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준 ‘Ratio’전 개막…“단순한 면분할에 40여년…이제서야 인정 받아 당당”
이교준 ‘Ratio’전 개막…“단순한 면분할에 40여년…이제서야 인정 받아 당당”
  • 황인옥
  • 승인 2022.06.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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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10월3일까지
설치 작품 전시 후엔 폐기 처분
현실 회의감 쌓여 평면에 관심
캔버스 구멍 속에 하늘·바다…
격자무늬 면분할로 미술 모색
평면 너머 세계 발견하려 노력
작년 ‘2022 다티스트’에 선정
 
이교준작-Void
이교준 작 ‘Void’

무한반복을 40년간 지극하게 수행해 왔다면, 그 자체로 종교다. 궁극을 향한 간절한 열망이 없을 경우, 그 지루한 싸움을 계속 끌고 갈 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 이교준은 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차로 생성되는 기하학적 면분할을 40년간 수행해 왔다.

◇ 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차로 한 격자무늬로 새로운 차원 모색

면분할이라는 그 단순한 행위를 반복한 데는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다. “작가라면 응당 미술의 본질에 다가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열어야 한다”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어깨에 ‘본질’과 ‘확장’이라는 주제가 부여하는 준엄함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그는 평면에 주목했다. 오직 점, 선, 면이라는 미술의 기본 조형 요소만으로 평면에 선을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며 격자무늬, 즉 그리드(Grid)를 구축한다. “저의 작업은 점, 선, 면이라는 추상적이며 개념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화면을 분할하며 인식의 미술, 공간의 미술을 수행해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관이나 심미, 또는 삶에서 오는 감정은 그림의 주제나 대상이 될 수 없다. 대신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요소들을 철저한 계산에 의해 면을 분할하는 건조한 행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는 그의 작업을 개념미술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이유다. 그가 개념미술에 발을 들여놓던 초기만 해도 개념미술은 시대의 보편이 되지 못했다. 개념에 기대는 경향이 짙은 지금의 현대미술과는 지향점이 많이 달랐던 것.

시류의 흐름에서 벗어났던 그의 작업을 두고 당시 미술계의 평가는 “뜬구름 잡는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그의 행보를 극구 말렸으며, 선배 중 누군가는 그의 면분할을 향해 “그건 미술이 안 된다”는 단정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보겠노라”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1975년 대구에서 결성한 그룹 ‘전개’의 멤버로 1979년 대구현대미술제를 기점으로 작가 활동을 본격화한 그의 초창기 이력에 비춰보면, 애당초 그는 세상의 평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몸속에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유전자로 가득 찼고,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그가 “결국 내 작업은 오래 해야 되는 것이었다”며 회환에 젖었다. 오래 하다 보니 “그리드가 이교준의 방식이자 미술이 되었다”는 의미이자, 이제는 자신의 격자무늬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이기도 했다. “이제는 ‘단순한 면분할이 미술이 된다’는 것을 세상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게 되었고, 저의 어깨에 얹혀있던 중압감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이교준 작가
이교준 작가

 

◇ 끊임없이 진화하는 작업세계 대구미술관 3 전시실에 펼쳐내다

대구미술관에 이교준의 40여년 미술세계를 한눈에 조망하는 전시인 ‘Ratio(비율)’전이 개막했다. 지난해 ‘2022 다티스트(DArtist)’에 선정되어 대구미술관 2, 3전시실과 선큰가든에 그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지역미술가의 창작 의욕 고취와 국내외에 그들의 역량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2021년부터 시작한 대구미술관 프로젝트인 ‘다티스트(DArtist)’에 올해 원로 부문에 선정되어 초대된 전시다. 80~90년대 초기 작품과 지난 2년간 시도한 신작 등 미술의 본질을 향한 그의 탐구물들이 대거 전시되어 있다.

