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위기의 노인들
[박명호 경영칼럼] 위기의 노인들
  • 승인 2022.11.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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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올 가을 유난히도 아름답게 물들었던 단풍잎이 이제는 거의 다 떨어졌다.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낙엽은 노년의 상징이다. 푸르렀던 젊은 시절을 거쳐, 붉게 물들었던 황금기를 지나, 속절없이 땅에 떨어지는 낙엽이 노인의 삶과 매우 흡사하다. 일본에서는 직장 은퇴자들을 낙엽에 비유한다. ‘젖은 낙엽’이라는 듣기에도 민망한 호칭도 등장했다. 일하느라 밖으로만 돌던 남편들이 퇴임 후에는 아내에게 착 달라붙는 모양새가 젖은 낙엽과 같다며 폄하하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노인은 비용만 발생하는 곤란한 존재다. 단지 돌봄의 대상일 뿐이어서 귀찮은 존재로도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노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어린 자녀는 금 쪽 같이 여긴다.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관심은 차고 넘친다.

젊은이들은 또 어떤가.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종종 오만과 독선,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버릇없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기야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은 역사가 오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에 적혀 있기도 하다니 더 할 말은 없다.

이처럼 외면당하는 이 땅의 노인들에게서 꿈을 보기는 어렵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버겁기 때문이다. 실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노인은 많지 않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 인구의 3분의 2가 넘는 68%가 더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분석한 보고서는 연금을 받는 고령 인구의 49.7%가 일한다고 한다. 역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이들의 월 평균 연금 수령액인 138만원은 2인 기준 최소 생활비인 월 216만원의 64% 수준에 불과하다.

노인들이 겪는 문제는 비단 경제적 빈곤뿐만 아니다. 신체건강과 정신건강 모두 크게 우려된다. 학대를 받거나 고독한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전국에 이들을 위한 쉼터가 설치되어 있고, 사회복지사들의 도움도 받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또 노인은 위험 상황의 인지와 대처 능력이 크게 떨어져서 신체적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보호구역인 실버존(노인존)은 매우 미흡하다. 대구에 어린이보호구역인 스쿨존은 752곳이 있는데, 실버존은 겨우 59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구역에는 과속단속카메라나 과속방지시설이 없어 여전히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노인들의 정신적 건강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수 년 전 영국에서 발생한 보이스 피싱 사례다. 경찰이 사기 피해를 입은 한 할머니를 조사하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친구인 척하는 한 신사에게 매일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결국 그에게 설득당해 3천만 원이 넘는 돈을 보냈다. 경찰은 왜 사기꾼에게 돈을 주었는지를 물었고, 할머니의 대답에 무척 놀랐다. “그렇지 않았으면 몇 주 동안 한 번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거예요.” 경찰은 근처 공원에 ‘수다벤치’를 설치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과 고독은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대화를 잃고 고독과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키오스크/무인’ 매장이 늘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이용할 수 없는 공간이다. ‘노(No) 노인존’인 셈이다. 그곳은 노인들의 소외감을 부추기는 노인출입금지구역이다. 국적 불명의 각종 외래어와 디지털 환경에 미숙한 노인들이 매장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또 다른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비록 노인이 이 매장들의 표적 고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노인 차별로 여겨진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고 말하는 몇몇 젊은이들은 꼰대 근성이 문제라고 비아냥거린다. 이런 철부지 소리는 노인들의 야윈 어깨를 더욱 쪼그라들게 만든다.

나라의 장래를 이끌어갈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삶은 정말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노인들의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 또한 귀중하다. 그래서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짐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큰 문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 불리며 오늘날 이처럼 잘 살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 때문인가. 그것은 노인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가능했다.

그래서 지난 달 2일 ‘노인의 날’에 윤석열 대통령이 “어르신들께 존경과 예우를 다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미래 번영의 시작”이라고 한 말은 매우 온당하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지실까’ 조선 선조시대 송강 정철의 시다.

요즘 젊은이들은 500년 전의 이 시조를 읊조리는 노인을 어떻게 평가할까. 꼰대근성, 시대착오, 웃기는 짬뽕, 아니면 틀니 행진곡? 그러나 틀니는 고난의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노인들의 자랑스러운 흔적이다. 누구나 결국 노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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