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새는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문화칼럼] 새는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 승인 2022.06.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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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문화예술회관 관장
“새는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그 말이 착하다.” 이렇게 멋진 표현은 이문열의 장편소설 ‘황제를 위하여’에 나온다. 이 소설은 등단한 지 5년이 지난 작가가, 그러니까 서른 넷 되던 젊은 시절의 이문열이 소설 ‘금시조’와 같은 해에 쓴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작품은 문장의 결이 엇비슷하게 다가온다. 어려운 한자말이 많아 읽기에 조금 불편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드라마틱하고 속도감도 있어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외국 고전을 중심으로 구성된 모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떡하니 자리 잡은 두 권짜리 책 중 2권은 서울 출장길의 오가는 기차간에서 거의 다 읽었다. 그만큼 잘 읽힌다. 최근 새로 열 권 넘게 책을 사다놓곤 그것을 집지 않고 아직 읽지 않은 ‘황제를 위하여’에 마음이 더 끌려 보게 된 책이다.

소설은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유포되어온 예언서 ‘정감록’을 기반으로 한다. 정씨 성의 진인이 나타나 이씨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리라는 이야기를 굳게 믿고 있는 정씨 일가가 이조 말,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후와 6.25전쟁에 이어 70년대 초반까지 격동의 세월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관통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주로 충청도 어느 곳으로 짐작되는 ‘흰돌머리’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멀리 만주에서의 개척까지 아우르고 있다. 대하소설을 다루는 이문열의 글 솜씨와 더불어 방대한 자료를 공부한 작가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을 나는 ‘역설의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떻게 보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씨 왕조가 무너지자 바로 정씨의 시대가 온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주변에 일어나는 작은 사건도 모두 자신의 세상임을 알리는 징조로 판단하는 사람들. 산골 초막에서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왕조가 곧 열리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지만 생의 마지막에 그는 깨닫는다. “우리 삶에서 미망(迷妄)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몇몇이던가. 어떤 자는 평생 단 하나의 진품도 내지 못하였으면서 자기가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것만은 의심하지 않고 죽으며, 살아가는 방법은 대개 그 반대이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자기가 애국자임을 의심하지 않고 열변을 토하는 자가 수백 명씩 쏟아져 나오고-” 우리가 애써 실체를 외면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듯이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꾸짖는 것만 같은 이야기다.

평생에 걸쳐 자신을 보필하던 신하(?) 두충의 죽음에는 이런 말을 남긴다. “저 죽은 자가 생전에 살기만을 원했던 사실을 후회하지 않을는지 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내가 슬퍼함은 그대를 여읜 탓인가? 아니면 아직도 깨지 못한 나를 위함인가? -- 어떤 이는 아주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비로소 삶이란 꿈인 것을 알게 된다. -- 아아, 제왕인 내가 천민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천민인 내가 제왕의 꿈을 꾼 것이냐?” 도대체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과연 사실인지. 우리가 목숨 바쳐 지키고자 한 신념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인지. 헤게모니를 잡기위한 치열한 다툼과 수많은 토론의 날들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냐고 작가는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것 같다.

아무튼 새가 죽을 때의 소리는 슬프지만 사람이 죽을 때는 착한 말을 한다는 표현은 나에게 깊숙한 울림을 준다. 살아온 날보다는 살날이 훨씬 짧은 나 같은 사람은 입 밖으로 뱉어내는 말이 착하고 진실을 담아야 한다. 알겠는가? 명심 하거라! 라고 소설을 통하여 작가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함이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마치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라면서 버리지 못하고 머리에 이고 사는 온갖 잡동사니 살림살이들처럼, 쓸데없는 허영을 끌어안은 채로 오히려 훈장마냥 주렁주렁 달고 사는 것만 같아 어깨가 욱신거린다.

인생 백세시대의 어두운 그림자 치매. 이게 닥치게 되면 참으로 곤란하다. 치매의 증상 중 하나는 평소 행동 하던 대로, 그간 해온 말투대로 한다고 한다.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의 언행이 그대로 노출되고야 만다. 그래서 여기에 따라 요양병원에서도 굉장한 밉상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한다. 노후대비 차원에서도 가식을 버리고 진솔하게 자신을 응시해 볼 일이다. 스스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바로 세워나가지 않으면 그야말로 삶이 곤궁해 질 수도 있겠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쳐다보면 보일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게 되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 착한 말을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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