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삼태성이 뒷산 올라 앉으면 자정…용마루서 졸면 새벽”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삼태성이 뒷산 올라 앉으면 자정…용마루서 졸면 새벽”
  • 김종현
  • 승인 2022.08.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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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달구벌 선인들은 어떻게 동서남북과 시간을 알았을까?
북반구에 존재하는 한반도
일향성 따라 남북 구분 가능
초승달은 새벽 6시에 동쪽
저녁 6시에는 서쪽에서 떠
보름달은 초승달과 반대
막대 꽂아 그림자 이동 그려
시작점 西, 끝나는 점은 東
윷판경작철학
윷판에 나타나는 선조들의 경작철학. 그림 이대영

◇해 뜨면 일터로 해가 지면 둥지로

선인들은 동서남북 4방위에 대해 어떻게 알았을까? 허신(許愼, 30 ~ 124)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동(東)은 “소리(音)는 동(動也)이다. 나무를 기준으로 ‘나무 가운데 해가 떠있음(從日在木中)’을 표현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나무는 솟대, 장승나무 혹은 신당나무 등에 해당한다. 신목(神木)에 해가 가운데 걸려 있을 때는 아침에 해 뜰 때라서 그쪽이 동이다.

갑골문자 전문가는 동은 “아침 해(日)가 뜨는 걸 보고 무거운 짐을(十) 지고 가는 사람 모습”이라고 했다. 서는 “해지는 것을 보면서 새들이 둥지를 찾아드는 모습(夕鳥回巢)”으로 그렸다.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움집도 남향으로 하고 출입을 알고자 달았던 종모양(南門鍾樣)을 남이라고 했다. 북은 ‘서로 등지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相背向坐)이라고 했다.

우리 선인들은 동서남북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해, 달, 두성(남두육성, 북두칠성 혹은 십자성), 나무, 동네, 묘지, 개미집, 바람 등을 보고서 쉽게 알 수 있었다. 한반도는 북반구에 있어 일향성(日向性)에 따라 남향으로 북극성 등에서 남북이 확연하게 드러나기에 직감으로 알았다. 초승달(上弦月)은 새벽 6시에는 동쪽, 저녁 6시에 서쪽에서 뜨며, 보름달은 초승달과 반대로 아침 6시에 서쪽, 저녁 6시엔 동쪽에서, 그믐달(下弦月)은 새벽 3시 남쪽, 밤 9시에 동쪽으로 이동한다. 그림자로 방향을 알고자 하면 막대를 꽂아놓고 5분 정도 그림자이동(5cm정도)을 그려서 시작점은 서쪽이고 끝나는 점은 동쪽이 된다. 오늘날 독도법(讀圖法, reading map)에서 손목시계(watch)로 방향을 감지하는 법은 시침을 태양에 일치시키고 시침과 12시 방향 각도를 2등분한 연장선 방향이 남쪽이다.

오늘날처럼 해 뜨면 일터에 나오고 저녁엔 귀가하는 모습을 요순시절(BC 2400년 경)의 격양가에서 “해 뜨면 일터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둥지(집)로 돌아와서 잠을 자니, 우물 파 물마시고, 농사지어 배불리 먹는데. 국왕인들 이것보다 더 할 수 있겠나”라고 노래를 했다. 그들도 오늘날과 같은 직장생활을 가졌으나 단지 시간에 쫓기는 건 없었다.

그리스(로마)시대 영화를 보면 막대를 벽에 꽂아서 그림자로 짐작했던 해시계(sun-dial) 모습이 나온다. 소수서원엔 해시계로 사용했던 해그림자돌(日影臺)이 남아 있다. 특히 식물의 향일성(向日性, heliotropic plant)과 배일성(排日性, negative heliotropism)을 활용한 꽃시계가 있었다. 대구지역을 기준으로 볼 때 비가 오거나 구름 낀 날에 아침에 피는 나팔꽃(morning glory), 해가 져야 피는 박꽃, 달뜰 때에 피는 달맞이꽃(月迎草) 등이 많다. 시골 장마철에 어머니는 박꽃이 피는 걸 보고 저녁밥을 준비했다.

야간에 사용했던 천문학시계는 대부분 북두칠성(혹은 삼태성)의 이동으로 시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삼태성이 뒷산 흑응산(黑鷹山) 정상에 올라앉으면 자정... 동네입구 성황당 용마루에서 졸고 있으면 새벽이다. 지난 2019년도 체코 프라하 호텔에서 곤히 자다가 용변을 위해 밤중에 일어났는데 ‘밤 꾀꼬리(nightingale)’의 소야곡(小夜曲, serenade)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정임을 알았다.

