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입니다] “가축이 처한 악조건, 인간만이 바꿀 수 있어”
[나는 청년입니다] “가축이 처한 악조건, 인간만이 바꿀 수 있어”
  • 윤덕우
  • 승인 2022.05.3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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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먹거리를 위한 ‘정도 추구’
김동균의정석돼지-김동균대표
김동균 대표가 돼지를 돼지답게 정석대로 키워 인도적인 방법으로 도축하여 관계자들과 고기 품평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성조숙증으로 진료를 받는 아이들의 수가 한 해 평균 16만명이 넘어서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다섯 살 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꽤나 공포스러운 기사였다. 성조숙증은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아직까지 인과추론 단계라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맘-카페’에서는 성조숙증을 유발하는 음식이라고 하며 콩이나 우유, 계란, 육가공식품을 아예 먹이지도 말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건강정보까지 공유되고 있었다.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엄마들의 공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짐작되는 접점을 발견하곤 한다. 필자가 발견한 대부분의 접점 사례는 농·축산업 현장에서 경제적 가치추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관행이 고착화 된 사례들이었다. 경북 예천에서 만난 김동균 대표(김동균의 정석돼지)의 사례는 바른 먹거리를 위해 인간이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퍼진 공장식 축산업
2018년 고기 생산량 총량 3억4천만t
성장호르몬 포함된 사료·항생제 투여
바이러스 변이로 대규모 전염병 발생

◇값싼 고기와 경제학

전 세계 육류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OWID(Our World in Data)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8년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고기의 총량은 50년 전에 비해 3배이상 증가한 3억 4천만 톤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육류소비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공장식 축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공장식 축산업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동일한 조건하에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해 밀집 사육환경을 선택하게 된다.

공장식 축산업은 그 특성상 무게가 많이 나가고 번식력이 좋은 종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 내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밀집된 사육환경을 통해 최소한의 공간과 최소한의 활동범위만 허용하여 빠른 시간 내에 성장시키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성장호르몬이 포함된 사료를 먹이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를 수시로 투여하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시장경제논리를 우선시 해야 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개선’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직면하게 된 문제상황

축산업계는 매년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전염병의 유행 메커니즘은 ‘육류소비의 증가→공장식 축산업 확대→취약한 사육환경과 집단화로 인한 바이러스 변이→전염병 발생 및 대규모 유행’ 등으로 매우 간단하다. 즉, 육류소비를 줄이고, 공장식 축산업을 축소 시킨다면 가축의 유전자 조작이나 성장호르몬이 포함된 사료나 항생제 투여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게 되면 가축들은 더 이상 전염병에 취약한 상황에도 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지극히 1차원적인 논리 구조에 불과하다. 소·돼지·닭 등으로 대표되는 산업용 가축의 경우, 안타깝게도 인간이 만들어 낸 경제적 논리로 생과 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인간이 만들어 낸 구조 안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공장식 축산업으로 인해 만들어진 문제상황 속에서 가축 뿐만 아니라 인간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문제를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최근 가축도 깨끗한 환경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으며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국가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연양돈을 추구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으며 대중들의 관심 또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예천 ‘정석돼지’ 대표 김동균
1,500두 사육 가능 부지서 300두 사육
항생제 최소 사용·인도적 도축 추구
“자연양돈 대중화 어려워도 시도 필요”

◇길위에서 배운 인생 철학 → 동물에 대한 예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대학문턱을 넘고 다음 문턱인 취업문턱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20대 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가지고 ‘유라시아 횡단 및 유럽일주-그리고 모로코까지’라는 주제로 292일간 홀로 자동차여행을 경험한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길에서 공부를 했고, 친구를 만났으며, 미래를 설계했고, 인생을 배운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서른넷, 김동균 대표의 인생철학은 20대 시절 길 위에서 완성되었다.

김대표는 경북 예천에서 6년째 돼지를 키우고 있다. 6년 전 아홉 마리로 시작한 사육두수는 자연 번식을 통해 현재는 300마리로 늘었다. 그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말 심플하다. 돼지를 돼지답게 정석대로 키워 인도적인 방법으로 도축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들에게 크게 환영받고 있다. 1,500두를 사육할 수 있는 400평 규모의 부지에서 돼지들의 본능을 살려주는 사육방식을 택해 300두 정도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김대표는 매니아층을 주 고객으로 하여 연간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유럽여행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시절, 우연치 않은 기회로 예천에 경매로 나온 축사를 구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292일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자본금도 없이 무작정 달려간 곳이 바로 그 축사였다고 말했다.

헝가리 동부 ‘푸스타(Puszta)’라 하는 대평원을 횡단하던 중 말·양·소들이 대규모로 방목되어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김대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서너 시간 동안 동물들을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내긴 했지만 농·축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동물들의 사육환경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평원에서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했다. 사람도 태어난 장소나 시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게 되는데 동물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꿔보려는 시도가 가능한 존재지만 동물은 그렇지 못한 존재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가축들의 사육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축이 처해있는 악조건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그것은 인간만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김대표는 세상 사람들에게 ‘가축을 바르게 키우는 방법’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말 했다. 자연 수명을 다 하기 전에 인간에 의해 수명이 결정되는 것이 가축의 숙명이라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렇게 살다가 도축된 돼지야 말로 인간에게도 유익한 고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최소한으로만 사용하고 유전자변형과정을 거치지 않은 토종 돼지를 자연 번식 할 수 있게 해서 가능한 최대로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돼지가 돼지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며, 그것이 가축을 대하는 인간의 기본 도리이고 돼지에게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김동균 대표의 축산철학과 인생철학은 유럽여행 중 길 위에서 느끼고 배운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만물의 자연스러움’에 근간이 있었다.

◇바른 먹거리를 위해서 ‘정도’를 찾고 ‘정석’대로 돌아가야 할 때

성조숙증 등 내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엄마들은 식재료를 선택할 때 늘 의심부터 한다. ‘이건 괜찮겠지? 대기업에서 만든 거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들은 유전자변형이 이루어지고, 부자연스럽게 사육되거나 길러진 식재료일 가능성이 크다.

김대표는 말한다. “가축을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공장식 축산이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죠. 자연양돈이 대중화가 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 시도해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장식 축산과 자연양돈의 경계선에서 우리가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정도’를 찾고, ‘정석’대로 키워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필자와 같이 ‘내 아이의 먹거리에 대한 원인 모를 공포’를 경험한 엄마들의 걱정과 고민은 자연스럽게 상쇄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동균 대표의 사례는 우리가 먹거리 만들어내고 선택함에 있어서 우선시해야 하는 고민과 선택은 무엇인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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