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과일 바꾸기
[달구벌아침] 과일 바꾸기
  • 승인 2022.08.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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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밭 지나면 향기 퍼져
쌀이나 보리 등 곡식과 바꿔
한 되쯤 가져가면 한 광주리
돌아오는 먼 길 힘들지 않아
박순란 주부
여름이라 과일이 풍년이다. 수박, 복숭아, 자두, 참외 등 우리나라 제철 과일이 마트에 가득하다. 제철이 아니어도 과일은 마트에 늘 있지만 제철에는 더 많고 더 싸고 맛있다. 여름에는 과일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올 해는 비가 많이 오지 않고 햇볕이 뜨거워서인지 과일값은 비싸지만 달고 맛있다.

홍희는 자두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밤늦게 집에 오는 아이를 위해 아이 입맛에 맞는 파인애플, 배, 메론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시원한 과일을 먹는 아이를 보면 홍희 어릴 때가 생각난다.

홍희가 어릴 때 시골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과일도 제철 과일만 먹을 수 있었다. 밭에 채소를 심고 키워서 먹듯이 과일도 수박과 참외는 심었다. 팔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심은 것이 아니어서 상품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잘 익은 수박은 달았다. 껍질에 붙은 하얀 부분까지 삭삭 긁어서 설탕을 뿌리고 먹었다. 수박이 제대로 영글어 빨간 것을 먹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껍질부분을 반찬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그건 홍희 입맛에는 별로였다. 참외도 작았지만 아삭했다. 금방 따면 껍질이 매끄럽지 않고 털이 있는 것 같고, 우툴두툴했고 단단했다. 바로 먹으면 속이 상하지 않아서 다 먹을 수 있었다. 씨가 있는 속이 더 달다. 시간이 지나면 씨를 감싼 부드러운 부분이 빨리 상해서 도려내고 먹어야 한다. 그 부분이 가장 맛있어서 참외는 익으면 빨리 따서 먹어야 했다.

자두 농사를 짓기도 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밭에 수확을 할 때 가보면 자두가 홍희 주먹보다 컸다.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 따서 바구니에 담으면 금방 가득찼다. 한 개 깨물어 먹으면 겉껍질은 단단하고 살은 무르면서도 달았다. 씨가 싹 발라져 나왔다.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아직도 그 자두맛을 잊지 못한다. 나무 꼭대기에 빨갛고 큰 자두 한 개가 달려 있으면 따지 못한채 남겨 두었다. 새밥이라고 하지만 사실 딸 수 있는 사다리가 없고, 기계가 없어서 였다. 긴 나무 작대기가 있어야 딸 수 있지만 떨어지면 깨져서 먹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놔둔다. 그걸 새가 먹는 거다. 홍희는 많이 먹고 싶어도 돈을 벌기 위해 팔아야 해서 한 두 개 정도 먹을 수 밖에 없었기에 나무 꼭대기에 달린 자두를 새가 먹는 것이 부러웠다. 그 새는 얼마나 맛있게 그 자두를 먹을 것인가? 사다리 키가 더 크거나, 몸이 날렵해서 올라가거나, 날개가 달려 있어 그 자두를 따먹고 싶었지만 딸 수 없었다. 아쉬웠다.

복숭아가 분홍색으로 탐스럽게 열린다. 동네사람들이 지은 복숭아 밭을 지나면 향기가 났다. 새콤달콤한 맛이 좋고, 무르익으면 과즙이 나오고 무른 것이 좋다. 복숭아가 먹고 싶으면 집에 있는 곡식과 바꾸러 간다. 물물교환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이라 자기 집에 있는 것과 남의 집에 있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주로 쌀이나 보리를 갖고 간다. 오래두어도 상하지 않고, 가장 필요한 곡식이다.

집과 가까운 곳일 때는 갖고 가기가 쉽다. 한 되쯤 되는 곡식을 갖고 가야 복숭아을 한 광주리정도 가져올 수 있다. 초등학생이 갖고 가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길이 멀면 힘들다. 한 번은 동네 사람들 중 가까운 밭이 없었나 보다. 동네에서 멀고 가파른 길을 가야 복숭아 밭이 있어서 혼자서 뜨겁고 먼 길을 갔던 기억이 난다. 복숭아가 그리 먹고 싶었나 보다. 엄마 아버지는 밭에서 일하시느라 바쁘니 혼자서 갔을 것이다.

하얀 길이 구불구불하고 미끄러워서 갈 때는 몇 번을 멈춰 쉬었다. 작은 키에 마른 몸으로 그 먼길을 가서일까 복숭아 밭 주인이 갖고간 쌀 포대기에 복숭아를 가득 담아주었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오다 몇 번쯤은 쉬었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향긋한 복숭아 향기가 코를 찔렀다. 여름에 과일을 살 때면 그 날의 복숭아 향기가 생각난다. 지금은 복숭아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도 그날의 복숭아 바꾸러 간 기억은 칼라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트에 가면 널린 과일들을 보면서 예전에 돈이 없어서 쌀이나 보리쌀과 과일을 바꾸러 갔던 그 날들이 여름이면 떠오른다. 먼 길을 걸어가서 바꾸어 온 과일은 마트에서 산 것 보다 달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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