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워케이션이라니요
[박명호 경영칼럼] 워케이션이라니요
  • 승인 2022.07.3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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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많은 이들이 무더위와 일터를 벗어나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난다.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사색하며, 삶의 여유를 가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 몸과 마음의 쉼과 재충전을 위함이다.

선진국에서는 비교적 긴 시간의 휴가가 일상적이다. 오래 전부터 꼼꼼히 계획하여 느긋하게 휴가를 즐긴다. 우리나라의 여름휴가는 매우 짧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해 직장인 여름휴가 일수는 평균 3.6일이라고 발표했다. 휴가도 ‘빨리빨리’다.

수년 전 핀란드의 몇 대학을 방문했다. 공식 행사를 마친 후 환담 중에 학교 책임자가 두 달 가량을 스페인의 멋진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거라고 말했다. 혹시 두 주로 잘 못 들은 것 같아 다시 물어보니 역시 두 달이 맞았다. 그 긴 휴가를 어떻게 지내는지 도무지 상상조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가. 지난 3월 유엔(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2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핀란드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되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59위에 그쳤다.

이제 대다수의 국민이 여름휴가를 당연시한다. 나라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여름휴가는 필수다. 대통령도 이번 주부터 휴가에 들어간다고 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휴가 개념이 등장했다.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조합한 워케이션(workcation)이다. 휴양지에서 놀면서 일도 하는 형태다. 원격근무가 가능해지면서 별도의 공식적인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호텔이나 리조트 등지에서 일하며 쉬고 즐긴다.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삶도 일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휴양지에서 업무, 숙박, 레저를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

즐겁게 놀면서 일도 신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일하면서 동시에 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하기 어렵다.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은 그 목적이나 동기가 엄연히 다르다. 더욱이 놀 듯 일하면 기대한 성과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고도의 집중력과 사고력, 합리적 판단, 그리고 다른 일과의 연계성을 고려해야 일이 올바르게 되기 때문이다. 놀이의 결과는 ‘재미’지만 일의 결과인 ‘성과’는 조직의 운명을 좌우한다. 비합리성이 기본인 ‘놀이’와 합목적성이 근간인 ‘일’이 균형 있게 결합되기란 쉽지 않다.

놀이는 노동의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행위이며 불가결한 보완 요소다. 네덜란드의 인류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인간의 본질을 ‘유희’라고 보는 인간관이다. 놀이란 단순히 논다는 말이 아니다. 놀이는 풍부한 상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창조 활동을 전개하는 학문, 예술 등 인간의 전체적인 발전에 기여한다. 놀이에는 자유, 상상력, 무관심성, 긴장감 등이 있어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끈 여러 기술들도 이러한 놀이와 유사하다.

우리는 이제 일과 삶의 조화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일이 여가, 가족, 봉사와 서로 연결될 때 삶은 높은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요소들이 의미 있게 통합될 때 균형 있고 만족한 삶을 살게 된다. 탁월한 성과를 이룬 사람들 모두가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일의 내용이나 강도, 그리고 보수가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일은 그 자체로써도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일하는 사람의 태도가 일의 가치와 일에서 누리는 기쁨을 결정한다.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중세 시대 한 순례자가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일하는 두 명의 석공에게 벽돌을 쌓는 일에 대해 물었다. 첫 번째 석공은 “매일 벽돌을 쌓는 일은 고역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석공의 대답은 달랐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에 대한 비전이 일의 의미와 성과를 높이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활력을 준다. 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근로자의 13%만이 두 번째 석공과 같은 태도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네 고령층은 대다수가 삶과 일이 어긋난 상황에서 살아왔다. 가난했던 시절에 쉼 없이, 그리고 힘겹게 일했다. 직업은 생계수단에 불과했고, 노동에 대한 헌신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일에 대한 인식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많은 직장인들이 여전히 일 때문에 숱한 부정적 감정을 체험하고 있다. 그래서 일터를 즐겁고 행복한 곳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일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다. 일과 삶의 균형과 여유로운 ‘쉼’이 절실한 까닭이다. ‘쉼’의 본질적 의미는 회복과 준비며, 평안이다. 잘 쉬고 즐겁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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