일본 전통술인 ‘사케(サケ)’는 일본고사기에 의하면 백제인 수수고리(須須許理, すずこり)가 712년에 전한 양조기술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때 숙성을 강조며 “삭혀(サケ)”로 거듭 말하자 그만 이름이 ‘사케(サケ)’가 되었다. 오늘날도 일본에선 과거와 같은 전통방식으로 술을 삭히고 있다. 솥에 술을 끓이면서 젓는데 고대시가 3곡(15분 정도)을 불러서 시간조정을 하고 있었다. 당시 시간측은 5분 혹은 10분이 아니라 담배 한 대 피울 참(煙間), 노래 한 자락할 사이(唱間)...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달구벌(天鷄)은 윷판의 천원(紫薇垣)

오늘날 정치적으로 대구를 보수의 텃밭(kitchen garden)이라고 한다. 사실 텃밭이란 집터 가까이 있는 밭이며, 대개 채전으로 이용하고 있기에 크게 나누면 배추밭과 고추밭이었다. 그래서 텃밭을 영어로 번역할 때는 채전(vegetable garden)으로 표기한다. 그래서 우리의 선인들은 텃밭의 활용법을 민속놀이로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윷판놀이(戱擲 혹은 柶戱)다.

우주창조의 60억년을 성경에서는 6일만의 창조로 축소했듯이 둥근 우주를 하나의 커다란 둥근 밭(大圓田)에 비유해서 종이 위에 그리고, 우주를 다스리는 북극성의 자미원(北極星 紫微垣) 혹은 바둑판의 천원(天元)을 가운데 동그라미로 그렸다. 그리고 춘하추동 4계절로 나눠서 경작을 한다고 생각하며, 가축으로 돼지(도), 개(개), 양(걸), 소(윷) 그리고 말(모)을 사육한다고 가정해 게임 판인 윷놀이 판을 만들었다. 윷가락의 앞면과 뒷면을 음양(陰陽)으로 보고, 도, 개, 걸, 윷과 모의 5개 양상을 오행(五行)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렇게 해서 음양오행의 철학까지를 윷판에다가 담았다.

철따라 하는 경작(季節輪作)을 생각해, 봄철은 ‘앞밭’, 여름철은 ‘뒷밭’, 가을은 해가 토끼꼬리처럼 짧아져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쨀밭’이고, 겨울철은 빨리 바닥을 드러내야(일을 끝내야) 하는 ‘날밭’이라고 했다. 동물의 달아나는 속도에 따라 도(돼지) 한 걸음, 개(개) 두 걸음, 걸(양) 세 걸음, 윷(소) 네 걸음, 모(말) 5 걸음으로 달아나게 규정을 마련했다. 윷판의 한가운데 천원을 방(房)이라고 하고, 언제든지 생각나면 시작하라는 의미에서 출발점은 어디에도 따로 두지 않았다. 결승점은 참먹이가 되며, 다 끝났다고 안심하다가 다 죽은 경우도 생길 수 있어 끝나기 전엔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終到才終)는 교훈을 얻는 게 가장 뼈아픈 결과다.

우리는 윷놀이를 단순하게 서로 잡아먹다가 끝나는 상살전쟁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것보다 편을 짜서 경기를 할 때는 같은 팀끼리는 업고 살아가는 상생협업에 주안점을 두고있다. 결승점을 ‘참먹이’라고 표기한 건, i) 다 먹은 죽에 콧물 빠지는 꼴을 당하지 말라 즉 죽음(斬)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계, ii) 모임놀이에 있어 끝났으니 “참(간식)을 먹고 다시 시작하자”는 단합, iii) 참된 먹거리(농사)를 기원하기 위한 유흥 등을 뜻한다.

윷놀이의 기원은 농경시대인 고조선 환국시대 BC 3000년경으로 짐작되며, 2019년 7월 22일 경북 영양군 검각산성 뒤 검산(劍山)에서 윗덮개 돌(屋蓋石)에 윷판(또한 별자리)이 새겨진 고인돌 7기가 발견되었다. 사용연도는 BC 1700년경으로 추정되었다. 지금까지 윷판 암각화를 관광지로 개발한 곳은 2002년 임실군 신평면 상가마을이 있고, 2020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천인대에서도 낙동강섶에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달구벌에도 없는 것이 아니라 윷판(柶板)을 암각화한 유적은 달성군 다사면 죽곡리 모암봉 윷판형 암각화 2기와 팔공산 동봉 표지석에 깔린 윷판 암각화 등이 언론에 게재되었는데도 우리들은 관심 밖이었다.

달구벌에 살았던 선인들은 암각화의 의미조차 모르고, 이용가치가 있다면 건축자재로 깨뜨렸고,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땅속에 매몰했다. 줄잡아 3천 기 고인돌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졌다. 고대천문학이 발달되었던 달구벌이라 윷판암각화(星穴)가 어느 곳보다도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아있지 않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전국적으로 20여 곳에 90여기(基) 윷판암각화(성혈)가 발견되고 있고, 대부분 청동기시대인 3천 년 전의 비밀을 머금고 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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