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리스트를 아시나요?
[문화칼럼] 리스트를 아시나요?
  • 승인 2022.06.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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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역사상 가장 인기 있었던 피아니스트,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을 세계초연 한 지휘자, 생의 마지막까지 수많은 제자를 지도한 큰 선생, 그리고 피아노의 걸작들을 남기고 교향시를 완성한 위대한 작곡가, 문학 역사 등에 해박했던 지식인이자 그 누구보다도 자선활동에 애를 썼던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 게다가 그는 사제 서품을 받고 생의 마지막을 맞은 사람이다. 바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다.

리스트의 이런 다방면의 업적에 비해 대중적 인기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의 피아노곡은 연주하기 까다롭다. 동시대 쇼팽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게 다가온다. 등의 이유로 인함이 아닐까. 그러던 중 일전에 우연히 리스트에 대한 TV특강을 짧게 지나치며 접하게 되었다. 특히 리스트가 사제였다는 말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전기를 찾아보았으나 ‘우라히사 도시히코’라는 일본의 음악 프로듀서가 쓴 책 한 권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피아노 음악만으로 리사이틀을 연 사람이었다. 그리고 타인이 작곡한 곡만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을 구성하기도 하여 작곡가와 피아니스트가 분리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로서 진정한 피아니스트가 탄생하였고 사상 첫 피아니스트가 리스트였다는 평이다. 특히 여성 관객으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슈퍼스타였다. 여성들을 매료시킨 세련된 동작, 고귀한 분위기 그리고 훌륭한 매너를 갖춘 그는 28세 되던 1839년부터 1847년까지 8년간 약 260여 도시를 방문하여 1,000여회의 공연을 가졌다. 오늘날과 달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도시를 이동하며 사흘에 한 번 꼴로 연주회를 가졌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 당시 공연 한 번에 일반인의 연봉이상을 받았으나 수익의 대부분을 예술진흥이나 학생,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기부했다는 것은 참으로 존경할만한 일이다. 그리고는 그는 불과 36세 때 인기 절정의 피아니스트에서 은퇴하고 새로운 길에 나서게 된다.

이듬해부터 바이마르 궁정 악장으로 취임해 작곡, 지휘, 교육 활동에 전념하며 음악가로서 새로운 삶을 열어간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답게 그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는데 무려 122시간이 걸릴 만큼 많은 곡을 남겼다. 피아니스트 리스트가 여성들을 열광에 빠트린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면 작곡가 리스트는 철학적인 탐구를 거치며 난해하고 복잡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리스트는 그의 교향악적 작품에 시적인 정취를 투영해 교향시를 탄생시켰다. 그런 한편 교육자로서도 최선을 다했다.

현존하는 피아니스트의 위대한 계보는 리스트의 레슨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평이다. 수많은 제자에게 마음을 다해 지도한 그는 자신의 기술을 흉내 내지 말라고 강조했다. 리스트는 학생들의 기술에 치우친 연주를 매우 싫어하며 그들에게 각자 자신만의 음악을 깨우쳐 주기 위해 애를 썼다 한다. 인간을 사랑한 그는 당연히 제자들에게도 그러했다. 자신의 제자라며 이름을 팔던 이가 사과를 하러 찾아오자 연주를 해보라고 한 뒤 온화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자네는 리스트의 제자라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해도 되네.” 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들이 리스트와 함께 한 순간을 가슴에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 감동을 간직한 채 살아갔다고 한다. 그를 유럽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겠지만 태어난 조국 ‘헝가리 왕립 음악원’의 창설과 운영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이것이 지금의 ‘리스트 음악원’이다.

그는 여성 편력이 있었지만 이것만으로 그를 형이하학적 인간으로 폄훼할 수 없다. 리스트는 위대한 음악가임과 동시에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인격자였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큰 슬픔도 겪었다. 두 아이를 연이어 잃은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살아있는 모든 귀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평안히 잠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예술이자 목적입니다.” 마침내 그는 54세에 사제가 된다. 이후 이른바 ‘세 집 생활’을 하며 봄에는 부다페스트, 여름에는 바이마르,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로마에서 쉬지 않고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 작곡, 지휘자로서의 활동을 생의 마지막까지 왕성하게 이어 나가다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알던 리스트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본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리스트는 미래를 내다보는 음악가였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은 용기 있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자극을 준다. 지금부터 듣게 되는 그의 음악은 예전과 다르게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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