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가랑잎
[좋은시를 찾아서] 가랑잎
  • 승인 2022.09.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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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 시인

꽃이 외로워지면 잎이 되고

잎이 외로워지면 낙엽이 되고

낙엽이 외로워지면 가랑잎이 된다

닿기만 해도 가랑가랑 아픈 소리내는

가랑잎이

소설小雪 지난 길거리를 굴러다닌다

싸늘한 바람 말고는 의탁할 곳 없는 그를

바람은 사정없이 휘날려 내팽개친다

늙는다는 건 외로움의 극점으로 가는 것이다

외로움을 견딜 줄도 알아야한다고

아주 교양있게 강연하던 그가

어느새 추레한 몰골이 되어 무료급식소

긴 줄 앞을 기웃거린다

◇이해리= 경북 칠곡 출생. 1998년 사람의 문학으로 활동 시작, 평사리문학대상 수상(03년), 대구문학상 수상(20년),한국작가회의 대구부회장 역임,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감잎에 쓰다, 미니멀라이프, 수성못<20년 학이사>외.

<해설> 가랑잎이 휘날리는 아침엔 버려야 할 비밀이 많다. 바라봄이란 타인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나의 시선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침묵해야 하지만 응시가 사라진 공간은 느림을 견디는 속력처럼 희망이 공백을 드러낸다. 여름을 끌고 가는 수레바퀴 소리가 들리면 아름다운 것들은 하나같이 위험하니까 푸른 유리병 속에 태양을 숨겨야 한다. 나무들이 길어 올린 욕망이 푸르름이라면 몸이 없는 말들과 결핍의 과잉이 가져오는 맹목의 감정들이 우리가 믿었던 사랑이라 여겨진다. 태양이 시든 방 안엔 풀 수 있는 문제와 풀리지 않는 오해를 두고 생각에 잠긴 침묵만이 난무하지만, 동화책 더미에서 발견되는 추레한 몰골의 가랑잎은 형이상학적으로 다져진 자양분요리다. 인간의 거울 속은 차가운 밤을 감싸는 어떤 빛과 시선으로 만들어진 환유의 방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누구도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은 시시때때로 영원함과 덧없음에 대해 번갈아 묻는다.

-성군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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