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노름이 아니라 놀음
[달구벌아침] 노름이 아니라 놀음
  • 승인 2022.06.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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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한 시인이 이 땅에 살았었다. 시인은 하늘나라로 돌아가기 전까지 평생 시를 쓰고, 시처럼 살았다. 그리고, 어른이 아닌 개구쟁이 소년으로 일생을 살다 가셨다. 시인은 우리 삶이 ‘소풍’이라 표현했다. 이 땅, 이 삶을 잠시 잠깐 머무는 소풍 같다고 했다. 그는 ‘귀천’이라는 시로 유명한 故 천상병 시인이다.

귀천이라는 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시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네 삶이 ‘소풍’과 닮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잘 놀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있고, 잠시 머무는 곳이 있다. 집은 오래 머무는 곳이다. 반면 소풍 장소는 영원히 머물러 사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소풍 장소에서는 잘 놀아야 한다.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그날만큼은 자연에서 신나게 놀아보자고 가는 것이 바로 소풍이기 때문이다. 소풍날만큼은 여느 날과는 다르게 살 필요가 있다. 친구들과 다투지도 말고 꽁하니 앉아서 삐칠 필요도 없다. 그냥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생님이 숨겨 둔 보물을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려고 소풍을 가는 것이다.

나는 체육대회에 가는 것이 싫다. 그곳에는 늘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자연스럽고 그걸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냥 이상하게 불편하다. 오래된 초등 동창이 모여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그것으로 충분한데 우리는 경쟁을 하려 한다. 기수별 달리기를 하고, 팔씨름을 하고, 기수별 노래자랑을 한다. 그래서 달리기 잘하거나 팔 힘이 센 동창이 있는 기수는 늘 자전거를 타가고, 노래를 잘하는 동창이 있는 기수는 늘 TV를 타간다. 그런 인물이 없는 곳은 똑같은 돈을 내고 늘 빈 털털이다. 같은 돈을 내고 누구는 더 많이 가져가고, 누구는 더 적게 가져간다. 마치 노름과 같다.

어릴 때부터 우린 늘 경쟁을 해야만 했다. 왜 그래야 했는지 모르지만 4명을 달리기 시켜 1등을 하면 공책 3권, 2등 공책 2권, 3등 공책 1권, 꼴찌는 늘 창피를 당했다. 진 것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데 거기에 창피까지 덤으로 받아야 했다. 상품을 안 줘도 되지만 꼭 줘야 한다면 사실 꼴찌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상품이 주는 것이 맞다. 성적 장학금도 마찬가지다. 늘 성적이 잘 나온 학생에게 준다. 성적이 못 나온 사람은 국물도 없다. 난 그냥 이런 경쟁이 싫다. 꼭 경쟁을 붙이고 그 경쟁에서 이겨야만 재미가 있다면 그것은 놀음이 아니라 발음 그대로 노름이다.

놀음은 모두가 같이 즐거운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이, 노인과 청년들이, 남자와 여자가 모두가 함께 어울려 노는 잔치 같은 것이다. 마치 공터에서 마당에서 벌어지는 탈춤놀이, 풍물패 놀이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 잘 논 사람과, 덜 즐긴 사람은 있을지 모르나 최소한 승패는 없다. 하지만 노름에는 승자 패자가 나뉜다. 그래서 같이 즐거울 수 없고, 누구는 즐겁고 누구는 즐겁지 않다. 마치 제로섬 게임과 같다. 제로섬 게임은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의 합계가 O이 되는 게임이다. 즉, 5를 얻으면 누군가는 5를 잃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웃음은 누군가의 울음이 된다. 10000원을 걸고, 20000원을 땄다면 누군가는 10000원을 잃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난 노름이 싫다. 달리기 잘하는 사람도 있고, 축구 잘하는 사람도 있고, 노래 잘하는 사람도 있고, 응원 잘하는 사람도 있고, 박수 잘 치는 사람도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즐거운 체육대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상을 주어야 한다면 골고루, 혹은 잘 즐기고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해 준 팀에게 상을 주었으면 좋겠다. 진짜 행복은 더불어 행복할 때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마치 소풍 온 것처럼 잘 놀다가 실컷 웃다가 신(神)께서 오라고 손짓하는 날, 웃으며 가고 싶다.

그 순간 자체에 즐거움이 있는,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즐거움이 있는 삶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 떠나고 없더라도 사람들의 기억에는 ‘함께 잘 놀다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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