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정체성을 가진 공간과 가상현실(VR)의 탄생
[대구논단] 정체성을 가진 공간과 가상현실(VR)의 탄생
  • 승인 2022.05.2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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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근 메타버스의 열풍과 더불어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쏟아져 나오는 메타버스에 대한 기사를 보며 가상현실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상현실과 그 효과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우선 가상현실을 기계적으로 정의한다면 “컴퓨터와 연결된 HMD(Head Mounted Display) 장비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허구적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술발전이 급격해서 머지않은 미래에는 HMD같은 무거운 장비가 아닌 안경이나 렌즈 같은 간단한 장비로도 가상의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기계장비를 기준으로 가상현실(VR)을 정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의 ‘특별한 경험’을 중심으로 VR을 정의하자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한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미디어에 의해서 ‘현존감(presence)’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상현실이라고 주장한다. 현존감이란 미디어가 만든 가상세계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환영적인 경험을 말한다. 나의 몸은 내 방의 현실세계에 있지만, HMD를 착용하는 순간 마치 내가 HMD 영상에서 제시되는 판도라의 행성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험을 말한다.

그렇다면 미디어가 HMD이건, 아니면 TV나 라디오든 상관없이 사용자가 허구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환영적 경험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상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HMD와 컴퓨터 같은 첨단 기계장비가 아니더라도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듯한 경험을 한다면 그것도 VR이라고 보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가상현실의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미술그림을 보면서도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컴퓨터와 HMD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사회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가상현실은 따라서 현존감의 개념을 중심으로 정의한다면 오래전부터 인류가 각종 미디어를 사용하며 경험하는 현상(꿈이나 약물환각은 미디어 사용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VR로 간주하지 않는다)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사용자가 어떻게 하면 VR을 경험할 수 있는지, 기술적인 설명들이 많다. HMD를 개발하는 가장 기본적 관점에서 본다면, 현존감은 미디어 사용자의 두 눈에 비춰지는 이미지에 차이를 둬서 사용자로 하여금 비춰진 사물들이 자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추정을 하게 만드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 내가 어떤 공간에서 존재한다는 생각은, 나를 둘러싼 주변 사물들과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거리가 추정될 때 그 사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내가 그 사물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각적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사물과의 절대거리(ego-centric distance)를 추정할 수 있다면 그 사물은 나로부터 어느 정도 위치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궁극적으로 나는 그 사물과 하나의 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현존감이 경험되는 VR인 것이다.

이렇게 기술적 관점에서 VR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던지고 있다. 3D영화를 보며 VR을 경험하고 HMD 장비를 착용하고 엄청난 VR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에 의한 현존감 경험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르는 요인은 미디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동기나 심리에 기반한 것들이라고 본다. 2016년 ‘아바타’ 영화가 3D로 성공하며 그 후 3D-TV, 3D영화 등 기술적으로 진보한 미디어 산업이 넘쳐 났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컨텐츠 중에서 3D라는 이유로 성공한 것들은 ‘아바타’ 이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의 성공여부는 3D라는 기술적 요인과 더불어 인간의 동기와 심리에 공감을 주는 스토리 요인들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유행하는 메타버스의 VR도 기술적 요인들과 함께 반드시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용자들의 마음을 끄는 정신적 요소들의 구성이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사용자로 하여금 현존감을 경험하게 하려면 컴퓨터 등 기술적 요인들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욕구나 영혼을 터치하는 인문학의 요인들이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렐프(Relph)는 어떤 공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3가지. 그 장소의 물리적 세팅, 행위, 의미로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내가 있는 연구실은 마루바닥이 깔려있고, 책상, 책장, 라운드테이블이 있으며, 그림과 달력, 벽시계가 걸린 그린 색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고 전화를 하거나 간단한 스트레칭 등의 움직임을 한다. 나는 그 공간을 안전함, 창작, 자유, 감사함 등의 의미를 맛보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공간은 물리적 구성과 그에 연결된 행동에 의해서 의미가 생성되는 경우 정체성을 가진 공간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상의 공간도 미디어가 구성한 그 안에서 인간이 무언가(행위적인)를 하며 의미를 가질 때 현존감을 경험하고 가상현실로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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