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달구벌아침]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 승인 2022.06.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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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본인은 강의가 주업(主業)이다. 그래서 많은 곳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누군가 내게 제일 힘들었던 강의가 어떤 곳이었느냐 묻는다면 나는 한 곳이 생각난다. 예전 어느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는데 교직원 연수쯤으로 기억난다. 그날의 강의는 참 힘들었다. 물론 선생님들 강의가 전부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 그 학교 그곳의 선생님들은 참 힘든 교육생들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선생님들이라 잘 듣고 반응도 잘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정반대였다. 잘 듣지도 않았고, 앉는 자리도 최대한 뒤에부터 자리를 채웠다. 그러다 보니 앞에 의자는 텅텅 비어 있었고, 심지어 뒤에 앉은 선생님들은 강의시간 내내 잡담을 했다. 물어봐도 대답도 없고, 반응도 너무 없었다. 그 모습은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제일 싫어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너무 똑같았다. 마치 내가 선생님이 되어 떠드는 학생들에게 "자~조용 좀 하고, 좀 들어봐라"라고 하고 있는 꼴이었다. 가장 잘 들을 것 같았던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향해 잘 들어달라고 부탁하던 선생님들이 가장 잘 안 듣고 있었다. 참으로 우스운 상황이었다.
얼마 전에 멀리까지 강의를 다녀왔다. 대상은 예비 강사들이었다. 대략 30명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 5일 동안의 교육에 참여했다. 본인의 교육은 맨 마지막 수료식 전에 배정이 되어 있었다. 강사가 되기 위한 예비 강사라서 적극적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체로 잘 듣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교육 중에 한 교육생이 내게 물었다. "강의 잘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십시오" 그들에게 내가 대답해준 것은 "잘 듣는 겁니다." "명강사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입니다."라는 이야기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면 그렇게 좋아한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면 잘 듣는 것은 강사를 춤추게 한다. 명강사는 잘 듣는 명품 청중이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의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견인을 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했고 마침내 견인차 기사님이 오셨다. 고장 나 움직일 수 없는 우리 차를 견인하여 차를 고치는 정비소로 이동해야 했다. 차는 뒤에 견인하고 나는 견인차 기사님과 함께 기사님의 차에 몸을 싣고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어딘가로 전화를 열심히 하시면서 "차가 몇 연식이냐?" "그러면 그만큼 가격이 안 나오겠다. 한 1,500만원 밖에 안 준다고 하는데요"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견인 목적지까지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는 것도 그렇고 해서 그냥 "무슨 차길래 2013년식이 1,500만원 합니까?"라고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말을 함과 동시에 기사님의 가정사를 다 듣게 되었다. '형님 차인데 1억 넘게 주고 사서 이제 10년 타고 원가격에 10%밖에 못 받는다'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왜 그 차를 팔려고 하는지, 부모님이 재산을 얼마를 물려주셨는데 누나와 형이 어떻게 했다는 등, 전혀 물어보지도 않은 가족사를 다 들려주고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은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으면 한다는 사실이었다.
상담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 역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좋은 상담사는 입보다는 귀가 더 커야 한다. 즉, 말을 잘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잘해야 한다. 듣는 것만 잘해도 고민을 가진 사람의 문제, 반은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한 번은 지인의 소개로 나를 찾아오신 분이 계셨다. 지속적인 상담은 힘들고 한번 하소연하고 싶다고 일회성으로 나를 찾아오신 분이 계셨다. 한 20여 년 동안 결혼하고 쌓여있던 시댁과의 갈등의 문제를 이야기가 시작되고 2시간 동안 속에 있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놓으셨다. 중간에 말을 멈추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오래 이야기를 쏟아 내셨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듣는 것밖에 없었다. 간혹 추임새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다 쏟아 내시고, 얼굴빛이 완전히 달라지셨다. 오늘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며 돌아가는 그분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물론 나는 힘들었다. 하지만 상담이 잘 진행된 것 같은 기분은 충분히 들었다. 다음날 지인에게서 전화가 와서 무슨 말을 해줬길래 사람이 저렇게 편안해졌냐고 물어왔다. "뭐 그 정도야 기본이지"라고 장난으로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듣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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