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길 위에서 만난 치유의 힘
[치유의 인문학] 길 위에서 만난 치유의 힘
  • 승인 2022.10.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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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2022년 올해로 103세가 되신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행복담론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100년을 넘게 산 철학자의 입에서 나온 행복의 정의는 의외로 담백했다. ‘정신적 가치를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과 ‘이타심을 실천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평범한 일갈. 세상을 조금만 진지하게 살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만족과 이타심의 실천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를….

몇 년 전 사업실패로 힘들어했던 후배를 우연히 만났다. 가장 힘든 시기에 보고 최근 처음 만났으니 2년 만이다. 당시 힘든 생활로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삶의 고단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최근 코로나 상황임에도 얼굴이 너무 좋아 보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편안해 보였다. 그동안 좋은 일이 있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후배는 보일 듯 말 듯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2년 전 삶에 지치고 힘들다고 상담을 받으러 온 그에게 자신을 찾아보라는 필자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였을까? 궁금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그가 선택한 것은 자살도 방황도 아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물질적 가치에 집중하면 할수록 황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주변에서 우연히 들었던 스페인 순례자의 길에 모든 걸 쏟아부었단다.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몇 푼의 돈을 모아 미련 없이 떠났다. 여행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순례자의 고된 여정은 낯선 길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은 치유의 길이 되었다고 했다.

제주 올레길의 모델이고 해마다 1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스페인 순례자’의 길. 길이만 무려 800km에 달하는 거리로 서울에서 부산 왕복 780km보다 길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이다. 스페인어 ‘Camino’는 우리말로 ‘길 혹은 거리’라는 뜻이고 ‘de’는 ‘~로 향하는’이란 뜻이다.
‘Santiago’는 스페인 북서부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일컫는다.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라는 뜻이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었다. 종교적 목적으로, 여행의 목적으로, 자기성찰의 목적으로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길의 목적은 선명했다.

“한 걸음 한걸음 오직 걷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걸으면서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도 알게 되었어요. 산티아고로 향했던 나의 발걸음은 정신적 성장을 위한 치유의 걸음이었어요.”

이야기를 하는 후배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언어엔 무게가 있었고 향기가 났다. 치유자의 모습이었고 힐러의 얼굴이었다. 걷기가 가져다 준 기적같은 선물이었다. 스페인 순례자의 길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천 년 전 순교한 야고보의 눈물 이야기. 800년 전 죄사함을 받기 위해 걸었던 속죄의 이야기. 그리고 삶이 힘들고 지쳐서 찾아오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들까지…. 사람들은 침묵하는 길에서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았다.

한때 죽음까지 생각했었던 후배가 그 순례자의 길에서 찾았던 것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었다. 정신적 가치의 위대한 발견이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타심의 발견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100 정도 되는 불행의 크기를 보상받기 위해선 동일한 크기의 행운이 필요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불행을 극복하는 가장 귀한 보물이다. 넬슨 만델라가 27년 감옥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소소한 식물 키우기를 통한 행복과 이타심의 실천 덕분이었다. 식물을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고 그 식물을 나눔으로 이타심을 실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걸어본 사람은 안다.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한지. 평범함의 실천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보니 알겠더라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걸. 다만, 조금 덜 아픈 사람이 더 많이 아픈 사람을 안아 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세상살이란 걸. 필자는 저녁을 먹고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맨발로 마사토가 깔린 운동장을 무심하게 걷는다. 정신적 가치를 알고 만족할 아는 사람이 되는 가장 정직한 길이 바로 길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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