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쇼윈도 부부들
[결혼이야기] 쇼윈도 부부들
  • 승인 2022.05.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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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피어리 결혼정보회사 대표·교육학 박사
큰 거울 앞에 예쁜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는 백화점의 마네킹을 볼 때마다 쇼윈도 부부란 단어가 떠오른다. 아직 이혼 정리가 안된 40대 중반의 여성이 재혼 상담을 하기 위해 사무실에 방문했다. “우리는 쇼윈도 부부에요. 초등학생인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남편과 함께 살 수밖에 없어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말이다. 그녀는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해서 결혼정보 회사를 방문했다고 했다. 이유는 남편의 무능이나 경제력도 아니고 성격이 안 맞는다고 했다.

이혼이 예고된 가짜 부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을 포장하고 잉꼬부부처럼 위장하며 살다가 결국 참다못해 파경 선언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일반인들도 요즘은 남들 앞에서나 아이들 앞에선 정상적인 부부역할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각 방을 사용하며 독립적 생활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부부는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놀이 기구도 태워주고 외식도 한다. 아내가 직장 생활을 하니 경제적인 부분은 각자 해결하고 생활비도 반반씩 공동 부담한다. 아이의 교육비나 아이에게 들어가는 금전적인 부분만 남편이 해결한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서로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없었다. 살아보니 서로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아서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다만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이혼만 미룬 상태였다. 자녀 양육과 경제적 이유, 남의 시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집에 살고 있을 뿐, 부부관계는 물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없었다. 이런 부부는 사실 무늬만 부부지 내용은 별거나 다름이 없다. 아이를 위해선 부부가 최선을 다하기로 서로 약속했다 한다.

여성 회원 중에 이런 경우도 있다. 남편이 수차례 바람을 피워 결국은 이혼했지만, 아이들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했다. 그녀는 어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쇼윈도 부부로 행세를 했다. 아이들 앞에서 싸움도 하지 않았고 남편의 외도도 알리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경제적으로 능력 있고 자상한 아빠였다. 이혼 후 그녀에게 돌아온 건 아이들의 원망이었다. 엄마가 아빠의 작은 실수를 용서해 주지 않고 이혼으로 몰고 갔으니 엄마가 잘못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녀는 억울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아빠고 부부간의 문제로 생각한 그녀는 남편의 잘못을 감추었는데 후회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전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며 자식을 위해서라도 평생을 함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일본에서는 한때 일본의 중년 여성들의 졸혼이 유행처럼 번진 시기가 있었다. 취미와 가치관이 다른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 주며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 법적으로 이혼만 하지 않는 별거 상태의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참고 살다가 자식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하면 졸혼 하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는 젊은 세대의 부부들이 형식적인 삶을 산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쇼윈도 부부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면서 사는 것이 옳은지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선 딜레마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도 언젠가는 독립적인 인격의 주체로 살아가야 한다. 애정과 친밀도가 없는 쇼윈도 부부 밑에서 자란 아이가 과연 성숙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

자식에게 부모는 거울이고 삶의 모델이다. 아이에게도 느낌이 있다. 부부간의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후일 어른이 되었을 때 건강한 가정을 영위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사람들은 100세 시대가 되면서 제도나 관습에 얽매어 자신의 인생을 마음이 맞지 않는 배우자와 불행과 고통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 함께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식이나 체면을 의식해서 쇼윈도 부부로 사는 건 서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으로 자식과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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