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아소 도예가 유태근 개인전, “항아리를 삶과 죽음 연결하는 영원한 안식처로 활용”
갤러리아소 도예가 유태근 개인전, “항아리를 삶과 죽음 연결하는 영원한 안식처로 활용”
  • 황인옥
  • 승인 2022.09.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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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회화 등 100점 전시
처음부터 하나의 형태로 빚어
기존 방식 벗어난 창조적 기술
후손들 위해 BTS 가사도 새겨
백두·한라 흙 모아 ‘통일’ 기원
도자기 표면 회화 독자성 확보
수묵에 밀납 접목해 질감 심화
전시회 100여회 …‘문경 명장’
도예가 유태근이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아소에서
도예가 유태근이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아소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예가 유태근은 자신이 빚는 항아리에 삶과 죽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다. “살아생전에 형태적인 아름다움이나 기능적인 효용성으로 달항아리를 즐기고, 죽은 후에는 자신의 뼈를 담는 영원한 안식처로 활용할 수 있다”며, 삶과 죽음이라는 고도의 철학적인 개념을 단순한 기물인 항아리에 이입한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인식 아래, 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기준점으로 바라본다. 그 사유의 정수가 실용과 미학의 대상인 항아리에 가시화된다. “자신의 뼈를 담을 그릇을 살아생전에 애지중지 사용하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사유하게 되지 않을까요?”

평소 아끼던 도자기인 항아리에 자신의 뼈를 담는다는 발상은 언뜻 들으면 혐오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곱씹으면 “삶과 죽음을 이처럼 명쾌하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라는 탄식도 하게 된다. 도자기를 기물 이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그를 도예가로만 부를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의 이야기가 깊게 들어갈수록 그가 철학자이자 종합예술인임을 직감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연결을 항아리가 할 수 있다면 무겁기만 한 삶과 죽음을 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유태근 작 '월인천강(月印千江)'
유태근 작 ‘월인천강(月印千江)’

◇ 전통 도자에 현대적인 창조성 부가

갤러리아소에서 청마 유태근 개인전이 한창이다. 그가 빚은 달항아리, 청화백자 찻사발, 생활도자기와 직접 그린 회화작품 등 100여점이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그의 도자에서 핵심 개념은 창조성이다. 전통도자기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형태나 색감, 철학까지 철저하게 동시대의 미감에 맞춘다. 이른바 재창조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전통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말입니다. 10분 후면 과거가 되는데 어떻게 전통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겠습니까?”

창조적 도예를 지향하는 작업 특성상 작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은 필수다. 그는 기존의 공식을 뛰어넘는 가치로 ‘자유’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정방형의 둥근 형태라는 공식을 비튼다. 위와 아래를 이어 붙여 항아리 형태를 잡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형태로 빚어 올라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위와 아래판을 이어붙이지 않고 원형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기술이지만 창조적인 도자 제작을 위한 일임을 믿고 기술적인 부분은 기껍게 해결했다.

대형 달항아리의 경우 아래는 넓고 위는 좁은 형태를 취하는데, 그 모양이 흡사 복주머리를 닮아있다. 소형 달항아리는 현대미술을 떠올리는 미니멀한 형태와 색감으로 관람객을 유혹한다. “새해가 밝으면 해맞이 가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한 해의 복을 비는 것에서 착안하여 복을 담는 항아리로 형상화해 보았어요.” 

유태근 작 '청화백자 한글문 찻사발'
유태근 작 ‘청화백자 한글문 찻사발’

또 다른 작품인 ‘청화백자 한글문 찻사발’은 그의 도자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백미다. 포도나 식물로 장식하고 여백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히트곡 ‘버터’ 가사나 윤동주와 이상화 시인의 시를 적었다. 때로는 반야심경을 적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내놓고 애국시를 썼던 윤동주와 이상화 시인의 정신을 생각하면 제가 그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BTS의 노래는 우리시대 문화 아이콘이라는 의미로 썼어요.”

