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운명을 사랑하라
[달구벌아침] 운명을 사랑하라
  • 승인 2022.07.1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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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삶이란 것은 운명적으로 미리 예견되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우연적인 것일까? 많은 날을 살아왔고, 많은 경험을 해보면서 어지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릴 수가 없다. 어떤 때는 운명처럼 모든 만남과 헤어짐이 미리 준비된 것 같다고 생각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모든 것이 그냥 우연에 의해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면서 살아가는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 더 가까운 쪽은 어디냐고 묻는다면, 운명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이 우주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 중에 우리 부모를 만났고, 수많은 나라 중에서 한국이란 땅에 태어났다. 이것이 우연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아니라고 본다. 분명 이곳, 이 땅에 보내진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곳에서 해야 할 나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우연히 이 땅에 오게 되었고, 우연으로 우리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많은 사건 사고를 경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삶이 우연에 의해 채워져 간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

본인은 형제 많은 집에 태어났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형제가 많은 것이 참 좋구나 생각을 하지만 어릴 때는 형제 많은 것이 싫었다. 한 번씩 선생님께서 각 가정마다 가족 수를 조사할 때가 있었다. "형제가 두 명인 사람 손", "세 명인 사람 손", "네 명인 사람 손",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뒤이어 선생님께서 "다섯 명 이상인 사람 손"이라는 말을 했고 이때부터는 반에 있는 친구들이 신기한 눈으로 손든 아이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설마 더 이상은 없겠지'란 말투로 "여섯 명인 사람?"이라고 얘기했고 기억으로는 한 명이 손을 들었던 것 같다. 친구들도 이제는 신기하다는 듯 '와아 ~'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선생님은 시쳇말로 '혹시 일곱 명인 사람도 있나?'라고 했고 그 말을 듣고 친구들은 선생님의 농담 같은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그렇게 형제가 많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에 뒤이어 나의 손이 부끄럽게 올라갔다. 그 순간 경이로움, 놀람, 신기함 등 수많은 감정이 교실 안에 가득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 뒤 선생님은 더 조사를 했고 더 이상의 형제가 있는 집은 없었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 나와 나이가 같은 우리 동기들 중에 내가 형제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제 많은 집에서 태어난 건 잘못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는데 그땐 부끄러웠다.

부모의 나이를 물어볼 때도 역시 나는 부끄러웠다. 울 아버지는 마흔다섯 살 되던 해 자녀 중 여섯 번째로 나를 낳으셨다. 아버지와 마흔네 살 차이가 나니 아버지의 나이는 거의 할아버지뻘이 된다. 그리고 심지어 내 남동생은 아버지 연세 마흔일곱 살에 낳았다. 지금이야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들을 늦은 나이에 낳으니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 당시 나이가 마흔일곱이면 정말 손자를 볼 나이었다. 형제 많은 집, 나이 많은 부모, 돌아보면 그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형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역할도 바뀌었다. 형제로는 여섯 번째, 아들로서는 둘째여서 가족 중에 그렇게 표시가 나지 않았던 나였는데 형이 세상을 떠난 어느 날부터 나는 맏아들이 되었고 가족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역할 혼돈으로 당시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나온 길 돌아보니 그것 또한 나의 운명이었다. 딸 셋을 낳고 귀하게 얻은 아들(형)이 세상을 떠난 충격으로 우리 엄마도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 후 몇 년을 마음고생하시다가 뇌졸중으로 64세의 나이로 쓰러지셨다. 그때 아들 강민이가 4살 때였고 우리 딸 민주가 아내의 배속에 있을 때였다. 아이들도 어렸고, 어머니도 아프셨고, 참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운명이었다. 7년 병간호하다가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71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우리 엄마를 보내야 했다. 힘들었고, 가슴 아팠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기에.

"아모르파티(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하라)"라는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운명도 마찬가지다.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다 보면 분명 나의 운명이 나와 함께 춤을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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