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다”
[달구벌아침]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다”
  • 승인 2022.06.22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만약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해서 그 둘이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반응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사람마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모두 다를 수 있다. 누구는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기억할 것이고, 누구는 그저 그냥 스쳐 지나는 사람이라 기억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인지구조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하루를 살아간다. 같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지각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리 보이기도 하고, 나아가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해석해 내는 건강한 사고의 틀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니다.
어느 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운영했다. 글쓰기 교실에 참여한 노인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셨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주제를 통해 글쓰기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머뭇거리고 망설였지만 모임의 횟수가 늘어나고 수업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편해지고 있었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던 어느 차가운 가을날, 글쓰기 교실의 강사가 칠판에 큼지막하게 '겨울이 오면~' 주제를 제시했다. 겨울이 오면~이란 말을 제시하고 그 말 뒤로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문장을 완성해보라고 주문하였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10 여분의 글 쓰는 시간이 지나고 각자가 쓴 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겨울이 오면'이란 주제로 쓴 글을 발표했다.
먼저 한 어르신이 겨울이 오면 "아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를 물으니 눈이 많이 온 날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팔이 부러졌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뼈에 금이 가서 몇 달을 병원 신세를 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겨울이 오면 다쳤던 곳이 아프다면서 '겨울이 오면~ 아프다'라고 글을 완성하셨다고 한다. 또 어떤 어르신은 '겨울이 오면 춥다' '겨울이 오면 감기에 걸린다'와 등의 겨울과 관련된 조금은 행복하지 않았던 경험의 얘기를 하셨다. 또 어떤 어르신은 '눈이 온다' '얼음이 언다' 등의 겨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평범한 이야기들을 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군고구마를 먹는다' '맛있는 호떡을 먹을 수 있다' 등의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대체로 우리가 사용하는 겨울에 대한 이미지는 힘듦, 차가움, 고통의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찬 바람 쌩쌩 불고, 춥고 배고픈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중 한 어르신이 겨울을 조금 다르게 보고 계셨다. 그 어르신의 발표 내용을 듣고 사람들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어르신이 발표하신 내용은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다."라는 말이었다. 모두 놀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어르신이 얼마 전 사모님을 먼저 세상을 떠나보내셨기 때문이었다. 가장 힘든 시간에 다가온 차가운 겨울이라는 계절은 어르신의 삶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었지만, 어르신은 아픔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와도 어떻게 해서든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메마른 사막 선인장 꽃잎에서 물을 찾아내고 꿀을 찾아내는 벌새와 같은 사람이다. 시련이 와도 시련에 눈길 주지 않고 시련 너머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픔은 그 안에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픔은 희망의 전주곡과 같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그렇다고 희망이 저절로 오는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희망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놓인 쓴 것 때문에 주저앉아 울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은 해가 뜰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