직선의 교차로 생긴 격자무늬. 이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하지만 그 간단함 너머에 또 다른 차원에 대한 거대담론이 자리한다. 그는 면분할을 통해 또 다른 미술의 차원을 모색한다. 이에 대해 그는 “새로운 대화나 새로운 차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단순하고 절제된 화면 속에서 아름다움이나 어떤 질서를 발견하고 새로운 조형방식을 접하게 된다면, 우리가 생활하는 데서 필요한 창의적인 어떤 확장을 우리가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그리드 작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의 면분할은 다양한 변주를 거듭했다. 대구미술관 3전시실에 걸린 신작들에선 그의 전위적인 행위가 한층 더 진일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캔버스를 짤 때 사용한 캔버스 틀의 지지대가 캔버스 위의 반투명 천 위로 비쳐 올라와 격자무늬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캔버스 천의 일부에 구멍을 뚫어 시선을 평면의 경계 너머로 이끌기도 한다. 그런 다양한 시도 속에 환영이 드러난다.

“뚫린 구멍 속을 하늘과 바다라고 가정할 때, 중간 구멍들에서 바다가 보일 것이고, 그 밑에는 육지가 보일 것입니다. 이 작업 역시 이것도 그림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실천이라고 보면 됩니다.”

평면에 격자무늬를 구축하며 “미술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70~80년대까지 천착했던 사진, 입체, 설치 작업의 현실적인 한계로부터 출발했다.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구조로 볼 때 작업실을 보유하고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설치 작품의 경우 전시가 끝나면 폐기처분해야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그런 척박한 현실들이 쌓이면서 회의감이 밀려왔고, 급기야 평면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진행됐다.

막상 평면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문제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였다. 평면 속 내용에 대한 질문이었다. 고심 끝에 과거 작업으로 되돌아가 자신이 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해 왔던 프레임(frame)에 대한 경계 문제와 여백 및 안과 밖의 문제, 분할과 기하학적인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올라왔고, 그 요소들을 평면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젊었을 때부터 ’사유하고 실천하는 일들이 미술‘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었어요. 그런 태도로 개념적인 점, 선, 면을 가지고 화면을 분할하고, 칠을 하고 했어요.”

이교준 작 'Untitled'
이교준 작 'Untitled'

 


◇ 40년 작업 변천사 2전시실에서 한 눈에 조망하다

2전시실은 격자무늬 작업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격자무늬 작품들이 역연대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각 평면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면을 분할하는 비율이나 방식이 무한으로 확장될 순 없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변주를 거듭하려 한 흔적들이 전시작 곳곳에서 묻어난다. 변주로 확보한 그 모든 그리드에서 극단적으로 끌고 가려는 그의 태도가 묻어있다. “격자무늬라는 단조로운 조형성이나 흰색의 표면을 통해 극단적인 데까지 밀고 가보려는 마음으로 작업합니다. 저는 그런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재료의 변화도 다채롭게 진행됐다. 그는 캔버스를 직접 제작하는 것을 고수하는데, 그 재질에서 나무나 종이, 천, 알루미늄, 납판 등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한지나 모시 같은 재료는 한국인의 정서에서 자연스럽게 선택된 재료들이다.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격자무늬에서 칼날 같은 긴장감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가없는 고요 또한 감지된다. 하지만 작가는 “저 틀에 내 미술을 맡겼다는 지점에서 굉장히 과감성 있는 선택”이라고 못 박았다.

절제된 형태와 구성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표현 세계 이면에 수학적인 원리나 근거가 존재할 법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공식이나 수학적인 원리 또는 논리적인 어떤 원리를 참고만 할 뿐 규칙이나 룰을 따르지는 않는다”고 했다. 격자무늬 자체에서 내적체계나 내적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능하면 그 질서나 리듬에 순응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사각블록의 모듈에 비유했다. 사각블록을 수평적으로 모아놓으면 그리드가 형성이 된다는 논리였다. 그는 그 자체를 ‘증식과 확장’으로 인식했다. “하나하나의 단위들이 자기규칙을 가지고 상하 수직 좌우로 움직이면서 증식을 하고 확장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규칙 안에서 절제하고, 더하고, 빼고 하면서 격자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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