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영호
맨발의 영호
  • 여인호
  • 승인 2022.05.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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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신발은 어디 갔어요?”, ”글쎄, 신발이 보이질 않네.”

“신발이 보이지 않다니요?”, “비가 오는 날이면 신발이 없어지네.”

“정말요? 저희들이 교장 선생님 신발을 찾아볼까요?”, “그래, 찾아주면 고맙지.”

아이들이 교문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영호의 신발은 보이질 않습니다. 마음이 다급한 아이들은 교장실 복도의 신발장까지 뛰어갔다가 옵니다. 그래도 영호의 신발은 보이질 않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교대부초 교문에서 볼 수 있는 정경입니다. 비가 많이 내릴 때는 체육복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비옷을 입습니다. 우산을 쓰기도 하고 비옷에 붙은 모자로 우산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맨발로 교문으로 나갑니다. 고학년은 영호의 맨발에 익숙합니다. 저학년들은 발이 시리거나 아프지 않은지 궁금해 합니다. 평소 신었던 운동화는 어디에 있는지 묻기도 합니다. 학부모들은 당황하거나 놀라면서도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영호는 전임지인 대구교동초등학교에서는 맨발로 걷기를 하거나 축구를 많이 했습니다. 운동장이 흙으로 되어 있어서 맨발교육을 하는 데 아주 좋았습니다. 아침에 영호와 축구를 하는 전제 조건이 맨발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 하던 아이들도 이내 익숙해집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운동장에 막대기나 물을 채운 음료수병을 이용해서 미술 수업을 하는 학반도 있었습니다. 역시 맨발수업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쓴 아이들이 맨발로 운동장을 뛰거나 걸으면서 물길을 내기도 하고 막기도 합니다. 비가 그치면 울퉁불퉁해진 운동장을 고르는 작업은 오롯이 맨발의 영호 몫입니다.

2000년대 초에 영호가 교대부초에 교사로 근무했을 때는 출근하면 양말을 벗어서 텔레비전 뒤에 던져두고 하루 종일 맨발로 생활했습니다. 겨울에도 초지일관한 영호의 행동에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아이들이나 동학년 선생님들도 곧 익숙해져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바닥은 한 변이 50센티미터인 정사각형의 카펫이라서 맨발로 생활하기에 좋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여름방학 때는 선배 두 명과 속리산을 오르다가 중턱 부근의 상점에 신발을 맡기고 맨발로 정상을 오른 적도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했던 초등학생 영호는 비가 오는 날이면 맨발로 축구를 한 기억이 가장 새롭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시절에는 모내기철이면 맨발로 무논을 운동장마냥 돌아다닌 기억도 뚜렷합니다. 허벅지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모내기를 할 모를 이리저리 옮기는 작업을 하다보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가 몇 마리 붙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사람과 소로 농사일을 하던 1970년대의 모내기 작업에는 맨발과 맨손이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입니다.

맨발은 ‘다른 것이 없는’의 뜻의 접두사인 ‘맨’과 명사인 ‘발’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래서 맨발은 ‘아무것도 신지 아니한 발’이라는 뜻과 ‘적극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맨발의 청춘, 맨발의 기봉이, 맨발의 영광, 맨발의 승리, 맨발의 꿈 등과 같이 작품의 제목으로 애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호의 맨발은 양말도 신발도 신지 않은 발의 맨발걷기와 비가 오더라도 아이들 아침맞이를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일석이조이기도 합니다.

영호는 구두 대신에 실외 운동화 세 켤레, 슬리퍼 대신에 실내 운동화 한 켤레를 즐겨 신습니다. 2022년 5월 3일 화요일에 2학년 수업을 하는데, 여자 아이가 손을 들더니 묻습니다.

“교장 선생님, 오늘 아침에는 맨발이 아니던데 신발 찾았어요.”

“그래, 비가 그치니 신발이 저절로 제자리로 돌아왔어.”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 아이도 언젠가는 맨발의 영호와 운동화의 사연을 알겠지요.



김영호 <대구교대부설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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