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하로마을] 사모바위 정기 받아 과거급제자 대거 배출 ‘반촌’
[김천 하로마을] 사모바위 정기 받아 과거급제자 대거 배출 ‘반촌’
  • 배수경
  • 승인 2022.08.0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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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들 출세로 부모 축하 ‘하로’
‘사모바위 이야기’ 대표적
사모바위 깨지자 할미바위 세워
한 마을서 3판서·6좌랑 배출
청백리 이약동·최선문 고향
매년 정월 주민안녕기원제 지내
촛불 켜고 술잔 올리며 소원 빌어
폐교된 양천초서 전통문화축제
국악연주회·다도교실 등 진행
경원재서 전통혼례식 추진도
김천하로마을-전경
김천시 양금동 ‘하로마을’은 ‘자식들이 출세해 늙은 부모들이 축하를 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만큼 과거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로 알려져 있는 하로마을은 최근 전통문화축제 등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22 경상북도 마을이야기-김천 하로마을 

 유교사회의 가장 큰 덕목은 효(孝)였다. 효사상은 자신의 어버이를 공경하고 떠받드는 ‘효친’을 넘어 이웃 어른이나 노인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경로’로 이어졌다. 경로효친사상을 말한다. 부모에 대한 가장 값진 효도는 무엇일까. 공자는 ‘몸을 세워 도를 닦아서 이름을 후세에 남김으로써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마침’이라고 했다.

즉 자식의 ‘입신양명’이 부모를 즐겁게하는 가장 큰 효도라는 말일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입신양명의 지름길은 과거급제였다. 과거급제는 바로 관직 진출과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과거의 첫 단계인 생원진사시의 연간 급제자는 200여 명이었다. 통계를 보면 이중에서 한양 출신이 37%를 차지했다. 나머지 63%가 지방출신이었다. 지방출신 급제자를 군·현별로 나누면 10년에 1명 정도가 급제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거급제는 가문의 영광을 넘어 고장의 영광으로 여겨졌다. 물론 개인의 자질과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었다. ‘율곡 이이’는 13살에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이후 마지막 단계인 알성시까지 9번 모두 장원급제를 해 구도장원공으로 불렸다. 고종24년에 치러진 개성별시에서 박문규는 83세에 급제해 최고령 급제자로 기록되고 있다.

유독 과거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지역도 있었다. 김천의 하로(賀老)마을이 대표적이다. 하로마을은 김천시 양금동이다. 하로(賀老)란 지명은 ‘자식들이 출세해 늙은 부모들이 축하를 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천하로마을-사모바위와할미바위
하로마을 입구에 서있는 사모바위(오른편)와 할미바위(왼편).

 하로마을에는 과거급제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모바위’ 이야기다.

관리들이 쓰는 사모를 닮은 사모바위는 모암산 절벽에 있었다. 산위에 있는 사모바위의 정기를 받아서 하로마을에 과거급제자가 많이 나왔다. 과거급제 후 관직에 진출해 성공한 고관대작들이 부모님과 마을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한 고향방문이 많아지자 ‘김천도찰방역’의 역리들은 그 수발에 곤욕을 치렀다. 어느 날 한 역리의 꿈에 도인이 나타나 사모바위를 깨트리면 더 이상 과거 급제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예언을 했다. 역리들이 도인의 말대로 사모바위를 굴러 떨어트리자 이후에는 급제자가 나오지 않았다. 사모바위의 정기가 끊어진 것을 아쉬워한 주민들이 수레로 사모바위를 실어와 마을 입구에 세우고 옛날의 영화가 다시 오기를 빌었다. 할미바위를 닮은 바위도 사모바위 앞에 세웠다. 사모바위의 정기를 받은 때문인지 하로마을은 3판서 6좌랑을 배출한 반촌으로 자리 잡았다. 판서는 이조, 형조 등 6조의 수장으로 현재로 비교하면 장관이고, 좌랑은 정6품으로 6조에 소속된 중앙부처 관리다. 한 마을에서 이처럼 많은 고위직 관리가 나온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김천도찰방으로 부임한 ‘이중환’도 하로마을을 들러 사당에 참배하고 선배 관리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 수가 많아 하로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를 알만하다고 했다. 청백리 이약동, 문종 때 공조판서를 지낸 최선문이 이 마을 출신이다.


김천하로마을-한라산산천단유적비
한라산 산천단유적비.

 

이약동은 제주목사를 이임할 때 모든 관물을 관아에 남겨두고 길을 나섰고 말을 타고 나오면서 들고 있던 말채찍도 제주의 것이라면서 성문에 걸어두고 왔다. 매년 정월에 제주도민들이 한라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추위에 얼어 죽는 도민이 생기는 등 어려움이 많다. 이에 이약동이 조정에 상소를 올려 산 아래에서 산신제를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제주 도민들이 이약동의 선정을 기념해 산천단유적비를 세웠다.

