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개인전 ‘혼란의 날씨’, 아트스페이스 펄 29일까지
김윤섭 개인전 ‘혼란의 날씨’, 아트스페이스 펄 29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2.05.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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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보는 순각 즉각 감흥이 일어나야”
만화·설치·조각 등 경험 다양
감각과 행위 결과인 회화 추구
일상 속 소재 조형언어로 구축
형식은 다양·내용은 동시대성
김윤섭의포트폴리오연작-지옥
김윤섭의 포트폴리오 연작 ‘지옥(The Hell )’

응당 작가라면 한 주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몰입하는 삼매적(三昧的)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 김윤섭이 미술대학에서 배운 가르침이었다. 하나의 문제의식 아래 주제를 소급하여 들어가며 깊은 삼매에 빠질 때 비로소 진정한 작가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마계(魔界)에 빠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계(魔界)는 삼매(三昧)의 반대 개념으로, 하나의 주제가 아닌 다양한 주제를 열어두며 순간의 탐구와 교감으로 구축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적어도 김 작가의 첫 전시에서 대학에서의 가르침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마계를 경계하기보다 자처하는 듯 한 태도가 2008년에 열린 첫 전시 제목 ‘마계 근방위’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에 첨예하게 들어갔을 경우 첨예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고, 그것이 멋있을 때가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태도”라는 것이 그가 마계를 자처한 이유다.

김윤섭 개인전인 ‘Weather of Madness(혼란한 날씨)’전이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 ‘혼란한 날씨’는 최근 상영 중인 마블영화 ‘대혼란의 멀티버스’에서 차용했다.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라는 광고문구가 작가의 작품 콘셉트인 마계와 의미적으로 동질적인 관계로 묶었다. 그는 대혼란의 멀티버스처럼 다양한 작업세계를 구사해왔다.

김윤섭의 포트폴리오 연작 '지옥(The Hell )'
김윤섭의 포트폴리오 연작 '지옥(The Hell )'

 


공주대에서 만화예술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설치, 조각,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독자적인 실험정신으로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찾아갔다. 회화로 굳어진 것은 2012년 무렵. 다양한 지역의 의미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회화의 매력을 재확인하면서 본격화했다. 당시 그와 함께 했던 레지던시 입주작가들의 작업들은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경향이 짙었다.

유행처럼 번지던 개념미술을 접하며 “논리는 언어의 영역이고, 언어가 가지는 권력에 작가 스스로 취하게 될 위험도 높아진다”는 소리가 그의 귓전에 맴돌았다. 그는 그림이 언어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다. “현란한 언어는 문학의 영역이고, 그림은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감흥이 일어나야 하는 분야라는 것이 제 소신이었어요. 그것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그는 “순간적인 감각과 행위의 결과로 구축되는 회화”를 추구했다. 머리와 글이 아닌 몸과 가슴으로 미술을 하자는 태도를 견지한 것. “저는 어떤 작업이든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개념미술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대중을 계도하는 계몽적 성향은 저 와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번 전시에는 회화 작품 20여점을 걸었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캔버스 표면인 생지에 그린 그림들로, 화면 속 이미지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지난 15년간 발표했던 다양한 작품들을 포트폴리오에 옮긴 이미지를 회화로 표현했다. 작가는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서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로 활동하며 발표했던 제 작품의 이력이라는 점에서 포트폴리오를 그린 작품들은 저의 자화상이자 명함이기도 합니다.”

“포트폴리오가 캔버스 생지에 재소환 되면서 물질성과 오브제성으로 치환되었어요. 포트폴리오에 인쇄된 도트나 컴퓨터 화면의 픽셀과 전혀 다르게 물질로 끌고나오면서 형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형식의 확장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된다. 일상의 편린들을 블로그에 올리고 그 이미지들을 재구성해서 설치나 회화로 표현하거나, 일상에서 표현한 에세이를 단초로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해왔다. 그는 하나의 모티브가 그림이나 조각으로 확장되고, 그것이 다시 또 다른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방식을 회화의 확장으로 인식했다.

그가 자신의 작업 세계를 “형식의 확장이자 콘셉트의 확장”이라고 정리했다. “주변이나 일상 등의 단순함에서 형식이나 개념의 깊이를 만들어 나가고자 했어요.”

그의 감각이 머무는 지점은 인류를 구원할 거창한 담론이나 문제의식과 거리가 있다. 시선은 늘 일상에 머문다. 소소한 일상이 어쩌면 거창한 담론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는 인식의 결과였지만, 일상이 주는 힘은 그의 생각보다 더 컸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소재의 보고”였으며, 이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와 형식의 다양성의 근간으로 작용했다.

일상을 조형언어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행위는 ‘감각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감각을 흔드는 장면을 포착하고, 물성과 미술적인 행위를 더해 조형언어로 구조화한다. 그렇기에 포착된 일상의 단면들은 투철한 규율이나 의식적인 흐름과 배치된다. 감각이 그렇듯 감각의 산물 또한 자유분방하며, 그는 감각의 산물에 개념을 덧씌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림은 언어의 영역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봐요.”

애니메이션 전공자답게 작업 초기에는 운동성과 환영성(幻影性)을 미학적인 관점으로 고찰했다. 이때 서사는 의식적으로 배제했다. 이야기가 그림에 들어갈 경우 극애니메이션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지금은 운동성과 환영성보다 형식적인 면에 더 치중한다. 

형식 중심의 작업이 가능한 이유를 그는 “고정관념을 타파한 현대미술의 태도”로부터 찾았다. 그는 스스로를 현대미술의 수혜자로 인식한다.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열린 태도의 현대미술은 그의 자유분방한 작가정신에 정확히 부합했다. 콘셉트로부터 출발하기도 하고 용감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반드시 영감으로부터 출발하지도 않고 몸의 움직임으로만 완성되지도 않는 등의 다양한 작업방식은 그런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대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동시대성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회화에서 동시대성만 획득한다면 얼마든지 저의 방식을 고수할 수 있다고 보고 계속해서 저의 방식대로 작업할 생각입니다.” 전시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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