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의 미래칼럼] 대구 사람이 실패의 선구자일까
[박한우의 미래칼럼] 대구 사람이 실패의 선구자일까
  • 승인 2022.09.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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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 영남대 교수, 빅로컬빅펄스Lab 디렉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세미나를 2022년 8월 12일에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개최했다. 여기서 권상구 시간과 공간 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조선 후기 한국전쟁기 역병 이후 대구 사회의 계층변화와 보수화 과정’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구 북성로의 건축물과 골목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일찍부터 소개하면서 대구가 근대특별시가 되는데 많은 기여를 한 전문가이다.

권 소장의 발표문은 정통 학문적 각도에서 대구 상황을 조명하는 학술 논문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대구 내부의 계층 변화의 역사적 과정을 문헌연구와 인문학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조사했다. 대구의 보수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도시가 가진 오랜된 경험에서 탐구하고 있다. 1690년과 1858년의 대구 호적에 나타난 신분 구성 비교를 보자. 양반 9.2% 상민 53.7% 천민 37.1%의 구성 비율이 (준)양반 계층 70.3% 상민 25.2%, 천민 1.5%로 계층 역피라미드화가 나타났다.

한 발짝 더 들어가, 권 소장은 ‘1958년 경북대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1950~1958년까지 관료 등 화이트칼라 계층과 상업인 비율을 합치면 대구 전체 인구의 2/3에 가깝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행정계, 교육계, 법조계, 의료계와 적산기업 소속 인력 등을 합하면 거의 절반인 40.9%이며 기업과 상점 등을 운영하는 상공인 계층은 34.9%이었다. 당시 대구가 부의 생산을 책임지는 상인과 규제를 담당하는 관료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권 소장은 이번 발표 이전에도 근대 시절로 돌아가면 대구는 보부상이 결집한 조선의 시장이었음을 언론 인터뷰 등에서 수차례 언급했다. 그리고 한국 전쟁 이후에 대구 상권은 우리나라 전체 경제를 떠받치는 교두보 역할을 했으며, 대구시가 공단보다 상단(商團) 육성에 나서야 함을 여러 차례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항을 종합하면, 현재 대구의 엘리트 보수주의가 우연히 유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권 소장의 연구결과는 도전적인 발견이다. 나아가 대구가 오래전부터 유통과 상업이 활성화된 도시라는 주장도 현재의 대구의 정치 지형과 산업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2015년도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에 게재된 ‘실패의 선도자들’(harbingers of failure)라는 논문은 대구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1)

노스웨스턴대의 유명한 켈로그 마케팅 스쿨의 앤더슨(Eric Anderson) 팀은 2년 동안 소비자 상품을 판매하는 체인형 마트에서 약 12만8천명의 고객이 결제한 1천만 건 이상의 거래를 분석했다. 고객은 111개의 서로 다른 상점에서 자주 쇼핑하는 사람들의 무작위 표본이었다.

신제품을 구입한 사람이 해당 제품의 판매 성공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조사하였다. 그들은 어떤 소비자 계층이 인기 없는 제품을 구매하는 데 확실한 요령을 지니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특정한 특성을 지닌 고객 그룹과 신제품의 판매간 규칙적 연관성이 있었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 품목이 여전히 잘 팔렸는지 여부를 추적했다.

놀랍게도 빅데이터로 찾아보니, 기껏해야 최대 3년 정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제품과 비인기 ‘틈새’ 제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중복적 고객 집단의 출현을 발견했다. 이 집단에서 인기 있는 신제품들 가운데 40%만 3년 동안 살아남았다. 이 결과가 특정한 체인형 마트의 고객 기반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더 큰 데이터 세트를 사용하여 분석을 반복했다. 주요 미국 식료품, 마켓 등의 6년 기록을 했더니 결과가 유사했다. 제품 유형도 식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종 건강과 미용과 같은 다른 품목에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신제품 성공의 지표는 초기 판매량으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이른바 혁신자가 주도한다. 마케팅팀은 얼리어답터의 행동이 일관적이기 때문에, 이 집단에서 성공한 신제품을 유행의 신호로 파악하고 매장에 전면 배치한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이 선구자들이 주도한 기분 좋은 초기 판매는 제품 파멸을 예고했다. 조기 판매를 주도한 선도자가 누구이며 왜 이런 소비를 했는지 알고 있었다면, 수익 손실을 오히려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패의 선도자는 누구였을까. 다른 고객보다 가족 구성원이 많고,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모험적 성향이 인기 없는 품목을 포함하여 신제품 구매결정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제 권 소장의 대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2)

대구는 현대로 들어와서 대형마트 최초 입점, 치킨 등 요식업 프랜차이즈 성공 도시로 알려져 있다. 권 소장에 따르면, 유통업과 요식업 등이 성공한 이유는 대구 소비자는 엘리트주의와 보수주의가 결합한 복합적 성향 때문이다. 앤더슨 팀이 발견한 소비자 계층과 다르게, 대구 사람들은 제품 선택에 매우 신중하다. 따라서 혁신적 제품의 초기 판매가 어려울 수 있지만, 보수적 성향이 있는 대구에서 매출이 오르면 서울에 가면 대박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엘리트 보수주의와 상업 도시로서 발전한 대구의 계층 구성이 상업적 마케팅과 정치적 의견의 다양성 영역에서 도시 문화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후속 연구에서 좀 더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구시의 정책 초점이 공단에서 유통업 등으로 전환해서 골목상권을 중심으로 구매의 외부효과를 발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1) Anderson, E.T., Lin, S., Simester, D., & Tucker, C. (2014). Harbingers of Failure.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52, 580 - 592.

2)https://www.youtube.com/watch?v=79Hzb2cu3x4&list=PLpRIUFzlvALOqyxLtBfCxhg2gn2_P_oQd&index=34&t=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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