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경구 ‘DENSITY 숲’전…우손갤러리 9월 8일까지
작가 강경구 ‘DENSITY 숲’전…우손갤러리 9월 8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2.06.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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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싶은 숲은 실경 아닌 기운생동 리듬”
서양 원근법 무시 몽환적 기운
한지·먹 재료 제약 오히려 즐겨
내면 더 집중·생명력 고조 작용
사람 등장 우주 속 생명체 의미
숲 내부 예측불허 소우주 표현
“실재 숲 보다 느낀 기운 중요”
강경구 작 'Forest'
강경구 작 ‘Forest’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생전에 한 말이다. 홀로 돋았다 홀로 지는 하나의 나뭇잎에서 우주의 질서를 발견하고 남긴 에세이 중 일부다. 작가 강경구가 현실에서 발견한 소우주는 숲이다. 숲에서 치열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화로 표현한다. 이어령 교수가 나뭇잎 하나의 미세한 흔들림에서 우주의 원리를 발견했듯, 그 역시 숲의 리듬에서 조물주의 섭리를 발견하며 예술적인 주제로 펼쳐왔다.

강 작가가 주제(主祭)한 숲 풍경이 우손갤러리에 걸렸다. 흔들리고, 뒤섞이고, 분출하는 숲 풍경 40여점이다. 세상을 향한 그의 사유와 통찰이 집대성된 작품들이다. 숲을 그린 지는 꽤 됐다. 산을 10년 정도 그리다 숲으로 화제(話題)를 전환했다. 멀리서 바라보던 시선이 산의 내부인 숲으로 들어간 것이다. 작가 자신마저 숲 속의 일원으로 인식할 정도이니 숲에 대한 감응 지수 또한 높다.

작가의 숲은 현실의 숲과 동떨어진다. 무질서와 질서가 교차하며 구조화된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에서 초현실의 기운이 스멀거린다. 서양의 원근법이 무시되고, 내면과 외부를 모두 관장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 깊이감으로 이끄는 한지와 먹이 하모니 등의 요소들로 몽환적인 기운에 한껏 물이 오르고 있다.

그가 “내가 그리고 싶은 숲은 실제 숲이 아니다. 내 속에 있는 숲”이라고 했다. 그것은 곧 ‘숲의 리듬, 즉 숲의 생명력’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숲 본연의 리드미컬한 조화를 표현하려 했어요. 그것이 리듬이었어요.”

숲은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시골집에 놀러갔다, 뒷마당에 우뚝솟은 두릅 가지에 돋아난 싹을 보고,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림의 소재로 가져왔다. 처음에는 작은 종이에 먹으로 그렸는데, 꽤나 재미있어 큰 작업으로 발전했다. 숲의 규모도 작은 숲에서 시작해 지금은 정글 수준으로 확장됐다.

숲을 그리려면 관찰은 필수다. 그도 긴 시간 숲 속에 머물며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숲 의 너른 품을 새삼 확인했다. 숲에는 다양한 동·식품이 함께 살아간다. 무엇보다 그가 숲에서 환기한 개념은 숲 속 생명체들의 암투다. “비록 이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식물의 세계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가 있음을 발견했어요. 숲 또한 자연의 법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던 것이요.”

숲은 생명의 보고다. 생명을 품고 키우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다. 수많은 숲이 존재하지만 숲 속 생명체들이 뿜어내는 기운에 따라 숲의 분위기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숲이 토해내는 숨결, 즉 기운생동하는 리듬이다. 그 리듬을 통해 자신이 주제하는 또 다른 숲의 탄생을 예고한다.

초현실적인 숲의 풍경으로 이끄는 요소 중에 언급해야 할 대목은 한지와 먹이다. 흘러내리는 먹의 속성 상 200호 이상의 대형 작품을 제작할 때는 한지를 눕혀서 작업할 수밖에 없다. 세우지 않고 눕혀서 작업하는 속성 상 작업화는 과정에 화면 속 풍경의 전체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림의 부분만 확인하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재료가 주는 제약을 즐긴다. 부분에서 전체로 확장될 경우 화면은 오히려 초현실의 경향이 짙어지는데, 그는 그것을 적극 취하려는 입장을 견지한다.   

“제 내면에서 느껴진 숲을 그리기 때문에 부분 부분을 그릴 경우 오히려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것이 숲의 생명력을 고조시키는 작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부분들의 총합으로 만들어가는 작업 과정에서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덕목은 숲의 리듬을 결정하는 구성력이다. 먹의 기운을 강하게 하거나 약하게 하고, 여백을 줬다 뺐다 하는 식으로 숲의 리듬을 조절하며 숲의 구성력을 높여간다. “실제 숲에는 없지만 제가 숲에서 느꼈던 기운생동하는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숲 본연의 리드미컬한 조화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죠.”

그의 숲에는 사람이나 소파가 등장하기도 한다. 인간 역시 우주의 질서 속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숲 속 구성원들 중의 하나로 인간을 표현한다. 인간의 삶과 밀착된 소파는 인간에 대한 메타포(Metaphor·은유)로 활용된다. “인공물인 소파를 숲 속에 놓은 것은 숲이 좀 더 새롭게 보이기 위한 이유가 컸어요.”

“형상이 아닌 기운에 집중한다”는 것은 “본질에 다가간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본질에 대한 열망은 나이를 먹을수록 심화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표현법에서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점점 단순 명료해지고 있다. 이는 핵심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참 많이도 숲으로 달려갔다. 숲에서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호흡하며 지극하게 숲 속 존재들과 교감했다. 그러면서 그 자신 숲의 일원이 되어가며 숲의 본질에 다가갔다. 

말하자면 그는 숲의 주제자다. 실경이 아닌 관념의 숲인 까닭에 그의 기운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면 어떤 숲이든 표현하지 못할 숲은 없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숲들이 존재하고, 그가 숲의 일원으로 자처하기만 하면 오만가지 숲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맹점은 있다. 그가 창조한 숲인 까닭에 숲 내부 세상은 예측불허가 된다. 실경이 아닌 까닭이다.

예측불허. 가만히 읊조리다 보면 우리네 인생이 떠오른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인 우리의 인생이다. 예측불가능성은 그의 숲이 곧 인생을 묘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는  그의 숲을 소우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숲을 보았지만 묘사는 하지 않는다. 그는 숲을 보지 않고 단지 느낄 뿐이다. 그에게 실재하는 숲의 형상은 ‘의미 없음’이다. 그에게는 스스로 느낀 숲의 기운만 중요할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내가 숲을 바라본 창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거꾸로 “나의 그림을 보라보는 관자들은 내가 만든 창문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과 타자를 이어주는 창으로 자신의 그림을 위치시키는 것.

"강경구 작가는 자신의 숲을 ‘어떻게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이 창조한 숲을 그려놓고 자신은 빠져버린다. 해석은 관람자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 태도에서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강경구 작가 작품의 탁월성이다.” 우손갤러리 이은미 큐레이터의 강 작가 작품에 대한 해석이다. 강경구의 ‘DENSITY 숲’전은 9월 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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