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일본 진혼가에서 아지매, 천조대신인 세오녀 칭해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일본 진혼가에서 아지매, 천조대신인 세오녀 칭해
  • 김종현
  • 승인 2022.06.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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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라아가씨(細烏女)’ 1750년 만에 신라로 귀환
日 태양신 아마테라스·아마테라스오미
일본에 건너간 연오랑·세오녀로 기록
연오랑,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사장
세오녀, 제례복 짜는 신녀로 기록돼
후카구사 ‘볏짚 산더미’ 의미 이나리산
日 전국에 이나리신사 2만 여곳 있어
왕실, 매년 11월 23일 밤 신상제 거행
축문에 경상도 사투리 ‘아지매’ 불러
신라 ‘샛별의 나라·달의 나라’라고 해
신가유신라초승달
신라의 상징인 초승달(新月)은 군령을 전달했던 신라 전령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그림 이대영

◇일본 신상제 축문에 나오는 ‘아지매’

일본 에도시대(1603~1868) 교토덴도구(京都天道宮)에서 신주(神主)를 역임했던 오가사와라 도리는 초서본(草書本)으로 저술된 ‘카미요노마키호츠마츠타’전 10권을 번역하고, 새롭게 주석을 달았다. ‘카미요노마키호츠마츠타’는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카미요노(神代)’에 숨어있는 스토리를 찾아내어 해석을 붙여서 절장보단(絶長補短)해 재차 저작했던 원전이 비호 ‘히데마사전(秀眞傳)’이다. 재차저작에서 당시 통용되었던 신도사상(神道思想)을 가미했다. 일본의 태양신(天照大神)은 아마테라스(天照大神)와 아마테라스오미 부부인데 이들이 바로 157년에 일본에 건너간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로 기록되어 있었다.

제정일치시대였던 당시의 개념에서 연오랑은 까마귀 모자를 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었고, 세오녀는 제례복을 짜는 신녀(神女)였다. 연오랑이 죽고, 세오녀는 일본여왕(神武天皇) 히미코(卑彌呼)가 되어 247년까지 통치를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라 세오녀는 제례복을 짜던 신녀 세오리츠히메다. 불교 범어로 말하면 파리공주(頗梨公主)였다. 그녀는 남편의 뒤를 이어 태양신인 아마테라스(天照大神)에 등극하게 되었다. 여기서 범어(梵語, 산스크리트)로 달(月)을 의미하는 히미(himi) 혹은 히마(hima)에 착안해서 히메 혹은 히미코(卑彌呼)라고 칭했다.

다시 언급하면, 고대일본에선 ‘달의 왕(月王, King of Moon)’이란 의미로 남자왕은 ‘히미쿠코(卑彌弓呼)’이고, 여왕은 ‘히미코(卑彌呼)’라고 호칭했다. 같은 의미로 일본서기에서는 월궁호(月弓呼, ひみここ) 혹은 ‘월궁존(月弓尊, つきゆみのみこと)’으로 표기하고 있다. 신라왕족과 연결시키면 석탈해(昔脫解)의 후예 ‘월독명(月讀命)’의 후손으로 ‘월궁존(月弓尊)’이 연계된다. 또한 범어 ‘아마티(amati)’도 달(moon)을 의미하기에 ‘아마테라스(天照大神)’도 ‘달의 왕(King of Moon)’에 해당한다. 그리스신화로는 ‘태양의 신(God of Sun)’과 연결되고, 일본서기에서 679년 국명을 ‘일본(日本)’이라고 함에도 이런 의미를 부여했다.

지금도 일본 교토시 후카구사(深草) 지역에 ‘볏짚 산더미(稻荷)’ 의미인 이나리산(稻荷山)이 있고, 산기슭에는 신라의 농사의 신(農神) ‘우카노미타마노카미(宇迦之御魂大神)’를 모시는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稻荷大社)라는 큰 사당이 있다. 일본 전국에 이나리대사를 본사로 이나리신사(稻荷神社)가 2만 여 곳이나 된다.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うえだ まさあき, 1927~2016) 교토대학교 교수는 “일본왕실은 매년 11월 23일 밤 제사 신상제(新嘗祭)를 11월 8일에 이나리대사에서 거행하는데, 한신·신라신(韓神·新羅神)을 모시고 축문에 경상도 사투리 ‘아지매(阿知女, あ~ち~め)’를 부른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에서 신사(神社) 혹은 신궁(神宮) 등에서 강신주문(降神呪文)으로는 물론이고, 진혼가(鎭魂歌)에서도 ‘아지매’가 아직까지 수도 없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아지매(阿知女)는 바로 천조대신인 세오녀를 칭한다. 일본에서는 ‘오천 아지매(細烏女)’를 천년이상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데, 우리나라에서 2018년 이해리 노래 ‘자갈치 아지매’가 잠깐 유행했다.

