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애 개인전 스페이스 129…“개념이 실천돼야 비로소 미술이 된다”
신경애 개인전 스페이스 129…“개념이 실천돼야 비로소 미술이 된다”
  • 황인옥
  • 승인 2022.10.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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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품 연작 10여점 전시
습도·햇빛·바람 따라 결 달라
“설치 즐기지만 뿌리는 회화”
신경애작-neutral연작
신경애 작 ‘neutral’ 연작

현대미술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눈과 귀를 동시에 열어야 한다. 이런 현상은 ‘보는 미술’에서 ‘사유하는 미술’로의 변화와 맞물린다.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대상의 외형보다 내면이나 본질에 집중하려는 미술운동이 태동했는데, 그것이 현대미술이다. 현대미술의 근간에 개념이 자리한다.

현대미술을 추구하는 작가들은 “감상자의 심미안에 따라 작품을 이해하면 된다”고 흔히들 입을 모은다. 하지만 감상자의 입장은 좀 다를 수 있다. 작가의 내적 사유에 더 깊게 몰입하고, 이를 통해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태도가 작가 못지않게 깊어진 것이다. 감상자 역시 개념이 강세인 현대미술의 경향을 충분히 즐기고픈 마음의 자세가 이미 충분히 되어 있는 것이다.

작가 신경애가 자신의 미술세계를 구축해가는 방식은 현대미술의 공식 위에 서 있다. 개념과 그것을 미술 언어로 실천하는, 이른바 개념과 실천의 양립을 추구한다. 하지만 둘 사이의 지분을 굳이 따져 물으면 그는 ‘실천’에 더 방점을 둔다. “개념만으로는 미술이 될 수 없고, 개념이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미술이 된다”는 의견을 견지한다. 전시가 한창인 스페이스 129 개인전 제목 ‘회화에 관한 글(paragraphs on painting)’에 그의 미술관이 녹아있다.

“왜 이런 미술이 나왔는지에 대한 자기 정당성을 찾고, 그것을 스스로 작품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미술가의 본분이라 생각해요.”

작가 신경애 개인전이 스페이스 129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회화 작품 ‘neutral’ 연작 10여 점이 걸렸다. 전시작들은 모두 카메라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용됐던 청사진(cyanotype) 기법으로 제작됐다. 청사진 기법은 구연산 철 암모늄과 적혈염으로 만든 감광액이 빛을 쏘이면 청색으로 변하고,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씻겨나가는 네거티브 사진현상 방법이다. 그는 감광액을 바른 천 위에 종이로 만든 대형 포크 형상을 놓고 햇빛에 10분간 노출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포크 형상에서 인체나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농기구를 떠올렸어요. 제게는 친근한 형상이었죠.”

화면은 감광액을 발라 햇빛에 노출하여 얻은 푸른색과 감광액을 바르기 전에 그려놓았던 노란색, 그리고 포크 형상으로 햇빛을 차단해 획득한 흰색 등의 3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노란색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시도됐다. “푸른색의 보색이라는 필연적인 관계에서 노란색에 흥미를 느꼈어요.”

작업 과정은 작가가 온전히 제어할 수 없는 프로세스를 포함한다. 습도나 햇빛, 바람에 따라 작품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 작가는 자신과 환경이나 외부적인 조건 사이의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즐긴다. “외부 요인에 의해 얻어지는 의외성이 굉장히 흥미롭고 그것을 어느 정도 즐깁니다.”

이번 전시작은 회화다. 회화의 회귀로 맥락을 잡은 결과다. 설치 등의 입체작품을 발표하는 전시에 적극적이었지만, 그 역시 그 뿌리에 회화를 두고 있어 매체의 변화는 그에게 큰 의미는 없다. 회화를 매개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의 작업은 면실크 천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번 전시작은 면실크 천에 작업을 하고, 캔버스 틀에 끼웠다. 틀은 그에게 회화를 ‘회화다움’으로 이끄는 중요한 장치로 인식된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에게 캔버스는 회화의 틀로 해제해야 할 대상이면서 다시 구조화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번 전시에는 작업한 면실크를 캔버스 틀에 끼운 뒤에 또 다른 면실크 작업을 캔버스 틀 위에 드리우며, 이중적인 구조를 이끌었다.

작가는 “‘회화를 한 꺼풀 벗겨내면 내면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회화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캔버스 틀은 회화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체하느냐에 따라 회화가 한 발 더 나갈 수 있게 된다고 믿습니다. 말하자면 회화의 근원과 그 확장에 대한 탐구죠.”

평면이든 입체든,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회화의 뉴트럴리티(neutrality·중립성)’. 그는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청사진 기법(cyanotype)을 매개로 회화와 사진의 이분법적 구분을 의식하는 표현을 구사해왔다. 뉴트럴의 사전적 의미는 중성, 중간, 중립, 애매함 등이다. 작가는 이를 확장하여 “선과 형, 공간, 색 등 회화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인간 인식의 불완전성, 불명확성의 의미”로 해석한다.

“사진이나 그림은 결국 실재가 아니고 물질이 만든 허상에 불과하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인식합니다. 저는 인간의 인식이 불완전하다는 것에 주목하여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미술이 가능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완전성에 천착하는 특성상 그의 회화는 본질을 메시지보다 구조에서 찾는다. 작품에서 주제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일테면 개인과 집단, 갈등과 긴장, 행복, 소비, 사회 문제 등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지 않는다. 오직 “작품 내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작품 활동의 의미를 발굴”하는 데 목적을 둔다. 작업 행위의 수고로움이나 노력을 작품 전면(前面)에 배치하지 않는 태도는 회화의 구조에 방점을 찍고 싶어하는 그의 소신으로부터 기인한다.

“어떤 재료를 쓰는가는 하는 것은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역점을 두는 것은 ‘왜 미술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있죠. 말하자면 재료를 대하는 저의 태도를 통해 회화나 존재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가는 것이죠.” 전시는 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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