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남은 시간을 팝니다
[백정우의 줌인아웃] 남은 시간을 팝니다
  • 백정우
  • 승인 2022.09.2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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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백정우의줌인아웃
영화 '인 타임' 스틸컷

아는 이가 스터디카페에 간다고 했다. 벌써 한 달째 다니는 중이라고, 아예 일주일 사용권을 끊고 자기 전용자리도 확보했다며 신나하는 얼굴로 말했다. 자식 같은 학생들 틈에 끼어 있으려니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이보다 편할 수 없다고도 했다. 온갖 편의시설, 예컨대 음료와 차와 냉장고와 사무기기까지. 그의 설명으로 그려본 공간은 이제껏 내가 알던 독서실이 아니었다. 대학가에선 꽤 오래전부터 성황이었나 보다.

오랜만에 중고거래 앱에 들어갔다. 누군가 ‘남은 시간을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물건을 올렸다.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스터디카페의 잔여 시간을 팔겠다는 내용이었다. 잔여시간이 표기된 영수증을 증거물품으로 올려놓았다. 시간을 팔겠다니, 시간을 사고 팔수 있다니.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한 앤드류 니콜 감독의 ‘인 타임’을 떠올렸다.

영화는 화폐가 사라진 어느 미래가 배경이다. 화폐뿐 아니라 동전도 없다. 신용카드도 없다. 결제수단은 오직 손목 바코드에 축적된 시간이다. 커피 한 잔에 4분, 버스는 2시간, 스포츠카 한 대는 59년이다. 사람들은 일해서 시간을 벌고 시간으로 음식과 음료를 산다. 문제는 잔여시간이 0이 되는 순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는 것. 시간 가난뱅이는 5분을 구걸하는 일이 허다하다. 가족끼리 시간을 나누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은행에서 시간을 빌리거나 강도짓도 서슴지 않는다. 당연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보유시간은 하늘과 땅 차이다. 주인공의 소원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 100만년 이상의 시간을 가진 부호는 자기 소유의 은행을 통해 시간을 빌려주고 고리의 이자를 징수한다. 또한 중앙은행은 시간을 풀거나 회수함으로써 인구를 조절한다. 물가가 오르면(화폐가치가 하락하면) 가난한 자의 시간은 금세 바닥나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일뿐만 아니라 목숨이다.

유년시절, 시간은 금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금언을 현실로 느낄 기회는 흔치 않다. 설사 체감한다 해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다. 그런데 ‘인 타임’은 다르다. 영화 속 세상에서 시간은 돈이고 곧 생명이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준 영화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만약 현실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나 같은 범부는 쉼 없는 노동으로 시간을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와 상관없이 매일 24시간은 줄어들 테니까. 부디 시간이 화폐가 되는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다시 중고거래 앱에 들어가 남은 시간을 판다는 그 물품을 찾았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와 거래가 된 것이다. 시간(스터디카페 사용권)이 필요한 수요자가 나타났나 보다. 원래 가격보다 낮췄을 테고 수요와 공급의 적절한 타협점에서 거래는 성사됐을 터. 영화대로라면 시간을 사기 위해 시간을 지불해야 하니 치열한 흥정이 오갔을 테지만, 현실에선 달랐을 것이다. 남는 시간을 팝니다, 란 말을 몇 번 읊조렸다. 영화가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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