아마테라스(天照大神)를 모시는 신궁이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894년부터 달성에 주둔했던 일본제국군 14연대가 청일전쟁(1896년)에 대승을 거두자, 대승첩기념지였던 달성공원을 1905년 대일본제국의 성역으로 최초로 공원으로 지정했다. 1907년엔 일본혼슈(日本本洲) 미에현 이세신궁(伊勢神宮)의 독특한((唯一身命造り)모습을 본떠 ‘황태신궁(皇泰神宮)’을 건축하고 ‘아마테라스’를 모셔 참배하게 만들었다. 결국 ‘가는 올 명주 짜던 신라아가씨(細烏女)’의 입장에서는 1750년 만에 일본의 여신이 되어 고국신라로 귀환했다.

◇천년황궁월성(千年皇宮月城) 신라

오늘날 ‘까마귀 내(烏川)’에서 살았던 부부가 일본에 건너가서 ‘달의 신(天照大神)’이 되었다는 전설이 말하는 건, 신라가 ‘천년월궁(千年月宮)’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신라 제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 101) 22년에는 시조 때부터 내려온 금성 동남쪽에다 달의 성(月城)을 쌓았는데, 그 성이름이 ‘초승달성(新月城, 둘레 1,823보)’이었다. 한편 북쪽에다가 ‘보름달 성(萬月城, 둘레 1828보)’을 만들었고, 동쪽에다가는 ‘(달) 밝아오는 성(明活城, 1906보)이고, 남쪽엔 ‘달뜨는 남산 성(南山城)’을 축성했다고 삼국사기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라(金城)를 샛별의 나라(金星國) 혹은 달의 나라(月城國)라고도 했다. 심지어 ‘달의 나라(月城)’를 줄여서 순수한 신라어론 ‘달나라 성(達城)’이라고도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신라의 후예를 자체하면서 금(金)나라와 후금(後金)에 이어 청(淸)나라마저도 ‘나는 신라의 후예임을 자각하노라(我新覺羅)’라고 신라적통을 이어받겠다고 노력했다. 이를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뭇사람들의 말(입)로 녹여내 버린다’의 비법으로 ‘초승달 성(新月城)’을 ‘반쪽짜리 달성(半月城)’ 혹은 ‘미완월성(未完月城)’이라고 칭했다.

서기 660년(의자왕20년) 6월에 부여왕궁 돌거북등(石龜背)에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도다(百濟同月輪, 新羅如新月).”라는 글귀가 적힌 것이 발견되었다. 이를 점술가들에게 해석을 시켰더니 “기울어져 가는 백제국운이고, 날로 성장하는 신라를 뜻합니다. 국운을 돌려놓는 방법은 반달모양의 떡을 해먹도록 하세요.”라고 처방전을 내주었다. 그래서 백제 송엽반월병(松葉半月餠)을 해먹었고, 신라는 한술 더 떠서 미소 짓는 초승달 떡(笑新月餠)을 해먹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한가위 보름날(秋夕)에 송편을 해먹는 기원이 되었다.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군이 결성되어 668년 고구려까지 멸망시켰으나, 끝내는 나당전쟁 7년(670~ 676) 동안 신라에 머물었던 당나라 군인들이 패배하고 귀국해 ‘송엽소신월병(松葉笑新月餠)’의 풍습을 중국에 전래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중국엔 ‘중추지절 달떡(中秋之節月餠)’이란 신라풍습이 전래되고 있다.

신라의 상징인 초승달(新月)은 군령을 전달했던 신라 전령기에도 나오는데 낮에 나온 반달처럼(晝顯新月)처럼 푸른 바탕색에 흰색 초승달을 그려 넣었다. “신라 사람들은 푸른색, 붉은색 등을 이용해서 군 조직을 구분했으며, 전체적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반달을 표시했다(羅人徽織,以靑赤等色爲別者.其形象半月)”라고 삼국사기에서 적고 있다. 이들 군부대 깃발에다가 ‘반달가슴곰(半月胸熊, asiatic-black bear)’, 가죽 장식으로 대장군 깃발인 제감화(弟監花), 군사령관 깃발(軍師監花), 및 당주의 깃발 대장척당주화(大匠尺幢主花)를 만들어 사용했다.

초승달(新月)은 신문왕2년(682) 2월에 오늘날 말로 색채와 디자인(color & design)을 전담하는 기구 ‘채전감(彩典監)’을 설치하고, 자신의 옷깃이나 가슴에 초승달 모양을 만들어 달았다. 귀족들도 초승달 깃(반달 깃)을 만들었고, 소매 모양도 초승달을 상징하는 반달깃(新月襟, halfmoon lapel)을 즐겨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한복에 반달 깃을 즐겨 달고 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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