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무후광복군 대전 현충원으로
[대구논단] 무후광복군 대전 현충원으로
  • 승인 2022.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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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대기자·전북대 초빙교수
무후라는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가 광복군 앞에 쓰여 있어 얼른 무슨 뜻인가 했다. 무후는 無後라는 한자다. 후손이 없다는 뜻이다. 이 낯선 용어가 쓰인 것은 만주벌판에서 왜적에 맞서 싸웠던 광복군 중에 전사한 분들이 고향을 떠나 이국 만리에서 혼자 살다가 세상을 떴기 때문에 후손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당시 광복군은 총사령관을 지청천장군이 맡고 이범석 장군이 총참모장으로 실질적인 역할을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군은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 산하였지만 모든 훈련과 전투준비는 장안(현재 서안)에서 했다. 이들은 신흥무관학교나 황포군관학교 등지에서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지휘관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분들이 장교로 임명되었으며 그렇지 못한 분들이 병졸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급과 상관없이 한 민족 한겨레로서 반드시 왜적을 물리치고 조국 광복을 이루겠다는 굳센 의지만은 변함이 없었다.

많은 광복군들이 초창기에는 김좌진과 홍범도가 이끄는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에서 봉오동 대첩을 이루고 청산리에서 왜적의 대부대를 섬멸하는 등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광복군은 체계적인 군대로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미군 정보부대의 협력을 받아 조선반도 상륙작전을 기획했다. 장준하 김준엽 노능서 등 팔팔한 학병탈출 젊은이들이 자진해서 OSS에 참여하여 조국강산에 상륙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의 항복이 며칠만 늦었더라면 이 상륙작전이 실행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그게 성공했다면 우리나라는 당당한 연합군의 한 축이 되어 참전국으로서의 승리의 과실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일본의 왕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의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을 하는 바람에 임시정부의 참전기회가 박탈되었던 것이다. 김구주석은 이를 애석해하면서 통곡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럴 즈음 광복군들은 간헐적으로 일본 관동군과 전투를 벌여 많은 피해를 주며 선전했지만 무기부실과 절대수의 부족으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광복군의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태행산 전투로 알려졌다. 여기에 청춘을 묻은 광복군들은 동료들의 희생적인 시신수습으로 유골로나마 고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이 항복한 후 광복군은 임시정부와 함께 영예롭게 귀국하기를 바랐으나 미군정에서 개별입국으로 제한하여 쓸쓸하게 귀국의 길에 올랐다. 이 때 유골로 모셔져 있던 광복군 유해가 함께 돌아왔으며 가족들이 찾아온 분들은 각자의 선영으로 모셔졌지만 후손을 찾지 못한 17위의 영령들은 조계사 등 사찰에 임시 안치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훈처는 1985년 수유리 애국열사 묘역에 합동묘소를 조성했다. 조그마한 비석을 세워 영령들의 이름과 공적을 밝혔다. 그러나 명절이 되어도 누구하나 물밥 한 그릇 올릴 사람이 없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나는 가까운 동지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어른들을 이렇게 모시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순국선열숭모회’다. 전대열 상임대표, 조대용 김선홍 상임공동대표로 멤버를 구성하고 추석과 설 다음날에 추도식과 합동차례를 지내온 것이 10년이 넘었다. 도봉구 김선동 국회의원도 꾸준히 참석해왔다. 나는 추모사를 할 때마다 “후손이 없으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느냐”고 다그쳤다. 10년을 하루같이 계속 반복하여 이 뜻을 펼쳐왔다. 그러나 보수 진보 어느 정권에서도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에 윤석열정부에서 용단을 내려 17위의 영령을 대전 현충원으로 안장하기로 결정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다. 지난 8월11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참석하여 합동묘소를 개장(開場)하고 육해공군 해병대 의장대원들이 운구에 참여한 것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길이 빛나게 한다. 17위 영웅들의 용명(勇名)을 이 글의 끝자락으로 새기고자 한다.

김순근 이한기 김찬원 한휘 이도순 김유신 이해순 정상섭 문학준 현이평 안일용 김운백 김성률 동방석 백정현 전일묵 조대균. 부디 편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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