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조선 개국 2등 공신들과 이준석의 흥망성쇠
[류동학의 세상읽기] 조선 개국 2등 공신들과 이준석의 흥망성쇠
  • 승인 2022.08.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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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요즘 윤석열정부에서 공신들인 소위 윤핵관과 이준석의 권력투쟁과 이준석과 장예찬으로 대변하는 청년정치가 분열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는 이준석 전대표가 이제 겨우 100일 지난 자당 출신 현 윤대통령까지 저격하는 무모한 공격을 시도하는 역린(逆鱗)을 건드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정치판은 점입가경이다.

공신은 배향공신(配享功臣)과 훈봉공신(勳封功臣)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배향공신은 왕이 죽어서 종묘에 위패(位牌)를 모실 때 공로가 많은 신하의 위패도 같이 모시는 경우를 말한다, 훈봉공신은 정공신(正功臣)과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구분한다. 정공신은 1392년 개국공신에서부터 1728년(영조 4)이인좌의 난을 토평하고 내린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이르기까지 28회에 걸쳐 훈봉되었다. 조선 개국2등 공신은 박포,장담,조반,황희석,유창,정용수,조온,윤호,조기,조영규,이민도,조견,홍길민등 모두 13명이다.

황희석(黃希碩,?~1394)은 본관이 울진 평해로 그는 이성계의 죽마고우이자 지음지교로 위화도회군에 이성계의 막하에서 활약한 무신으로 개국공신 2등이 되었다.

조기(趙琦)는 고려 말 군졸로 출발하여 최영의 휘하에서 이성계의 휘하로 들어가 군무(軍務)를 담당하였다.

조영규(趙英珪)는 일반 평민 출신 무인으로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조영무, 고여, 이부 등과 격살하는 데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

조반(趙?,1341 ~ 1401)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이인임,염흥방, 임견미 세력의 폭정과 본인에 대한 탄압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1388년 우왕시기 무진피화(戊辰被禍)의 당사자이다, 이후 이성계와 최영,이색이 정국을 주도한다.

조온(趙溫,1347년~1417년)의 본관은 한양이다. 그는 태조와 태종을 섬기어 개국ㆍ정사 ㆍ좌명 공신의 세 공신에 녹훈되고 한천 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은 의정부 좌찬성에 이르렀고 시호는 양절공이다. 부친은 조인벽, 계모는 태조 이성계의 동복누나 정화공주이다. 그는 중종 시대 사림파의 개혁가였던 조광조의 고조부이다.

조견(趙, 1351 ~ 1425)은 승려로 주지를 지내다가 환속하여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안렴사를 지냈다. 형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해 개국공신이 되었다.

유창(劉敞)의 호는 선암(仙庵)이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문신출신으로 강릉 유씨의 중시조이다.

윤호(尹虎)는 1390년(공양왕 2) 위화도회군과 공양왕 옹립의 공으로 회군공신에 책록되고,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공신 2등이 되어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다.

이민도(李敏道, 1336년~1395년)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원래는 원나라 사람으로 의술과 점술에 재능이 있어 서운부정(書雲副正)과 전의정(典醫正)을 잇따라 지냈다. 상주이씨의 시조이다.

홍길민(洪吉旼, 1353년 ~ 1407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집현전 대제학, 호조판서를 지냈다.

박포는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대장군에 임명되고 죽성군에 봉해졌으며,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가담했지만 2등공신에 봉해진 논공행상에 불만을 토로했다가 죽주로 유배되었다. 1400년 경진년 이방간을 충동질하여 이방원과 싸우게 하면서 2차 왕자의 난이 벌어졌다. 방간이 패하자 이후 주살되었다.

장담(張湛, ? ~ 1400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다. 원래 승려였는데, 환속하여 완풍대군 이원계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그는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때 방간편에 섰다가 체포되어 장독(杖毒)으로 인하여 죽었다. 공신녹권은 추탈되었다.

정용수(鄭龍壽)는 1392년 이성계(李成桂)가 왕위에 즉위할 때 배극렴·정도전·조준 등과 대비의 선교를 받아 국새(國璽)를 바쳤다. 1402년 조사의(趙思義)의 난에 연루되어 탄핵을 받았으나 1437년 복권되었다.

이와같이 개국 2등공신 13명 가운데 박포와 장담은 제 2차 왕자의 난으로, 정용수는 조사의 난에 의해서 공신이 박탈당했으나 정용수는 복권되었다.

오직 정치를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게임하듯이 하는 철저한 독선과 이기주의자의 모습인 청년팔이 이준석의 미래는 역사적인 전레로 볼 때 박포나 장담의 전철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 청년정치의 실상이 피해호소인 이준석으로 인하여 만천하에 노출되어 청년정치의 미래가 어두어질 가능성이 높아 안따까울 따름이다.

선공후사가 아닌 빙공영사(憑公營私)의 이준석의 미래는 인사신(寅巳申)의 삼형살(三刑殺)에 걸려 그의 실체가 드러나고 업보로 돌아가고 있다. 이준석사태의 시작은 성상납의혹과 증거인멸시도이다. 그 결과물로 6개월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정치가가 아닌 정치공학과 선거공학에만 능한 정치꾼으로 국정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배은망덕형의 패륜정치인 이준석을 보면서 인생사의 기본은 올바른 인성(人性)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기반성이 부족한 이준석 전대표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완벽 부형청죄(負荊請罪)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의 주인공인 인상여와 염파의 일화를 베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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