그의 전통의 창조적 계승은 전시 때마다 빛을 발한다. 매 전시마다 새로운 도자세계를 발표한다. 그의 스타일을 경험한 애호가들에게 다음 전시를 기대하는 문화가 생기기까지 했다. 비결은 ‘천년 뒤를 내다보는 도자’에 있다. 그가 “천년 뒤의 후손들이 우리시대의 도자기를 발굴했을 때 조선시대 도자와 차별점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 하겠느냐”는 문제의식을 표명했다. “‘21세기의 도공들은 전통에 대한 답습 말고 무엇을 했느냐?’라고 질책했을 때 할 말이 없게된다”며 창조적인 도자세계를 지향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시대는 고려나 조선시대보다 발전된 도자를 제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후대가 우리 시대의 도자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겠지요.” BTS의 노래 가사가 새겨진 한글문 찻사발은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유태근 작 '청화백자 한글문 찻사발'
유태근 작 ‘청화백자 한글문 찻사발’

◇ 생명, 통일, 애국 등의 주제 도자기에 이입

한껏 끌어들이는 창조적 진화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그것은 꼿꼿하게 살아있는 작가정신에 있다. 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그가 동시대가 지향하는 소명이나 자연훼손 등의 사회병리현상과 함께 호흡하고, 그 주제의식들을 도자에 접목한다. 주제에 따라 도자의 형태와 표면의 구성요소들은 매번 달라진다.

백자달항아리에는 생명과 통일에 대한 주제가 표현됐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물의 본성을 백자달항아리에 이입하고, 백두산과 한라산의 흙을 모으고 독도의 홍합으로 유약을 만들며 통일을 기원했다. 찻사발에는 통일을 상징하는 물고기과 DMZ(비무장 지대)의 철책을 그렸다.

“찻사발로 차를 마실 때나 달항아리를 바라볼 때 통일을 염원한다면 통일이 현실이 될 날도 멀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도자를 빚습니다.”

작업에서 주제의식을 공고화한 것은 일본 유학 때였다. 경일대 산업공예학과에서 도자를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창 일본도자를 공부할 즈음에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그 사건을 접하며 한국을 후진국처럼 대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불편해하는 일본인들을 접하며 ‘통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귀국 후 자신만의 도자예술을 본격화할 때 ‘통일’이라는 주제가 도자에 배어들었다. 찻사발 표면에 DMZ의 철책과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철새를 그렸다.

물성연구는 도자가 창발성을 확보하는데 핵심 요소로 기능했다. 흙이나 유약의 다양화는 그 출발이다. 그는 전국의 명산이나 들판을 두루 다니며 주제에 맞는 흙을 찾았고, 홍합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유약의 다변화도 시도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청화백자 찻사발은 문경지역 야산에서 직접 체취한 백자흙으로 몸을 만들고 장석류 유약과 약토유약, 잡재유약 등을 입힌 뒤 진사, 철화, 청화로 꽃이나 풀 등의 초화문을 그렸다.

그는 도자예술과 함께 회화도 병행한다.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회화 작업까지 하는 도예가는 드문 현실에서 그의 행보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회화 작업을 통해 도자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회화작품 ‘월인천강(月印千江)’에는 작은달항아리 수백 개로 대형 달항아리를 구성하고 여백에도 달항아리를 빼곡하게 채웠다. 소나무 숲을 그린 작품 ‘월송야정(月松夜靜)’에는 그의 내세관이 묻어난다. “씨앗을 내려 싹을 틔우고 주변 나무들과 가족을 이뤄 행복하게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을 땅에게 내어주고 홀연히 떠나는 소나무의 삶을 닮고 싶은 의미로 소나무를 그렸어요.”

수묵에 밀납을 접목한 것은 혁신적으로 다가온다. 습기에 약한 한지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밀납을 입힌다. 밀납과의 만남으로 습기에 약한 한지의 단점도 잡고, 회화의 질감이나 깊이도 한층 심화됐다. “밀납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발견하고 차용했어요.”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전통장작가마로 그릇을 구워내는 방문요와 청마도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의 명성은 국내외를 넘나든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100여회 개최하며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아 박물관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트 박물관, 제주 태평양 설록차 박물관, 경북 신청사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2018년에는 문경시 도자기 명장 3호로 지정됐다.

수묵에 도자를 그리거나 흙으로 도자를 빚으며 개념적인 현대미술의 범주로 끌어올리고 있는 유태근. 천 년 뒤의 미래인류에게 21세기 창발적인 도자예술의 정수를 전하려는 포부로 오늘도 물레를 돌리고 붓을 든다. 그에게 도자예술의 원천을 묻자 “영천 고향”을 떠올렸다. “고향이 영천 골짜기인데 중학교 이전까지 전기도 없었고, 읽을 책도 없었어요. 밤에는 달빛을 벗 삼아 놀고, 낯에는 흙을 만지며 놀았어요. 그런 감성들이 지금 저의 예술작품에 스며드는 것 같아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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