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양극화 이면에 숨겨진 근로 가치의 하락
[수요칼럼] 양극화 이면에 숨겨진 근로 가치의 하락
  • 승인 2022.09.2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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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원 ㈜데씨제 대표 인간공학박사
'땀 흘려서 번 돈이 진짜 돈이다'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말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땀 흘려서 돈을 버는 것보다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버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세청 2020년 귀속 소득세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근로소득 총액이 1년 새 4.5% 늘어나는 동안 기업 등에 투자해 벌어들인 배당소득은 27%, 부동산이나 주식을 팔아서 벌어들인 양도소득은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가 최근 급등하고 있는 물가 상승은 근로자의 상실감과 고통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쯤 되면 근로를 통해 돈을 번다는 것이 과연 이 시대에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지표들이 더욱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사실 우리가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번다는 그런 의미 이상이다. 일은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나 자신의 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통 일반적인 근로자들은 하루 8시간을 일한다. 하루 24시간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이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거의 반을 직장이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만일 하루의 반을 의미 없게 보낸다거나 고통 속에 보낸다면 과연 우리의 소중한 하루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행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의 의미와 가치보다는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만 고민하는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돈은 가끔 파랑새를 찾는 것과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돈은 누구나 많이 벌고 싶지만, 결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무리 근로의 가치를 역설한다고 해도, 현재 대한민국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필자의 주장이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득은 나아지지 않는데 반해,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서 버는 돈은 근로소득보다 많게는 10배 이상 높다면 과연 누가 땀 흘려서 일하려고 할 것인가? 물론 혹자는 부동산이나 주식의 투자는 근로소득에 비해 위험 요소가 높기 때문에, 그만큼 소득이 높아야 함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돈을 벌고 못 버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자칫 근로의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근로 가치의 자본적 환원에 대한 공정성이 무너진 지 오래이다. 가령 동일한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급여가 다르고, 제공되는 복지에서도 차이가 난다. 좀 과장해서 예를 들어보면, 한 쪽에서 정규직 근로자가 나사를 조이는 일과 반대편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나사를 조이는 일의 급여가 다르다. 이는 근로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형태에 따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근로 소득 격차가 커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공부를 더 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동일한 노동이라도 급여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근로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의 가치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근로 가치에 대한 공정성이 무너진 현재 이제는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재테크가 근로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과거 개그 프로그램에서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유행어가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근로의 가치가 떨어지면 대한민국에서 과연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책 기조와 방향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부동산 가격 안정화와 서민들의 주택 공급 그리고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큰 틀에서의 목적은 동일해 보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근로 가치가 하락되고 있고, 하락된 근로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근로 가치에 대한 공정성이 어떻게 하면 확보될 수 있는 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아울러 비록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 자본의 근간이 도대체 무엇으로 채워져야 건강한 대한민국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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