그로부터 539년이 지난 2009년에 제주도민들이 제주대학교 옆에 있는 산천단유적비를 원형 그대로 만들어 하로마을에 전달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500년을 이어온 보은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석은 현재 하로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약동을 청백리의 표상이라고 했고, 육당 최남선은 청백리 100인 중에서 으뜸이라고 했다. 최선문은 공조판서를 지냈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관직으로 버리고 낙향했다. 세조가 그 명망을 알고 의정부좌찬성으로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명정에 이 직함을 쓰지 못하도록 유언을 했다. 5남4녀 중 아들 다섯이 모두 문과에 급제해 하로마을을 ‘오자등과방’으로 부른다. 김종직은 “지조는 송죽과 같고 정신은 수월과 같다”고 칭송했다. 마을 안에 재실인 ‘경원재’가 있다.

하로마을의 이야기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매년 정월에는 사모바위와 할미바위 앞에서 주민안녕기원제를 지낸다. 주민들은 촛불을 켜고 술잔을 올리면서 소원을 빈다. 2009년에는 나눔과 소통의 따뜻한 공동체 복원을 위한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사모바위와 할미바위의 혼례식을 올리기도 했다. 사모바위와 할미바위를 의인화 한 것으로 일종의 영혼결혼식인 셈이다. 한국무용가 최동선은 할미 춤과 사모바위 춤을 창작하여 공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을 볼 때 아직도 사모바위와 할미바위의 전설은 주민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천의 번성과 주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축제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천하로마을-경원재
오자등과방의 산실인 경원재.

금년 5월에 폐교된 양천초등학교에서 열린 전통문화축제를 시작으로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다양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2022 국악거리 축제도 준비 중이다. 거리축제는 전통징을 활용한 청소년들의 징치는 행진과 전통국악연주회, 전통염색체험, 유기체험, 유치원생 서예교실, 전통다도교실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오자등과방의 산실인 경원재에서 청춘남녀들의 ‘사랑의 언약식’과 전통혼례식을 추진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청백리 이약동을 배향한 하로서원에서는 공직자들의 청렴서약식을 실시하고, 고택음악회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때 김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능제사의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전통문화 창작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능제사는 1968년 창립 이후 40여 년 동안 김천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한 견직물제조업체로 농가 소득증대와 일자리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만정장학회를 설립하고 2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2만 2천㎡의 부지를 중앙고학교 신축 부지로 제공해 지역 인재 양성과 교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기업이다. 최열호기자·강현수필가

 

 

김천하로마을-박현배
박현배 새마을지도자

<우리마을은>
박현배 새마을지도자...‘오자등과방’ 재현 과거시험 계획

“한마디로 말하면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하로마을은 수많은 스토리와 문화유산을 간직한 마을입니다. 그러나 막상 귀촌을 해서 지내다보니 농촌의 현실이 참담했습니다. 늘어나는 것은 노인과 빈집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마을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새마을지도자와 영농회장을 맡았습니다.”

박 지도자는 서울에 있는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2년 이곳 하로마을로 귀촌했다. 마을의 풍경과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제2의 고향으로 삼을 생각하고 귀촌을 단행했다고 했다. 귀촌 후 한동안은 서울을 오가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5도 2촌의 생활을 했었다.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완전히 정착한 후부터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모바위와 할미바위, 한라산 산천단유적비, 5자등과방, 명나라장수 이여송이 끊은 혈맥, 마을에서 출토되어 대구박물관에 보관중인 반가사유상 등에 대한 스토리를 수집했다. 8년 전에 폐교와 서원을 이용해 시립국악단원 초청 전통음악제를 개최하면서 자신감도 얻었다. 전통문화를 마을 스토리와 접목하면 좋은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폐교와 서원에서 열리는 전통문화축제와 병행해 서당을 개설해 한문과 전통 예절교육을 실시하고 다섯 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한 스토리를 품고 있는 경원재에서 ‘오자등과방’을 재현하는 하로마을 과거시험도 계획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학교와 전통가옥을 살리고 젊은 청년들을 불러들임으로서 미래 인물을 육성하는 젊고 활기찬 마을로 만들어 나가갈 계획‘이라고 박 지도자는 밝혔다. 강현수필가

 
가볼만한곳-직지문화공원
직지문화공원

<가볼만한 곳>

◇직지문화공원...수목 사이로 산책로 조성

직지문화공원은 천년고찰 직지사 바로 앞에 있다. 2004년 7만 9160㎡ 규모로 조성됐다.

공원 가운데로 직지천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에 청량감을 더해 준다. 공원 내부에 우거진 수목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좋고 중간 중간에 설치된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파트 7층 높이의 커다란 장승 2기를 만난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장승의 위용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지만 왠지 친근감이 느껴진다.

공원 곳곳에 설치된 세계 유명작가들의 조각품 50점과 20점의 시비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화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2단 인공폭포와 하늘을 향해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분수대는 바라보기만 해도 한여름의 무더위가 단번에 날아간다.

야간에는 ‘빛과 풍경’을 모티브로 한 형형색색의 조명이 색다른 야경을 연출한다.

공원 내부와 인근에 세계도자기 박물관과 시립박물관, 백수문학관, 사명대사공원, 세계 언론자유영웅 50인 기념비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사명대사공원의 대형 5층 목탑인 평화의 탑과 대형 화합의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한 장의 인생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좋다.

신라 눌지왕 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직지사의 숲길과 호젓한 경내는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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