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연주자 박성휘 독주회, “기교나 폭발적 연주 보다 감성 표현”
피리연주자 박성휘 독주회, “기교나 폭발적 연주 보다 감성 표현”
  • 황인옥
  • 승인 2022.11.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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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대구문예회관 비슬홀
25살때 피리 소리에 홀려 입문
대학·석사 거쳐 시립국악단까지
“피리만이 가진 감수성이 매력”
독주·산조·퓨전 연주곡 등 다양
피리연주자-박성휘
피리연주자 박성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보고 그만두자.”

피리연주자 박성휘가 대구문화예술회관이 기획한 ‘대구시립국악단 화요국악무대 박성휘 피리 독주회’에 임하는 태도는 비장했다. 자신의 통산 다섯 번째 독주회지만 매 공연을 생애 마지막 공연처럼 임했다. 피리와 동고동락한지도 어언 15년, 대구시립국악단 단원으로 10여년을 활동했으니 이제는 무대에 무뎌질 법도 한데, 그는 “늘 첫 마음처럼 칼날 위를 걷는다”며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다.

늦어도 고등학교 때는 악기를 배워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 전문연주자의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하지만 그는 예외적인 상황. 늦어도 한 참 늦은 25살에 우연히 TV 방송에서 본 피리 연주에 매료되어 피리 연주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피리 연주자를 꿈꾸던 시기는 다리 절단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만큼 최악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2년여에 걸친 병원에서의 투병 생활에 그는 지쳐갔다.

그때 우연히 들은 피리 소리에 홀린 듯 빨려 들어갔고, 퇴원하자 바로 피리연주자인 최승희 선생을 찾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정이 앞섰던 순수한 시기였고, 그때의 용기가 있어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피리 입문이었지만 그는 최단 기간에 거리를 좁혀갔다. 경북대 국악과에 재학하고 고삐를 당겨 대학원을 거쳐 석사과정까지 논스톱으로 수료했다. 그것도 모자라 대학원 재학 중에 대구시립국악단 단원으로 들어가는 기염까지 토했다. “가장 힘들 때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이 피리였기에 늦었지만 더 열정적으로 피리와 함께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었다. 늘 동료선후배들과 스스로를 비교했고,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곤 절망했다. 출발이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을 늘 가슴 밑바닥에 안고 갔다. 이런 접근은 늘 쫓기는 상황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해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강했어요.”

연주자의 가장 큰 덕목은 심금을 울리는 연주력이다. 화려한 기교나 폭발적인 연주 못지않게 영혼을 울리는 감성 표현은 연주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는 감성연주에 강한 연주자다. 그의 피리 소리에는 한민족 특유의 우수와 한이 서려 있다. 이런 그의 소리 특성은 평탄하지 않았던 인생사와 맞물려 있다.

이제 갓 사십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어린 시절은 부모의 맞벌이로 늘 혼자였고, 외로움은 어린 그가 감당할 몫이었다. 성장기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주눅이 들었고, 설상가상 20대 초반에는 큰 사고로 병원 생활을 2년이나 해야 했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7년 전엔 권투하다 심정지가 와 생과 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인생의 구비마다 느꼈던 고통과 외로움이 무대에 오르면 온 몸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평소 저는 밝은 성격인데 이상하게 무대에만 서면 우수에 잠겼어요.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게 쌓여있던 외로움과 상처의 흔적들이 무의식적으로 손끝을 타고 피리에 실렸어요.”

이번 연주의 제목은 본립도생(本立道生). 사물의 근본이 서면 도는 저절로 생겨난다는 뜻으로, 기본이 바로 서야 나아갈 길이 생김을 이르는 논어의 ‘학이(學而)’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그가 15년 전 피리에 입문하며 세웠던 다짐이기도 하다. 양성필 대구시립국악단 악장이 사회를 맡는 그의 이번 독주회는 전통 피리 독주, 산조, 퓨전곡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된다.

먼저 첫 곡은 피리독주곡으로 유명한 염양춘(艶陽春). 가곡 중 ‘계면 두거’에서 파생된 곡으로 향피리 중심의 기악 합주곡이다. 이어 한국 전통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인 신비로운 음색의 생황과 청아한 소리의 단소가 함께하는 수룡음(水龍吟)이 연주된다. 단소는 김남이가 맡는다. 그리고 꿋꿋하고 남도계면의 성음이 특징인 서용석류 피리산조를 조성욱 장고와 함께 연주한다.

퓨전 연주곡으로는 박경훈의 작곡, 류자현의 피아노가 함께하는 ‘눈물’과 이용탁 작곡의 북한개량대피리협주곡 ‘대화’가 해금 황성숙, 타악 이승엽의 연주로 함께한다. ‘눈물’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이 담긴다. 마지막 곡은 척 맨지오니가 작곡하고 이정호가 편곡한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 OST인 ‘산체스의 아이들’이다.

피리연주자인 그가 지목하는 피리의 매력은 감정선을 예민하게 건드리는 피리 특유의 음악적 감수성이다. “아직도 피리를 연주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말에서 피리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특히 연주자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대구시립예술단 소속 단원으로서의 혜택도 적지 않다는 귀띔이다. “끊임없이 무대에 설 수 있는 혜택은 연주자로서 정말 큰 행복입니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위치에 서 있지만, 그는 그래서 오히려 더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항상 선후배동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늦은 출발을 만회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제 그도 중견 연주자로 접어들고 마음의 안정도 찾을 시기지만 지금도 매 순간 회의하고 고민한다고 했다. “아직도 피리연주자의 길을 계속가야 하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피리는 그를 절망으로 이끄는 원인이자 끊임없이 겸손하게 만드는 스승이다. 스스로의 절망을 극복하고, 영혼을 울리는 좋은 연주자로 그를 성장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피리다.

“이제는 피리를 숙명으로 여기고 모자람이 넘침보다 낫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공연은 29일 오후 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에서 열리며, 입장료는 무료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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