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두 순례자
[문화칼럼] 두 순례자
  • 승인 2022.07.0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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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8년 전 쯤 인가? 막연히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다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고 나선 오히려 그 마음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코엘료의 ‘순례자’는 정말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책이지만 종교적·철학적 영역까지 다루고 있어서 책을 읽은 후 나는 도대체 왜 이 길을 가고 싶지? 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으며, 이에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에 다시 정독을 하게 됐고 최근에는 ‘내 마음 같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라는 부제가 달린 ‘불멸의 산책’을 읽었다. 이 책은 현직 의사이자 역사가·외교관이었으며 공쿠르 상 수상 경력이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프랑스의 장 크리스토프 뤼팽이 썼다.

#불멸의 산책

그는 이 책을 순전히 기억에 의해 썼다. 왜냐하면 기록해야 한다는 속박 없이 온전히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순례길 에서는 단 한 줄의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순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소 여행길에서 사진을 찍기보다 마음에 담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정말 기억하고 싶은 풍경과 느낌은 눈으로 지긋이 응시하는 것이 더 아름답게 남는 것 같다고 종종 느낀다. 아무튼 뤼팽은 나와는 다른 이유이긴 했지만 숙박지에서 열광적으로 글을 쓰는 순례자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에게 자신의 순례기를 들려주고자 카미노에 간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의 권유로 결국 책을 출판하게 됐다.

부제가 말해주듯 불멸의 산책은 기존의 도보여행기와 결이 다르다. 우리가 여러 매체를 통하여 본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국적이면서도 목가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길 대신 공장지대, 끝없이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 그리고 전혀 성스럽지도, 자신을 환영하지도 않는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접어드는 길 등 당황스러운 장면에 대한 설명이 많다. 그리고 걷는 행위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그냥 이런 식이다. “일주일 간 힘들게 걸은 후-” 일주일의 힘든 고행을 이 한마디로 끝내 버린다. 대신 많은 순례자가 간과하고 있는 ‘알베르게’에서의 잠자리에 대한 고통. 즉 코고는 사람으로 인한 불면의 밤.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것은 텐트를 이용한 노숙과 며칠에 한 번씩 호텔 등을 이용해서 순례를 이어간다. 대단히 현실적인 어려움과 대안을 제시해준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순례자를 만드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한다. “카미노는 영혼을 찾아가는 시간의 연금술이다. 몇 주 동안 계속 그 길을 걷는 순례자는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잠깐 걷는 것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지 못한다. 돌멩이는 가공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돌멩이를 다듬으려면 더 오랜 노력, 더 많은 추위와 더 많은 진흙길, 더 많은 배고픔과 더 적은 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순례를 시작한지 삼 주 만에 마지막까지 덮고 있던 최후의 덮개까지 벗어던진 나는 마침내 온전히 벌거벗고 카미노의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처음에는 꿈을 벗어던졌고, 그다음에는 생각을 벗어던졌고, 이제는 신앙까지도 벗어던졌다. 이 연속적인 허물벗기 후에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것이 카미노 순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왜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순례자

평범한 사람들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서 그는 선한 싸움의 도구인 ‘검’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검’이 아니라 순수한 아가페 또는 열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시작은 공감하기 힘든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낭만적 순례기를 기대했던 나는 흥미를 잃었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파올로 코엘료의 첫 작품 ‘순례자’였다. “천국문의 열쇠는 열정을 쏟아 행하는 그 일속에 있다. 그렇게 사랑은 변화를 부르고,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는 길을 걷는 도중, 보물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산티아고(연금술사), 알약을 먹고 자살하려는 베로니카(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등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시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탄생이 이 길 위에서 이루어 졌음이 분명하다.

‘순례자’에는 종교적이며 영적인 대화가 펼쳐지는 반면 ‘불멸의 산책’은 시큰둥하며 드라이 하다. 전자가 명문장들이 그리는 은유의 세계라면 후자는 순례길의 환상을 깰 수도 있는 직설적 표현이 많다. 그러나 공통점은 목표에 도달하거나 어느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순례자의 길’ 이제 기회가 되면 걷고 싶고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곳이 꼭 거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내 마음이 순례자가 되어 자신의 길을 성실히, 열정적으로 걸어가는 것 역시 그 길 끝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순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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