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엄마가 필요한 시간
[달구벌 아침] 엄마가 필요한 시간
  • 승인 2022.06.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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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매화가 피고 지는가 싶더니 이내 열매를 맺었다. 창밖, 슬레이트 지붕으로 매실이 뛰어내리는 소리가 밤새 소란하다. 결실을 눈앞에 두고 떨어지는 것 하나 없이 모두 보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손 쓸 틈 없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열매를 붙잡아 주지 못한 나무의 속은 어떨까 싶어 쉬이 잠을 이룰 수 없다. 새벽 세 시, 쿵 하고 건넛방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지진이라도 난 듯,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리가 난 진원지는 안방과 마주한 딸의 방이었다. 새벽녘에야 간신히 들었던 잠을 깼다.

“잠이 와 죽겠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고. 산이 몽이 너희들 잠 안 자고 와, 자꾸 후다닥 뛰어다니노. 느그들 때문에 못 살겠다 제발 조용히 좀 걸어 다녀라 응”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문지방을 넘어 안방을 점령했다. 낮엔 자고 밤이면 활동을 시작하는 야행성 고양이의 특성상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끔 그 기본적인 것마저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산이와 몽이가 뛰어다니다가 뭔가 자빠뜨린 모양이다.

“엄마, 일어나봐라. 혼자 엄두가 안 난다 와서 좀 도와줘”

침대 옆에 세워 둔 전신거울이 깨져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부서진 거울 주위엔 유리 파편이 뒹굴고 그 위로 고양이들이 덩달아 들락거리고 있었다. 딸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양이부터 방에 가두라는 나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냥이와 함께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곁에서 도와 줄 수도 없는데 혼자서 해결해 봄으로써 경험치를 늘여 보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이른 나는 한 마디 툭 던지고 말았다.

“엄마 없는 셈 치셔” 툭, 직구를 날리고는 방문을 닫고 이불을 덮어쓴 채 억지 잠을 청했다. 연이어 투덜거리던 딸아이의 볼멘소리는 강으로 한껏 추켜올린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묻히고 있었다.

“도와 줄 걸 그랬나. 유리 조각에 손이라도 베이면 어쩌지!”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필요 없는 셈 치라는 말속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말의 비밀 열쇠가 들어있다는 것을 딸아이는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엄마가 하는 말속엔 어떤 것이든 비록 그것이 잔소리라 할지라도 정이 담기고 사랑이 담긴다는 사실을 딸아이는 알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엄마의 손맛처럼 엄마의 말에도 맛이 있다는 것을 딸아인 모르는 눈치다. 나 또한 엄마의 딸이었던 시절, 엄마의 잔소리 속에 들앉은 아린 아픔과 걱정 그리고 연민이 함께 담긴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오월 장미 가시처럼.

딸은 비 오는 날 처마 끝에 쉬어가는 나그네 같은 존재인 듯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때론 해법 없는 갈등으로 고통 받아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일 때가 많다. 가족이라서, 같은 여자라는 교집합 속에서 다양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한다. 사소한 것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친정엄마는 가끔 내가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어릴 적엔 철이 없어 그렇다고 치면 그만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다 알면서 ‘딸이 머 그렇노’라며 못내 서운함을 감춘 채 서러움을 토로했다. 건강한 모녀 관계는 원만한대인관계의 기본이 된다. 너무 가까워서 더 많은 실수가 생기는 관계이면서 가장 멀고도 가까운 사이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아프게 하는 관계가 바로 엄마와 딸이며 또한 가족이 아닐까. 엄마는 딸이며, 그 딸은 다시 엄마가 되는.

‘말뚝에 묶인 소의 자유는 새끼줄의 길이만큼 일 것이다. 그 이상의 자유를 누리려다 잘못하면 제 말뚝에 제 몸을 감아가며 돌기도하고 다른 나무나 말뚝까지 침범하면서까지 감고 돌 때가 있다. 결국, 새끼줄의 길이만 줄여 먹다가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는 수가 있다’고 한다, 가족 간에 지켜야 하는 기대와 범주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떠올려 보게 된다.

일과가 끝난 늦은 저녁, 분리한 쓰레기를 들고 계단을 내려서려는데 퇴근하는 딸아이와 마주쳤다. 이때다 싶어 남은 것 남김없이 모두 들고 따라오라고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던 딸,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내 등 뒤에 대고 한 마디 툭 던진다.

“엄마도 딸내미 없는 셈 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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