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데스크칼럼]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 승인 2022.08.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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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내로남불’에,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온갖 꼼수를 동원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별의별 법을 만들어 대던 전 정부와 지난 정권의 여당이 못마땅해 국민은 대통령으로 윤석열을 선택했고 국민의힘을 여당으로 만들었다. 국민의 삶보다 권력 유지가 지난 정부의 그들에게선 더 큰 가치로 추앙받았었다. 의원 개개인의 신념보단 당리와 당략에 따른 당론이 그들에게선 훨씬 더 우선이었다. 당론을 따르지 않으면 제명되거나 강성 당원들에게 돌팔매질을 심하게 당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표를 준 국민을 보듬는 활동보다는 다음 선거에서의 공천에 배제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그게 국민 눈에 너무 훤하게 보였다.

조국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언론중재법을 발의했던 그들, 정의기억연대를 방어하기 위해 윤미향 셀프보호법안을 만지작거렸던 그들이다. 한 번 만들어지면 폐해가 심해도 쉽사리 없애기 힘든 법안들이 작년 말까지 21대 국회에서만 1만4천여 개가 발의됐다.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거치지 않은 형사소송법·검찰청법개정안이 당론 속에서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발의된 것은 그야말로 몰상식의 화룡정점이었다.

그래서 지난 정권은 무너졌고, 이런 몰상식을 없애달라고 국민들은 새로운 정부에게 구습을 타파하고, 새시대의 개혁을 이뤄내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열화와 같은 기대 속에서 새 정부와 새로운 여당이 탄생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늘 구르던 대로만 굴러가는 것일까. 기대가 체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막 100일 정도가 지났건만, 민심은 벌써 돌아앉고 있다. 부동산 제도를 손질하는 것을 포함해 어설픈 제도나 방식의 무식한 남용을 없애고, 내로남불을 사전에서 지우고, 원자력의 쓰임새를 중시하며 주적에게 이유도 없이 굴종하지 말라는 국민의 명령은 팍팍한 삶을 바꿔 달라는 아우성과도 같았다.

그러고 100일. 달라진 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주연과 조연만 바뀌었을 뿐 정권과 정치의 행태는 별반 다름이 없다. 125조원 소상공인과 청년의 빚을 탕감해 준다고 내놨던 지난 유월의 정부 정책은 곧 시비에 휘말렸다. 주 52시간에서 64시간으로 확대라는 특별연장근로제 역시 논란을 빚었다. 행안부 경찰국 신설로 경찰과 정부는 그야말로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과 고교 체제 개편안 대목에서는 학부모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제 폐지 정책의 혼선은 말할 것도 없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쌀쌀맞게 대한 일까지 벌어졌다.

미숙하고 어설픈 정책의 연속. 대통령실 안팎 보좌진들의 무능과 소위 윤핵관의 인사개입, 대외비여야 할 대통령의 일정과 동선은 자주 미리 공개됐고 대통령 가족 일상 사진이 느닷없이 팬카페에 공개되는 와중에 대통령 본인의 잦은 말실수까지... 원활한 정책 추진보다 설익은 실수들이 더 눈에 크게 띄었다.

여당은 더욱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국민의힘은 여당이 된 직후부터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줄줄이 흩어지더니 결국 ‘비대위원장 직무정지’라는 법원의 처분 아래 지도부 공백 사태로 모래알처럼 무너지는 와중이다. 이준석 전 대표의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이 힘을 얻자 당 전체가 허겁지겁 뻘밭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내 편과 네 편만 부르짖다 당 자체가 풍비박산 나게 생겼다. 몰골이 엉망진창이 되자 연일 열린 의총에서 당헌과 당규를 손질해 또 새 비대위를 구성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꼼수를 꼼수로 덮으려는 모습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몰상식의 법안들을 꼼수로 줄곧 밀어붙여 왔던 지난 정권의 여당과 그야말로 데칼코마니다.

우당탕퉁탕 소리를 내가며 망둥이처럼 좌충우돌 하는 여당의 지금 모습이 마치 조그만 시냇물이 바위에 부딪히고 급류로 물살을 만들며 온갖 소리를 내대는 모습과 얼마나 닮았는지.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유유히 흐른다. 넓디넓고 깊디깊게 자연의 순리대로 도도히 흐르는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강물을 보고 느끼고 즐기고 큰 배도 띄우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정치는 아직 큰 강물은 아닌 것 같다. 시냇물이나 개울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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