 통로다. 그는 “미미인형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며 만인의 행복을 염원”한다.

‘기억 놀이’ 연작에서 집의 외부 풍경을 그렸다면 미미인형 연작은 집의 내부에 해당된다. 미미의 집은 화려함과 풍요로움의 극치다. 시중에 판매되는 장난감들을 사서 구성하고 사진을 찍어 그린 집이다. 그는 화려한 미미의 집을 행복을 위한 역할극의 무대로 인식한다. 모든 사람들의 이상향처럼 묘사된 집에서 미미는 엄마도 되고, 공주도 된다. 그는 미미를 통해 “역할 전환을 완벽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미미인형은 작가에게 행복에 이르기 위한 “정신적인 장난감”이다. “미미처럼 모든 사람이 순간순간의 역할에 충실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지 않겠어요?” 전시는 1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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