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범죄도시2...이 영화는 실화를 재구성하여 만든 픽션으로
[백정우의 줌인아웃] 범죄도시2...이 영화는 실화를 재구성하여 만든 픽션으로
  • 백정우
  • 승인 2022.08.04 22: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정우줌인아웃-범죄도시2
 

“이 영화는 동남아 한국인 납치 살해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만든 픽션으로 영화에 나오는 인명, 상호, 내용 등은 철저한 허구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우선 두 개의 질문. 첫 번째, 위 자막이 나오는 영화 제목은 무엇일까? 두 번째, 위 자막은 어디쯤 등장할까, 혹은 당신은 극장에서 이 자막을 보았는가? 첫 번째 답은 쉽다. 이상용 감독이 연출한 ‘범죄도시2’이다. 그런데 두 번째는 좀 아리송하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까지 이 자막을 본 관객이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좀체 보기 힘든 지점에서 등장하기 때문. 그러니까 이 자막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제일 마지막(이즈음이면 상영관 청소·정리하는 분도 제일 아래까지 내려갔을 때다.) 지원기관과 단체 이름, 그보다 더 아래 등장한다. 이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관객이 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등장하는 자막은 대개 3가지로 나뉜다. 실화-실화에 근거한-실화에 근거했으나 허구. 실화나 실화에 근거했다고 표기하는 건 관객에게 특정한 태도를 요구한다. 즉 구경꾼이 아닌 목격자로 현장에 초대하니 응답해달라는 요청이다. 도덕적 이슈를 제기하는 사회드라마에서 주로 만난다. 문제는 실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기조차 과장과 미화와 취사선택의 결과물이라면, 하물며 어떤 사건을 이야기할 때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조차 진술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실화(實話)는 실제로 일어난 일(實)과 구술 또는 기록자의 취사선택과 허구가 개입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話)가 합쳐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영화가 실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을 때 사회적 반향이 크고, 이미 대중에게 알려졌다는(검증된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관객의 관심을 증폭시킬 거란 기대와 맞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오프닝과 엔딩 크레디트에 ‘실화’와 관련한 자막을 적극적으로 표기하지 않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금천서 강력반의 조선족 조폭 일망타진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강윤성 감독의 ‘범죄도시’에는 실화에 근거했다는 문구 대신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 2004년 금천서 강력반은 조선족 조직원 30명을 검거했다는 자막으로 실화에 근거했음을 암시한다. 반면 ‘범죄도시2’는 사건을 재구성했으나 ‘철저한 허구’라고 못 박는다. 전작이 개봉한 2017년 조선족 혐오 반대 시위와 상영금지 가처분소송 등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실화를 포기할 순 없고 그렇다고 영화 시작부터 ‘철저한 허구’라는 자막이 뜨면 김이 빠질 터. 여러 정황을 고려해 표기는 하되 최대한 뒤로 밀어버렸을 제작자의 고민이 엿보인다.

어차피 영화는 본질적으로 허구이고 판타지다.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감독의 세계관에 따라 직조된 편집의 결과물이다. 앞으로도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질 것이다. 문제는 실화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실재와 일치하느냐가 아니라, 자막을 어디쯤 표기하느냐가 아니라, 관객에게 무엇을 줄 것이냐이다. ‘범죄도시2’는 2년간 코로나로 지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낼 만큼 제 임무를 다했다. 크레디트 위치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