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나를 위로하는 글
[문화칼럼] 나를 위로하는 글
  • 승인 2022.08.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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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책 한권으로 인해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쉬 해결 되지 않을 것 같던 내 마음의 감기가 한권의 책과 글을 쓴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뜨끈하게 풀어지면서 마음속 평화가 다시 찾아 들었다. 나는 평소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 성격이라고 자부한다. 주위로부터도 멘탈이 강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그래서 튼튼한 몸과 마음을 물려준 부모님에게 늘 감사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치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아침에는 항상 기분 좋게 일어난다. 깨어 난지 불과 일 이분 후에 갑갑한 절망감이 쏴하고 밀려오더라도 아침에 눈을 뜰 때는 항상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생활이 흐트러진 적이 있었다. 지난겨울 어느 날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보통 때는 아주 선명한 꿈을 어쩌다 간혹 꾸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매일 매일 밤새 꿈을 꾸는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꿈이 계속 이어지게 되니 급기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 했다. 또다시 밤새 계속될 꿈이 부담스러웠던 것이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더니 드디어 우울감이 찾아 왔다. 슬프고 고통스러울망정 일평생 우울하다는 느낌 없이 살아 왔는데, 아! 이것은 매우 곤란하다. 계속 이렇다면 남은 생이 걱정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이러던 중에 시인 문태준의 글과 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맺힌 매듭이 툭하고 끊어지는 것처럼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더니 우울감이 점차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이제는 잠도 푹 잔다. 꿈도 꾸지 않고--
김천 태생의 시인은 두해 쯤 전에 제주 애월로 이주해서 아내가 태어난 옛집을 허물고 방 두 칸에 작업실 하나를 새로 지어 문정헌(文庭軒)이라 이름 짓고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시인에게 타향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낮에는 제주 불교방송에서 직장생활, 퇴근하면 돌 쌓고, 풀 뽑고 농약치고 가지 치는 완전히 노동하는 몸으로 살았다 한다. 자연과의 교감을 주로 노래하는 시인이지만 제주의 자연은 낭만과 동의어가 아니었다. "내륙의 자연과 달랐다. 밤은 길고 깊다. 외롭고 고립된 섬처럼 고독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시인으로 살면서 시를 태어나게 하는 조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다. "맨손 맨발로 굳은 살 박으면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제주살이는 시가 내게 찾아올 수 있도록 나를 세우는 일이었다. 빈 마당에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새벽마다 시 쓰려 끙끙 앓으면서 첫 문장을 기다린다."
나는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누구나 외로움과 고통은 피할 수는 없는 일, 그것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연약해서는 이것을 극복할 수 없다. 부닥치고 그로인해 상처가 생기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제주살이 일 년여의 시간 후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 두 권을 펴냈다. 제주의 사계절 동안 노동과, 이전에 비해서 단순해진 삶 속에서 그리고 이웃들과 교감하며, 고요히 때로는 고독 속에 지켜본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문장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비록 혼자의 밤과 고립은 힘에 겹지만, 문장이, 새로운 마음이 오길, 첫 문장이 빛처럼 오길 다시 기다린다." 이번에 펴낸 시집과 산문집은 풀어내는 언어의 형식은 다르지만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의 결이 흡사해 읽어나가는 따뜻한 질감은 매우 비슷하게 다가온다. 4계절과 4부로 각기 나눈 형식에서부터 그렇다.
"바다는 매일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 바다들은 내 가슴속에서도 어느 날은 잠잠하고, 어느 날은 거세게 출렁인다. 나는 바다의 다양한 풍경이 우리 삶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다는 내 내면을 매일 신선한 상태에 있게 한다. 문제는 일상의 변화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는 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이에 대하여 한마디 덧붙인다. "물론 은근하게 마음을 갖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을 가꾸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바깥의 신선함이 마음에 들어와 살고, 그리하여 내면이 물 흐르는 듯하고, 과잉에 이르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꾸어야 할 영혼의 면모가 아닐까 싶다."
그가 어떤 연유로 제주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매일 새벽 맞이하는 절대 고독 속에 그의 글은 움트고, 매우 부지런하고 말수가 적으며 화를 내지 않는 돌담너머 이웃들과의 교감 속에 그의 시선은 깊어지고 따뜻해 졌으리라 짐작한다. 나에게 위로와 치유의 경험을 하게한 작품은 그런 가운데 탄생되었다. 한 사람의 고독 속에 태어난 아름다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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