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미니멀 라이프
[달구벌아침] 미니멀 라이프
  • 승인 2022.06.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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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박순란 주부
식물의 생명력이 참으로 크다. 줄기를 자르면 자른 부위 아래에서 새 싹을 틔우며 자란다. 잎이나 줄기를 잘라서 물꽂이를 하거나 땅에 꽂아 두어도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 그것을 볼 때마다 식물의 살아내려는 의지에 감탄을 하게 된다. 잘 살아주어 고맙다.

곡식을 키우는 농사짓는 사람은 곡식이외의 식물들과 전쟁아닌 전쟁을 치러야 한다. 곡식이외의 식물은 잡초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든지, 작게 자라기 시작할 때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뽑아야 한다. 지난 주말, 남편이 키우는 상추와 고추 사이로 난 고랑의 풀을 뽑았다. 아침 10시쯤이었지만 햇볕이 뜨거워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또 퇴행성관절염이 있는 무릎이 뻣뻣해졌다. 풀을 뽑기 위해서 사람의 노동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생명력이 강한 잡초 때문에 곡식이 작게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잡초를 뽑아야한다.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다. 굳이 사람이 키우지 않아도 스스로 생기고 스스로 잘 자란다.

식물을 키우고 즐거워하면서 가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물, 바람, 햇볕이 있으면 쑥쑥 자라는 식물을 보면서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해본다.

2,30대까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상식과 지식을 쌓으려 노력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찾아다니기도 했다. ‘돈’이 되는 일보다는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찾아다닌 것 같다. 집을 떠나고, 가족을 떠나 멀리 멀리 가고 싶기도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보다는 드라마틱하고 큰 ‘일’이 일어나기를 꿈꿨다.

50대 중반이 되니 자신의 한계가 보인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갈등이 없다. 할 수 없는 것에 미련을 갖지 않고, 지금 할 수 있고, 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30대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미리 예언해 주면 그 길로 갈텐데 하고 막연한 미래에 갈팡질팡한 시간들이 많았다. 이젠 그렇지 않아도 되어 좋다.

식물들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몇 가지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홍희도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 굳이 알아도 되지 않는 것은 알고 싶지 않다.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알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알아도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고,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없다면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상식과 교양, 대화에 필요한 앎을 위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할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좀 알라고 잔소리하는 동료가 있지만 알아서 뭐 하겠는가 싶을 때가 많다.

일상 생활도 점점 미니멀라이프로 살려고 한다. 옷장에 넣어두고 몇 년간 입지 않은 옷을 언젠가 입을 것 같아 버리지 못한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읽으려고 사서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둔 책이 누래진 것을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린 그림이나 사용했던 물품들도 배냇저고리와 교복 정도만 남기고 버렸다. 냉장고에 쌓아둔 반찬들, 냉동실에 넣어둔 재료들 중 오래된 것들도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렸다. 일상적인 미니멀리즘을 살려고 노력했다.

또 직장생활 동료들과 인간관계도 최소한의 친분을 유지한다. 업무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는다. 생각도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서 단순하게 짧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좋은 것보다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은 세상사다. 적게 알고, 적게 먹고, 적게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에 흠뻑 취해보려 노력한다.

굳이 큰 것이 아니어도 충분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이 있어 행복하다. 단순하게 최소한의 행복을 추구하자.

식물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나치게 복잡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나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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