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대구떡집’은 서울 연희동에 있다
[박명호 경영칼럼] ‘대구떡집’은 서울 연희동에 있다
  • 승인 2022.10.09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문화의 달 10월에는 곳곳마다 축제가 풍성하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행사들이 봇물 터지듯 앞 다투어 열리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도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크게 숨 쉬며 문화행사를 한껏 즐길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특히 우리 고장의 특성을 잘 살린 행사는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오신 손님들로부터도 환영을 받는다. 또한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을 준다.

지역의 문화예술축제는 지역의 정체성과 장점을 잘 드러낼 때 경쟁력이 있다. 우리 고장에서 열리는 행사는 우리 고장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지역민의 정서와 욕구가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행사의 주제와 내용에 지역민이 진정 바라는 것들이 제대로 담겨져야 한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지역 주민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행사가 외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지역의 축제가 철저히 지역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기획되어야 하는 이유다.

축제는 물론이고 지역의 발전 전략도 지역 고유의 전통과 지역 주민의 가치관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대구의 시정 슬로건이 ‘파워풀 대구’로 바뀌었다. 그런데 ‘역동적이고 힘 있는 대구’를 지향하려면 지역 주민의 열정과 꿈이 한 곳으로 모아져야 한다.

그 초점은 역시 지역 정체성이다. 오랜 세월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온 소중한 문화유산이 정체성의 근간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고, 가족 간의 유대감과 정겨운 전통문화가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다. 문화행사를 통해 이러한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고, 이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신없이 변하다 보니 우리 고장의 정체성과 고유한 전통적 가치를 잊고 산다. 그래선지 우리 고장이 지닌 엄청난 문화유산을 구태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삐뚤어진 정서도 적지 않다. 지역의 축제가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모든 문화행사는 두 가지 핵심 질문에 답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이며,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다. 지역의 정체성과 전통을 기준으로 삼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지역 주민의 진정한 바람을 외면한 행사는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 문화 창달에는 지역 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고장의 문화경쟁력은 주로 우리 지역의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하지만 경영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역 문화의 퇴보와 상실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일례로 대구에는 ‘서울떡집’이 엄청 많다. 하지만 ‘대구떡집’이란 이름의 떡 가게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서울 연희동 연세대학교의 서문 쪽에 ‘대구떡집’이 한 곳 있단다. 대구의 떡 가게 경영자들이 우리 고장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탓일까. 정녕히 이름은 얼굴이다. 얼굴이란 ‘얼(영혼)이 출입하는 굴(통로)’라는 재미나는 뜻풀이가 있다. 이처럼 얼굴을 보여주는 이름은 존재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수많은 ‘서울떡집’은 실로 유감이다.

언어는 또한 중요한 문화 전달의 수단이다. 그 가운데 지역어인 방언은 그 지역의 정서와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고유 언어다. 다큐 영화 ‘칠곡 가시나들’에서 박금분 할머니가 “여기도 시(詩),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라고 말한 명대사가 경상도 지역민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오로지 경상도 사투리로만 시를 쓰는 대구 출신의 상희구 시인이 지난 주말 한글학회가 주관한 ‘576돌 한글날 경축행사’에서 큰 상을 받았다. ‘국어운동 공로’ 표창이다. ‘숨어 있는 수많은 지역어(경상도 방언)의 발굴·보존에 힘써 한글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수상의 이유다. 참으로 의미가 크고, 또한 자랑스럽다.

문화는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 문화란 한 사회 내의 가치와 태도, 신념 등을 통틀어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형태가 어떠하든지 문화적 표현에는 한 사회 속의 ‘우리가 누구인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영화가 그렇고, 음악과 미술이나 공연문화도 다 그러해야 한다. 고장의 독특한 이야기가 문화예술로 표현될 때, 지역 주민들은 정서적 유대감과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나아가 다른 이들도 그 고장의 고유한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하버드대학의 데이비드 랑드 교수는 빈부를 결정하는 결정적 차이가 문화에 달려있다고 했다. 문화 속에 흥망성쇠의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경제적 성취는 그 사회에서 우세하게 발현되는 문화와 함께 나아간다. 지역의 경제도 지역의 문화가 견인한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폐쇄적 지역 문화는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지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차별이 아닌 ‘차이(다름)’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추구할 때 지역 문화는 지역 경제 발전의 동력(power)이 된다.

그래서 문화가 ‘파워’이고, 문화가 밥 먹여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