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의 미래칼럼] 동네 석학이 사라지고 있다
[박한우의 미래칼럼] 동네 석학이 사라지고 있다
  • 승인 2022.06.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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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 영남대 교수, 빅로컬빅펄스Lab 디렉터
석학은 지식이 많고 학문적 조예가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 척척 답을 하는 백과사전 같은 사람은 아니다. 지식의 분량 즉 넓이보다 어떤 주제에 깊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뜻한다. 언론은 석학 앞에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해외에서도 유명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석학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받기는 쉽지 않다. 석학의 분야가 일반의 관심과 거리가 먼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연구실 밖에서 활동하는 석학을 폄하하는 분위기도 있어 사회에서 고립화되기도 한다.

뚜렷한 연구 성과가 없이 TV에 출연하는 교수에게 석학 호칭을 남발하면서 신뢰성을 잃어버린 측면도 크다. TV 석학은 진영논리에 빠져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에게 비판이 아닌 비난을 퍼붓는 게 일상이 되고 있다. 석학이라면 내 편과 적을 구분하기에 앞서 주어진 현상과 이슈에 대해 냉철한 분석과 대안 모색을 선도해야 한다.

그래서 동네 석학이라는 신조어는 재미있고 유용한 표현이다. 동네 석학은 2016년 대구 북성로에서 시작되었다. 동네 석학은 대구 사람의 생활과 문화에 귀를 기울이고 공부해 온 지식인 집단이다. 동네 석학의 연구 분야는 대학원생은 되어야 들어봤을 만한 전문적 용어와 난해한 이론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동네 석학은 주변에서 접하는 골목길, 주택 양식, 연애 이야기 등에서 역사 속 사건과 시대정신을 밝혀낸다.

정부는 사회문제 해결 기반 연구과제, 시민 과학자, 과학 대중화와 확산 등을 추진했다. 이러한 사업의 목적과 기대효과를 읽어보면, 동네 석학 취지와 유사하다. 동네 석학은 유명한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 성과가 부족해도, 세계적으로 검증된 연구를 소개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우리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우리 동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동네 석학이 온라인 공간의 의견 선도자인 ‘인플루언서’와 비교하면 그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센토라(D. Centola)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동네 석학의 연결망 즉 네트워크 효과를 주장하였다. 센토라는 미국 펜실베니아대 네트워크 역동성 연구그룹을 이끌고 있는 책임교수이다. 2021년에 발행한 저서 ‘변화: 큰 사건을 일어나게 하는 방법’(Change: How to Make Big Things Happen)이 기존 이론에 도전한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센토라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혁신, 네트워크, 확산 메커니즘에 대한 반증(falsified)을 시도한다. 선거와 마케팅에서 사람들의 신념과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영향력 있는 소셜 스타를 활용하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는 네트워크에서 항상 과대평가되어 있고 이들이 말하는 제품과 이슈에 대한 정보가 퍼지는 것 같지만, 사람들의 믿음과 행동은 그대로 유지되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센토라에 따르면, 느슨한 연결 수가 많은 소셜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인플루언서는, 주변에 위치한 중복되고 강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보다 ‘덜’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네 석학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연결망의 모양은 올망졸망 뭉쳐있는 포도송이 같다. 이런 유형의 네트워크는 동네 석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 사이의 견고함과 상호신뢰가 존재한다. 인플루언서가 왕(王)인 거대하지만 느슨한 네트워크와 비교하면 동네 석학의 포도송이 집단은 변화를 주도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동네 석학이 획기적이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끈끈한 유대만으로도 세상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네 석학이 지역의 조선시대 양반 집단처럼 행세해서는 안 된다.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은 “넌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해”로 시작해 “배고파라, 어리석게 지내라”로 끝났다. 동네 석학은 자신이 애착을 느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시작해 전문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렇지만 잡스의 마무리 문구에 나와 있듯이 있는 그대로의 것에 절대 만족하지 말고,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지식에 대해 배고픈 자세를 유지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 자신이 어리석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동네 석학이 인재로 자산화하지 못할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반도체 인재 양성을 지시하자, 교육부는 서울권 대학의 학생 증가를 위한 법 개정을 시사했다. 현재도 서울 쏠림 현상이 극심한데, 법을 개정해서라도 학생을 더 모집하겠다는 것이다. 지방 대학이 붕괴하면, 지역 사회는 해체되고, 동네 석학은 신기루처럼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정부는 동네 석학의 역동적 성장을 위해서 법제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동네 석학이 지역의 침체된 분위기 상승과 기술혁신의 확산을 일으킬 수 있다. 동네 석학의 전문성이 어떻게 지역민의 삶에 파문을 일으키고 산업 규모를 높이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증거자료를 모으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자. 인재양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부한 이론들에 반기를 들고 동네 석학에 한번 집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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