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상선언'… 이륙한 비행기서 마주한 재난, 당신이라면
영화 '비상선언'… 이륙한 비행기서 마주한 재난, 당신이라면
  • 김민주
  • 승인 2022.08.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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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된 곳서 테러·전염병 발생
360도 회전·난기류 표현 압권
임시완 등 배우 열연 불구하고
뒷심 부족한 전개 아쉬움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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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선언’ 스틸컷. 쇼박스 제공

재난 상황에 직면한 항공기가 더 이상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하여,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비상사태를 뜻하는 항공 용어 ‘비상선언’. 여행객으로 가득 찬 비행기는 목적지 하와이에 도착하지 못한 채 상공에서 비상선언을 선포했다. 이 비행기를 탄 150명의 승객들은 무사 귀환할 수 있을까.

한 남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행기 테러’를 예고하는 영상을 올린다. 베테랑 형사팀장 ‘인호’(송강호)는 테러 예고 영상이 단순 장난이 아닌 것을 직감하고 그를 추적하던 중 용의자가 자신의 집에서 실제 테러를 위해 준비물을 챙겨 공항으로 떠난 것을 알게 된다.

그 시각 하와이로 떠나는 KI501 항공편에는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사업을 위해 출국하는 사람들까지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행 공포증을 겪고 있는 ‘재혁’(이병헌) 또한 딸의 치료를 위해 두려움을 참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는 공항에서부터 자신과 딸의 곁을 맴도는 낯선 남자를 수상쩍게 여겨 지켜본다.

공항을 떠나 이륙한 비행기 안의 평화가 깨진 건 한 탑승객이 사망하면서부터다. 이내 연쇄적으로 사람들이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되고 이 이유가 생화학 테러라는 걸 알게 되자 항공기 내부는 물론 지상까지 혼란과 두려움으로 바뀐다. 이 소식을 들은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는 대테러센터를 구성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영화 ‘비상선언’은 ‘이륙한 비행기’라는 밀폐된 공간 속 생화학 테러와 전염병을 소재로 삼아 관객들에게 도망갈 곳 없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관객들은 극장을 항공기 내부처럼 꾸며놓은 것도 아닌데, 영화를 보는 내내 재난을 마주한 비행기에 타고 있는 듯하다. 이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시각적 연출이 ‘비상선언’의 최대 강점이다.

감독은 극한의 사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실제 거대한 크기의 비행기 세트를 구현하고 이를 360도 회전시킬 짐벌을 촬영에 투입했다. 크고 작은 터뷸런스(난기류)를 표현하는 것부터 비행기가 추락하며 빙글빙글 도는 상황까지 그야말로 ‘실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데 주력했다. 비행기가 360도 회전하며 아수라장이 된 기내를 표현한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손에 땀이 쥐어지는, 숨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더불어 관객들이 이 공포에 몰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이미 경험했던 순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접촉으로 감염, 잠복기 등의 특징을 지닌 이 재난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몇 년간 겪고 있는 코로나 시국을 연상시킨다.

한재림 감독이 10년 전 기획해 팬데믹 전 촬영을 한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살기 위해 감염 의심이 있는 학생들을 무섭게 다그치는 승객, 비행기의 착륙을 막는 일부 국민, 설전을 펼치는 정부 관계자들까지.

결국 관객들은 ‘생화학 테러로 거대한 무기가 된 비행기를 내 앞마당에 착륙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혼란스러운 질문에는 재난을 바라보는 한 감독의 차가운 시선이 담겨 있다.

다소 아쉬울 수 있는 후반부 전개에 힘을 더하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등의 열연과 약 4개월 간의 심사를 거쳐 발탁된 승객 역 배우들의 절절한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생화학 테러를 계획한 테러리스트를 연기한 임시완은 ‘비상선언’에서 가장 돋보이는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그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서늘하다. 잔뜩 힘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힘을 빼고 캐릭터의 포인트를 잘 짚어낸 영리한 ‘강약 조절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제대로 성공했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뒷심이 부족한 전개는 너무나 아쉽다. ‘비상선언’은 단순히 재난 상황 속 장대한 생존 과정을 비추는 영화가 아니다. 한 감독은 재난 속 발견하는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사회 공동체에 대해, 소중한 가족과 이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 메시지 전달에 너무 몰두한 탓일까. 결말에 닿기까지 여러 차례 반전을 거듭하는데, 이는 오히려 한껏 상기된 관객들의 긴장감을 늦추며 전개가 늘어져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도 ‘비상선언’은 ‘극장용 영화’임은 틀림없다. 특히 360도 회전 시퀀스는 이제껏 한국 영화에선 보지 못했던 특수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는 점은 재난 영화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많은 관객들이 영화적 체험과 극장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즐기길 바라본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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