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된장찌개
[달구벌아침] 된장찌개
  • 승인 2022.05.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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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뽀글뽀글 된장찌개가 끓는 소리는 화목한 가정의 대명사였다. 해질녘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식구들을 맞이하는 주부, 아내, 엄마가 사랑이라는 양념으로 간을 맞추는 음식이다.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된장찌개가 요즘은 맛이 없다.

국이 있어야 하는 남편과 국물이 있어야 밥이 잘 넘어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음식이었다. 호박, 무, 멸치가 들어가고 두부가 들어갔다. 저녁에 끓여두었다가 아침에 먹어도 되어서 매일 새 국을 끓이는 게 쉽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찾는 것도 피곤할 때 가장 편하게 끓일 수 있는 메뉴다. 생선, 고기, 야채 들과 잘 어울린다. 뚝배기에 뽀글뽀글 끓는 것을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첫 숟가락이 가장 맛있다. 두 숟가락 세 숟가락 떠서 밥이랑 먹을 때 밥알이 입 속에서 맴돌면서 꿀꺽꿀꺽 잘 넘어간다. 된장찌개만 있어도 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점심과 저녁을 학교 식당에서 먹고 오면서부터 밥하는 일이 줄었다. 아침만 먹으면 되었기에 반찬이랑 국을 매 끼니 준비하는 신경이 덜 쓰였다. 아침에는 고기류의 반찬과 야채 한 가지, 우유 한 컵으로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 국이나 찌개를 끓이는 일도 줄었다. 국물 음식이 소금이 많아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가 더해져서 남편도 국을 거의 먹지는 않았다. 주말에는 외식을 하기도 하고, 한 가지 일품요리를 해서 먹을 때도 있었다. 된장찌개는 점점 식탁에서 멀어졌다. 된장을 주시던 어머니와 엄마도 연세가 드셔서 주지 못하시게 되어 집에 된장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된장의 존재가 희미해져갔다.

아들이 군대 휴가를 나와서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던 날, 밥과 함께 된장찌개가 나왔다. 짜지도 심심하지도 않은 딱 입에 맞았다. 코로나였지만 네 식구만 먹는 밥상이라 된장찌개에 다 같이 숟가락을 담그었다. 소고기를 넣어서인지 맛있었다. 고기맛보다 된장찌개 맛을 더 기억하고 맛있었다고 품평을 했다. 그 맛을 생각하고 다시 된장찌개를 끓여보았다. 한 냄비 가득 끓여두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조금씩 데워 먹으려고 했는데, 먹는 사람이 없었다. 아들이 했던 말처럼 ‘옛날 된장찌개’ 맛이 안 났다. 분명히 달라진 건 없었다. 똑같은 재료에 같은 방식으로 끓였다.

남편과 토요일 볼일을 보러 갔다가 점심을 먹기로 해서 한참을 헤매다가 시장 안에 잔치국수와 보리밥만 하는 보리밥집으로 결정했다. 다섯 가지 나물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숭늉과 된장찌개, 고추가 나왔다. 배가 고파서 나물을 넣고 비벼서 정신없이 먹다가 된장찌개를 한 입 먹었다. 잊고 있었던 ‘그 맛’이었다.

늘 먹어서 질리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 생활을 하다가 집에 가면 빈 집 부엌 밥상에 먹다 만 된장찌개와 나물이 있었다. 밥을 떠서 된장찌개에 비벼 먹으면 왜 그리 맛있었던지. 나물을 된장찌개에 찍어 먹어도 맛있었고, 쌈을 싸서 먹어도 맛있었다. 다른 반찬이 없었지만,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허기가 져서인가. 한 그릇 후딱 먹고나면 배부르고 기분이 좋았다. 두부도 야채도 넣지 않고 멸치와 고추만 들어가서 짜글짜글 끓인 된장찌개. 된장찌개라고 부르기 보다는 된장짜글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맛’이 여름철이면 더욱 생각났다. 먹어 본지가 참으로 오래되었다. 친정집에 가도 엄마가 없으니 끓여놓고 차려주는 사람은 없다.

어버이날 엄마를 보러 요양원에 갔다.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 엄마는 자식들이 와서 ‘엄마’라고 부르니 허허 웃었다. 놀다가라고 말도 한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 우리들도 안심이 되었다. 자식들은 엄마에게 밥해달라고 했다. 홍희는 된장찌개를 해달라고 소리쳤다. 엄마는 손을 내밀었다. 밥 해주고 같이 밥상에 앉아 밥먹던 엄마가 그립다. 엄마, 이름을 잊어도 좋으니, 밥을 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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